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루 Feb 22. 2020

위악

나루시선, 5

위악

                            서나루


스텐 밥그릇 하나 들고 산에 들어가서 
고구마 캐먹고 살겠다거나 인문학 나부랭이를 한다는 

자들에게 부린 위악은 무능의 두려움이었다.


나는 그들이 좌파 공무원들의 용돈으로 연명하는

요행에 당첨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차라리 정직하게 무너지거라, 뒈진 백이와 숙제처럼


위악은 첫 섹스처럼 아주 낯설고

몸에 잘 맞는다. 사실 처음이란 없거든

해 보고 싶은 것들의 당첨일 뿐이다.


아픈 사람들끼리의 당첨.


왜 누군가는 선하고 누군가는 정신이 아주 빻았는가

그럼에도 왜 누군가는 여전히 돕는가

따위 끼리끼리 억울해서 하는 자기자랑을 멈추지

못하고 고맙고 너가 있어서 힘이 난다는 똑같은 

자조 모임. 어김없이 올 줄 알았고 와서 누군가는 어김없이 죽는

여름 태풍 속에서. 

궁상맞은 처마는 다 날라가고

고이 모아둔 설탕 만다라를 허겁지겁 쓸어담으며


자살하면 다 편해질 것 같은 절망과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협박들 속에서. 사례집에나 실릴 개판 속에서

믿기지 않는 애 딸린 미혼모 친구 사연 속에서도. 가만 듣다 보면. 

가만히 가만히 듣고 듣다 보면


슬픔 속에서도 인간은 생각할 줄 안다는 끔찍함을 알게 된다


노련하게 위로하는 상조회사처럼. 존엄하고

존귀하고 또한 고유한 개인들의 

어차피 다 똑같은 슬픔들을 다루는 방법을 안다. 생각이란 패턴을 읽는

끔찍한 인간의 능력. 생각이라는 끔찍한 패턴. 키스의 신비가

사라진 것은 상대의 싱겁고 미끈한 구강을 혀끝으로 휘젓고 젓다

그만 나 자신을 생각해버리고 난 뒤부터다.


이제 나도 슬픈 얼굴을 잘 짓는다. 

이해란 아주 더러운 짓이다









(2018.5.9)

Anni Roenkae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작가의 이전글 눌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