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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Feb 22. 2020

구토

나루시선, 6

구토

                                나루


1.      

한(恨)은 아주 비겁한 민족 정신이다.


눈깔은 이미 다 빼놓고

누이가 실종되더니 

삼촌도 끌려가 다 뒈지고 구수한 곡소리로 뭘 하란 말인가? 


2.      

시간은 가장 강력한 힘이다.


언젠가 3심은 끝나고 언젠가 치료는 끝나고 언젠가는

세월이 지나 시간이 다 덮는다. 늙은 엄마가 작은방에 밥상을

들여 떠먹여주는 한이 있어도 죽음은 고통을 끊는다

다행이다. 나머지 케이스는 살아남은 사람끼리 박수치게 될 것이다


3.      

다행이란 모든 것을 용서하는 말이다.


그리고 영원이란 다행의 아가리를 찢어놓는 진실이다

잠깐도 영원이라는 니체의 말은 맞다

잠깐동안 영원한 암흑을 보면

그것은 어떻게 복구될 수 있는가?


몇 년을 지나 겨우 승소하면 몇 년의 영원한 암흑을 보고

다시 항소를 받고 겨우 승소하면 이미

다시 몇 년의 영원한 암흑을 목격한 체험이 벌거벗은 앞살 뒷살에

유리섬유 롤을 죽 긁듯이 박히는데


암흑이라니, 말이 쉽지, 목이 졸려본 적 있는가. 

그 인간 앞에 일대일로 앉아 본 적 있는가 언젠가는 만료되는 쿠폰처럼

몇 번을 이사해도 

서랍에서 끈질기게 나오는 전에 살던 동네 마트 전단지처럼

언젠가는 만료되지. 대부분은 경찰에게 구해져서 평범하게 살아갈 테니

팔목에 할인 품목의 바코드를 그으며 견뎌볼 수 있겠는가. 애비가 먼지를 핥아멕이던 아이도

언젠가는 자랐지 이렇게


공소장에 반영된 천 분지 만 분지 일의 

공소사실의 목록을 여기에 올려줄 수도 있다.

당신 보여주려고

그토록 착하고 인문학의 아름다움을 아는 당신 보여주려고


검사는 떡값을 받아먹고 판사들은 떡볶이를 

화대로 받아먹는 판사들은 시를 읽지 않으니까.


남 욕할 처지인가

추상화는 참 달콤한 비린내지. 절망이니 마수의 손아귀니 몹쓸짓 몇 년 형을 때렸니

악마니

상고를 했니 마니, 살아남아 이크 에크 여유로운 걸음을 누비면서 

절망이니 암흑이니 하는 추상을 발음하고 그 속에는 사실 

이미 다 액사하고 실혈사한 여자들의 뻑뻑한 심박들과

마지막으로 본 세상이 마요네즈 만 통을 마신 토사물처럼 쌓여 있는데


망할 것의 장송곡을 산 닙으로 만 번 쳐불러도 복구가 되느냔 말이야


대학이 무어야 무엇을 하는 곳이야

암흑이라는 관념이 설명이 되는가, 안 된다고 하면 

영원이라는 관념은 설명이 되는가. 순간 넘겨다본 공포, 고립, 아찔, 덜컥 같은

추상들을 씨부리면서 추모할 때

죽은 사람들 돌아오는 걸 바라지도 않는다. 그것을 영원과 견주기 위해서 말하는 것이다. 

겪은, 한 번 겪어서

다시는 덮어쓰이지 않는 그 체험들이 깨끗하게 없던 것으로 되느냔 말이야


벌어졌는데

닫을 수 있겠냐고 묻는 것이다. 봤는데

심연을 보고야 말았는데

안 본 걸로 칠 수 있냐는 말이다. 아무도 훔쳐봐서는 안 되었을

영원한 절망의 가능성이 눈 앞을 흐린 막처럼 덮었을 때

불가능을 뚫고 과거로 달려가 악마들의 대갈통에 도끼를 박고

피해자의 눈 앞에 들러붙은 심연의 판막을 악소리를 지르며 뜯어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담 시는 뭣 하러 쓰는가


4.      

집어쳐라

다 찢어버려라 나는 상관없네 그게 안 되면 글줄이고 아무 상관없네

됐다. 집어치고 평론가들이 싫어하는 방식으로 써 주마. 납작하고 일차원적으로

토할 것 같은 사건들 앞에서도 나는 살아있어서 하품 잘도 나오고 시는 불가능하다

사체들 앞에서 아무 것도 불가능하다

나는 못살린다는 말이야. 없던 것으로 할 수가 없단 말이야 뒈지게 무거운 몸뚱이

시간은 가장 강력한 힘이라더니 이 뒈지게 무거워서 돌이킬 수가

씨팔









(2018.04.16~19)

<핑크룸>, 윤석남, 2016년 학고재 상하이

http://news.zum.com/articles/43222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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