존재론의 마지막 쓸모

나루시선, 7

by 나루

존재론의 마지막 쓸모


서나루


1.

조선새는 모두가 운다

웃거나 노래하는 새는 한 마리도 없다

- 정희성, <권정생> 中


2.

사람이 죽어도 분노는 남는다.

지하철과 스크린도어 사이에서 항아리가 깨지면, 유물론이

차마 흩어지지 않고 존재할 것이라고,

기계 속에서 풀려나 날아가는 파란 물총새처럼

영원히 날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 못했던

분노는, 분명 그 당시에 존재했던 것이고

그 사실은 영원히 우주의 역사에 남는다는 것이다.

다 죽고 시신은 탈취당하여 화장당했지만

그 사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 영원히.


사람이 미얀마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체첸에서 또 르완다에서 많이 죽을 때

공해상에서 수장되고, 납치된 사창가에서 타죽을 때

류샤오보와 그의 친구들이 광장으로, 시민군이 도청으로 걸어들어갈 때

그 깨진 항아리들에서 나온 물총새에 대하여

누군가 사실은 있잖아, 그런 건 아무 데도 없어, 라고 말할 때 용기내어

아니야,

그들의 분노는 존재했어. 그러므로

역사는 바꿀 수도 숨길 수도 없어 라고 말할 때

그러니까 힘을 내, 그들의 영령이 우리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있어, 그러니까 고개를 들자, 라고 말할 때


존재론은, 그것이 영광하였던 모든 제국대학에서

피붉은 라틴어로 읽혔던 시간들을 용서받을 수 있을까

물총새는 존재하였는가? 끌려가

처형당하여 흩어진 항아리의 조각들 사이에서 물총새는

가볍고 푸른 몸으로

우는가


그들은 날개짓다 어느 세계에 앉는가, 위성 사진으로 존재론의 세계를 찍는다면

지상은 바람 부는 청보리밭처럼 푸른 물결로 넘실거릴 것이다.








(2018.04.25)

Photo by Simon Godfre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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