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셧다운제로 톺아본 사회복지정책의 기본원리와 의사결정 그리고 집행
인류의 역사는 문제 해결의 역사이다. 인간은 모두 특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 욕구는 근거이론에 따라 굉장히 다차원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존 듀이(John Dewey) 등 영미 실용주의 철학자들의 표현처럼 ‘어떤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요구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아동발달심리학자들의 접근처럼 건강한 성장과 성숙을 위하여 요구되는 보살핌과 자원이라고도 할 수 있고, 노동자들의 접근처럼 적절한 노동환경에 대한 보장과 보호라고도 할 수 있고, 기업가들의 접근처럼 경제활동을 하기 위한 제도적이고 법적인 정비가 될 수도 있다. 비록 태어난 것이 감사한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우리 삶과 세상의 조건들에 완벽히 만족하지는 않는다. 어떤 견딜만 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좀 더 낫게 개선할 부분을 찾아낼 수 있고, 때로는 거의 파국적인 재앙을 막아야만 하는 상황에도 맞닥뜨리곤 한다.
이 세상은 결코 우리의 모든 요구사항에 딱 맞게 디자인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가 속한 세상을 개척하고, 개선하고, 최적화하기 위하여서 노력한다. 경제인의 입장에서는 경제인으로서,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교육자로서,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운전자로서. 이처럼 우리가 원하는 딱 맞는 조건이나 여건과 주어진 현실 사이에는 늘 어느정도의 갭(gap)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갭을 메꾸기 위하여 움직이는데, 때로 어떤 갭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수리할 수 없는 것이라서 반드시 사회나 공동체 전체가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온다. 또한 때로는 그 갭 자체가 사회의 간섭이나 공동체의 잘못 때문에 발생한 것이어서 도와주기는커녕 짐만 되는 타자들에게 내 일상을 지키기 위해 개입해야 할 때도 온다. 어떻든 우리는 단지 개인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사회적인, 혹은 적어도 사회에 대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해결책도 사회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경우를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사회문제라고 부른다. 사회문제의 특징은 우선 누군가가 불편함을 느끼고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어떠한 문제상황이라는 것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회적’이라는 것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는 개인이 느끼기는 하지만 (추상개념에 불과한 국가나 민족이 대신 느껴줄 수는 없으므로) 단지 개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개인이 공통적으로 연루되어 있거나 수많은 개인에게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문제라는 의미이다. 즉, 사회문제는 개인에게 감각된 문제 가운데 사회성과 보편성 있는 종류의 것이다. 따라서 사회문제는 사회라는 단위가 그 문제에 어떤식으로든, 즉, 개선을 하는 방향이든 악화를 하는 방향이든 연루되어 있다. 가령 문제 발생이 생물학적 필연성에 관한 것이라도 사회의 개선을 통해 그 문제가 나아질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문제다.
예컨대 ‘고령화 사회 문제’라고 할 때, 인간의 나이듦과 공동체의 평균연령이 자꾸 많아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강제한 일이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공동체 구성원의 고령화가 낳는 개개인의 불행과 사회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공동체가 노인복지 비용을 분담하여 복지 제도를 확충해볼 수 있다면, 사회적 해결의 여지가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 문제가 된다. 그렇게 사회화된 것으로 간주되는 문제들은 몇 가지 비슷한 특성들을 갖는다. 예를 들어, 사회문제는 사회구성원들의 대다수가 문제라고 생각하며(합의성), 상당 기간 지속되며 얼른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비용을 발생시키고(지속성), 누군가는 자신에게 닥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인 도움을 받는 한편 누군가는 그 비용을 부담하며(이해관계자의 존재), 그러한 특성들은 정치적 논란거리가 된다(정치성).
이러한 사회문제의 논쟁적인 점 덕분에, 사회문제는 단지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한탄거리에 머물지 않고 담론장 안에서 하나의 이슈(issue)가 된다. 이슈란 우리말로 ‘논란거리’라고도 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사회 구성원들간의 의견이나 이해관계가 일치되지 않아서 입장 충돌이 발생하고 있는 상태의 의제(agenda)를 말한다. 어떤 문제를 이슈로 만드는 ‘이슈화’ 과정은 단지 편안하고 살만한 세상을 들쑤시는 긁어 부스럼 만들기가 아니다. 도저히 개인 혼자만의 아픔이라고 할 수 없는, 광범위하고 지속적이고 동료 시민 모두에게 연대책임이 있을만큼 어려운 누군가의 상황을 공동체가 함께 점검해보게 하고 공동의 해결책을 찾게 하는 과정이다. 보통은 이런 이슈는 특정 사건을 계기로 부상한다. 예를 들어 삼풍백화점 참사와 성수대교 참사는 건축안전을, 대구지하철 참사는 대중교통안전을, 세월호 참사는 안전규제와 안전문화 전반에 대한 강력한 반성을 우리 사회 모든 시민에게 요구했다.
이렇게 수면 아래에 잠재되어 있던 의제와 사회문제를 강력하게 이슈로 격발시키는 사건을 우리는 이슈촉발장치(Issue Trigger Divice)라고 한다. 물론 누군가의 죽음, 때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운명을 달리 한 일이 사회변화의 촉매가 된다는 점이 사실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비통한 일이고 근본적으로 부정의하다. 송파구 세 모녀 사건, 입양아 학대사망 사건처럼 누군가가 고통 속에서 사망하여야만 그제서야 뒤늦게 관련법을 제정·개정하고 관련자를 청문회에 세우는 우리 사회 전반의 무사안일주의에서 우리는 깨어나서 사고방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슈촉발장치로 분류될 만한 참사가 벌어졌음에도 사회전체가 개입해서 바꾸어놓지 않는다면, 그 이슈는 가짜 이슈(pseudo issue)가 될 수 있다. 가짜 이슈란, 이슈화가 되는 중이지만 실제로 아무도 그것을 바꾸기 위한 실질적 노력을 하지 않는 상태이다. 생산직노동자 안전문제의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에 속한다. 한국의 산업재해 문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2020년 한 해동안 882명이 생산현장에서의 물리적인 사고(업무상 사고 재해)로 사망했고 1,180명이 일터에서 얻은 질환(업무상 질병 재해)으로 사망했다.[1]한 해 2,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일하다가 죽은 것인데, 당진 용광로 사고(2010)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2016)을 겪은 이후에도 사고사망만인율은 여전히 .46 으로서 (10만 명당 4.6명) OECD 1위에 머물러 있다.[2]
이런 것이 바로 모두가 알지만 행동에 옮기지 않는 전형적인 ‘가짜 이슈’인데, 이와 비슷한 것으로 억압된 이슈(depressed issue)도 존재한다. 억압된 이슈의 대표사례는 바로 성매매 문제이다. 성매매는 사실 성을 매개로 했다는 점에서 시민들이 단순한 성욕의 문제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임상사회복지진단체계(Person-in–Environment: PIE)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 성매매야말로 한 인간이 얼마나 총체적으로 손상되어 있는지, 빈곤여성(그리고 위기청소년)에 대한 사회복지전달체계가 현재 얼마나 붕괴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얼마나 오해로 가득차있는지 보여주는 ‘억압된 이슈’의 전형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인들은 성매매여성을 일종의 환자나 클라이언트로 보기보다는 스스로 돈을 위해 부도덕한 길을 택하는 타락한 인간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것은 실제로 즉각적인 심리치료, 경제적 원조, 커리어 복구를 포함하여 클라이언트를 둘러싼 총체적 생태체계를 복원하는 사회복지정책 기획과 서비스전달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성매매 산업의 규모는 약 14조8000억원, 국내 커피 산업의 4배에 달하는[3] 거대 시장이다. 유입된 여성인구는 적어도 15만명 이상[4]이고, 한국 남성의 50.7%(2016년 조사)~42.1%(2019년 조사)가 성매매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집계[5]되지만, 계속해서 성매매 관련 자살자와 피살자들이 나오는 상황에도 아무도 성매매 문제에 손을 대려 하지 않는다.
이슈촉발장치가 매년 격발되어도 도무지 이슈화되지 않는 ‘가짜 이슈’와 ‘억압된 이슈’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정책의제로 채택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서는, 몇 가지 조건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슈화되는 사회문제는 구체적일수록 유리하다(구체성). 둘째, 기술적으로나 개념적으로 단순명료하게 사람들에게 잘 이해될수록 유리하다(이해가능성). 셋째,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야 한다(사회적 유의성). 넷째, 특정 사건과 가깝거나 해결해만 하는 데드라인이 가까워질수록 유리하다(적시성). 다섯째, 문제를 해결하면 오랫동안 사회가 이익을 얻을수록 유리하다(장기성). 여섯째, 좋은 선례가 있으면 유리하며, 일곱째, 체제유지에 도움이 되면 유리하다(체제적합성). 마지막으로 요즘 이슈가 되는 기본소득에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한데, 배분(allacation)의 성격이 있는지 재분배(redistribution)의 성격이 있는지에 따라 이슈화 난이도가 달라진다. 비용은 모든 시민이 골고루 내고 혜택은 특정 필요한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받을 때, 즉, 재분배의 성격이 있을 때 더 강력한 이슈화가 가능한 것이다.
배분과 재분배가 이슈화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자면, 2010년 무상급식 논쟁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010년대까지 한국 정치지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던 보수당(현 국민의힘)을 주춤하게 하고 중도보수당(현 더불어민주당)을 2020년대 주류세력으로 올려 준 주된 모멘트 중 하나가 바로 2010년 무상급식 이슈이다. 무상급식 이슈는 당시 아이를 키우시던 양육자들, 특히 어머님들을 강력하게 결집시켰으며, ‘애들 밥도 안 주려고 하는’ 보수당에 대한 강력한 지지 철회로 이어졌다. 물론 관점에 따라, ‘전면’ 무상급식이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배분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중등교육(초-중-고) 학생들에게만 적용될 뿐만 아니라 무상급식이 겨냥하는 ‘사실상의’ 주 타겟은 지불능력이 없는 빈곤가정청소년이 놓인 사회복지사각지대라는 점에서 재분배의 성격이 크다. 복지수혜자의 그룹이 비교적 명확하게 형성되고, 그 그룹 설정의 기준은 인간의 도덕성이나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고, 그러므로 이슈화과정에서 사회인들은 자신의 그 이념을 한 번 돌이켜보게 된다는 점에서, 사회문제를 재분배를 통해 완화하자는 유형의 의제는 이슈화의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사회문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이고 사회는 사람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사회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문제의 이슈화 과정은 전적으로 사람들이 관여하며, 그 사람들은 몇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이슈 논쟁자(issue entreprneur)로서, 논쟁의 최전방에서 문제제기하고 이슈 파이팅(issue fighting)을 해나가는 사람들이다. 둘째는 이슈 이해당사자들인데, 이 사람들은 이슈의 향방에 따라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셋째는 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당사자(client, C't )로서, 이 그룹의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직접적으로 요구하게 되는 입장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은, 모든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문제해결을 요구할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아동 클라이언트는 의사표현능력이 거의 없으며, 위기청소년 클라이언트 역시 크게 다르지 않고, 성인이라고 할지라도 성매매여성과 노숙인 등의 클라이언트는 의사결정능력이 사실상 상당히 손상된 상태로서 누군가가 대신 그들의 복지에 관하여 싸워주어야 한다. 그러한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넷째, 사회복지사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사회문제 자체의 전문가이자 대인관계서비스(좁은 의미의 human service) 전문가로서 문제를 겪는 당사자를 위해 이슈파이팅에 전문화된 직무를 수행한다. 이들과 비슷한 중간자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여섯째, 정책전문가로서 행정과 법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정책대안, 집행, 결과분석을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언론, 정치인, 그리고 전체 시민들 역시 이슈의 부상과 해결에 있어서 중요하게 관여하는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이슈의 전선 형성에 따라 각기 다른 진영으로 뭉치게 된다. 진영은 세 가지로 나뉘는데, 우선 떠오른 이슈와 자신의 입장을 완전히 같게 보는 동일시 집단이 있다. 다음으로는 주의 집단이 존재한다 이들은 이슈에 즉시 개입하지는 않지만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언제든 행동에 나설 수 있다. 셋째로는 관심 대중이 있는데, 이들은 이슈에 대해 ‘알고 있고’ 또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룹이다. 마지막 그룹은 우리가 ‘일반 대중’이라고 부르는데, 이슈에 대해 모르고 관심도 없고 적극적이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만약 사회복지 이슈를 우리가 일반대중의 수준까지 인도할 수 있다면, 어떤 이슈를 시민들의 폭넓은 관심과 지지를 받는 공공의제(public agenda, 또는 체제의제 system agenda)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책의제는 어떤 경로를 통해 형성되는가? 우리는 세 가지 일반화된 설명을 사용할 수 있다. 첫째, ‘외부주도형’(outside initative model)로서, 여기서의 외부란 ‘정부기관의’ 외부를 일컫는다. 즉, 정부 내 정치결정자들 바깥의 사람들이 정책 결정을 이끌어내는 구조이다. 외부주도형 정책의제 형성경로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강요된 정책문제’로 다가오지만, 우리 민주주의적 시민사회의 입장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이것은 건전한 언론과 시민단체 그리고 비정부기구의 개입을 요구하는 가장 고도화된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 둘째, ‘동원 모형(mobilization model)’은 정부 내 정책결정권자 및 소위 ‘정부 엘리트’가 직접 정책의제를 고르고, 그것을 홍보하여서 대중의 지지를 부추기고 동원하는 모형이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이슈가 그 대표적인 예시가 될 수 있다. 검찰을 만나볼 일도 잘 없는 일반 시민들은 검찰개혁이 어떤 점에서 필요한지 잘 모르지만, 정부 의사결정그룹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시민들을 설득하고 홍보하고 추진한 사례이다. 셋째 모델은 ‘내부접근형(inside access model)’ 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정책결정체계의 안에 있는 소수의 권력자가 의제 결정 과정을 독점한 상황을 말한다. 이들은 정책의제 결정과정을 비민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특정 의제가 공공의제화되는 것을 차단한다. 2013년 박근혜정권 당시 윤중천-김학의 인신매매 및 집단성폭행 사건이 고발되고 사회의 공분을 샀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정권 내부에서 진상규명과 범죄자 처벌을 차단한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보다 근본적인 비판을 하는 학자들도 있다. 무의사결정이론(non-decision making thery)에서는 권력자들의 입장에 불리한 정책의제가 애시당초 논의의 테이블에 올라가지도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부기관은 계속해서 시민과 (제한적인) 의사소통을 하면서 정책결정을 하는데, 그 이야기들에 정말로 근본적이고 중요한 사회문제는 원래부터 빠져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멋드러진 정책 결단을 내려도 기득권의 양보를 요구하는 핵심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이론이다. 한편 흐름 모형(stream model, 혹은 쓰레기통모형 garbage can model)은 정책의제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합리적이고 순차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문제의 흐름, 해결책의 흐름, 참여자의 흐름, 기회의 흐름은 각각 다른 원천에서 발생하여 각자의 논리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이 어느 순간 특정한 기회에 의해 결합되어서 실현된다는 것을 흐름 모형은 주장한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서, 사회문제는 이슈가 되고, 이슈는 정치적 선별 과정을 통해 정책의제가 되며, 정책의제는 다시 정책결정 과정을 통하여 사회정책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정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정되는가? 사회복지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은 3가지의 큰 범주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개인적 정책결정모형’이 있는데, 이것은 의사결정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개인 또는 특정한 정책결정권자가 결정을 내리는 원리에 관한 정리이다. 개인적 정책결정모형에는 인간이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편견에서 차단된 채 완벽한 의사결정을 행사한다고 가정하는 합리모형(rational model), 인간은 원래 별로 합리적이지 않고 상황도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동의할 만하고(agreeable) 만족할 만하며(satisfying) 그쯤이면 충분하다고 할 법한(sufficient) 결정을 내린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만족 모형(satisficing model), 기존의 정책결정에서 조금씩 개선을 거치며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 점증 모형(incremental model), 이러한 모델의 장단점들을 혼합하고자 하는 혼합모형(mixed scanning model), 정책결정 실무에 있어서 사실상 직관과 임기응변 등 종합적인 고려가 반영된 메타정책결정단계(meta-policy making stage)를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는 최적모형(optimal model) 등이 있다.
‘집단적 정책결정모형’은 조직모형(organization model), 회사모형(firm model), 앨리슨모형(Alison model), 그리고 앞서 잠시 다루었던 쓰레기통모형이 있다. 조직모형은 기본적으로 만족모형에서 출발한다. 왜냐하면 조직의 결정은 인간의 결정만큼 균질적이고 통합된 주체가 내리는 결정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불확실한 의견들이 모여 적정선에 형성되는 타협이기 때문이다. 집단은 관료주의의 이상처럼 치밀하게 ‘합목적적인 기계처럼’ 돌아가지만은 않는다. 조직은 조직원들의 인간적 차이들에 의해 발생하는 일종의 유격(裕隔, gap)을 가지고 있으며, 그 여분의 차이 속에서 설득, 흥정, 연합과 같은 정치적 활동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인간 조직의 한계를 지적한 또다른 정책결정모형은 바로 회사모형이다. 회사모형은 조직이 의사결정에 있어서 사실 얼마나 ‘대략적으로’ 성공하는지 폭로하는데, 예를 들어 조직은 환경과 맞서싸우기보다는 환경과 타협하고, 갈등을 완전히 해결하기보다는 적절한 선에서 봉합하며(갈등의 준해결, quasi-resolution), 보편타당한 합리성을 관철시키기보다는 국지적 합리성(local rationality)을 인정한다. 앨리슨모형은 정책결정과정 참여자들의 집단적인 응집력에 따라 이 세 가지 모형 중 하나에 속하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조직원의 태도와 조직구조/문화의 셋팅에 따라 동일한 집단에서도 앞의 3가지 모형 가운데 하나가 서로 다르게 발현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거시정책결정모형’은, 이렇게 앞서 살펴본 여러가지 개인 및 집단 정책결정모형이 거시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하여 말한다. 엘리트 이론(elite theories)은 정치적 의사결정절차가 겉보기에 어떻게 디자인되었든 사실상 소수 엘리트가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며, 체계이론(system theories)은 마치 U.Bronfenbrenner의 생태체계이론과 같이 정책결정기구를 하나의 체계로 간주하고 그것 내에 하위체계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각 체계들간의 역동이라는 관점을 가진다. 제도이론(institution theories)은 정책결정을 수행하는 제도인 정부기구와 그 제도를 유지하는 가치관, 이념, 의사결정방식, 문화 등에 관하여 다룬다. 즉, 정부정책결정기구 자체에 대한 메타적이고 반성적인 해부를 수행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공선택이론(public choice theories)은 의사결정이론에 경제학적인 설명방식을 융합하였는데, 단지 단순한 민주주의나 다수결에 따른 결정에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보다 현실적이고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사회복지 소요예산, 결정, 집행, 공급, 파급효과 등에 대한 분석을 수행한다.
사회복지의 정책집행이란, 말 그대로 현장에서 해당 정책이 수립된 이념과 필요성이 담긴 정책의도(legal intention)을 구현하는 활동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정부관료에 의해 집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관료 특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집행을 담당한 정부 관료의 조직문화, 선례의 여부, 표준운영절차(standard operational procedure: SOP)에 의존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관료의 태도와 성품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어차피 이 모든 일이 사람이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책결정시의 상황과 정책집행시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정책집행은 시간에 따른 상황변화에 영향을 받으며, 집행하는 현장에 참여하는 참여자와의 상호작용이나 당대 정치권의 집행 해석에 따라 내용이 변할 수도 있다. 이것은 사회복지정책을 포함한 모든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는 언제나 그 수면 아래에 정치적이고 또는 이념적인 갈등이 잠재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불일치는 정책 집행 과정에 계속해서 개입할 수 있다.
사회복지정책이 품고 있는 이러한 갈등요소들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소위 ‘셧다운제’라고 불리는 법안의 묶음이다. 셧다운제 혹은 강제적 셧다운제란, 청소년 보호법 제26조(심야시간대의 인터넷게임 제공시간 제한)에 의거하여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오전 00시부터 오전 06시까지 인터넷게임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인터넷게임사업자가 00시에 해당 정책대상의 인터넷게임 계정을 일괄 차단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이다. 이는 2004년 청소년보호위원회와 (사)청소년마을 등 청소년단체 및 기독교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처음 이슈화되었다. 이후 2005년에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이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회복지와 교육 그리고 청소년정책 전반을 관통하는 정책의제의 ‘뜨거운 감자’로 등극하게 된다. 2008년, 이 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인 여성가족위원회에 의하여 최영희 의원의 유사법안과 병합되었고, 이후 법제사법위를 거쳐 2011년 4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 이렇게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811597, 발의일: 2011년 4월 27일, 의결일: 2011년 4월 29일)이 2011년 5월 19일 공포되고 2011년 11월 20일 발효됨으로써 ‘셧다운제’가 도입되었다.
‘셧다운제’는 2011년 제정된 이후 지난 10여년간 엄청난 파열음을 내면서 논란의 중심이 되어 왔다. 셧다운제는 청소년전문가와 정책전문가 그리고 양육자 등의 정책결정자 그룹이 먼저 결론을 정해놓고 정책대상자 그룹에게 영향력 있는 정책을 집행하는 하향식 접근방법(Top-Down approach)으로 집행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정책대상자인 청소년이나 게임업계 관련자들과의 상당한 마찰이 존재했고 이러한 마찰은 적절히 봉합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셧다운제를 통해서 성공적인 사회복지 정책집행의 요인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자.
사회복지 정책집행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사회정책이라는 것이 인간들의 합의와 참여와 수용에 의하여 성립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즉, 정부와 시민사회는 기계가 아니라 수많은 개인들이 헐겁게 연결된 느슨한 조직이기 때문에, 의사소통과 오해의 문제, 맹목적인 믿음이나 타 집단에 대한 증오의 문제, 정책수혜자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정책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의 문제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정책은 적어도 9가지 층위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첫째로 정책은 정보가 왜곡되지 않고 오해 없이 전달되도록 소통에 신경써야 한다. 둘째로 정책은 일관되고 명확하며 중요하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로 정책집행수단과 자원이 충분해야 하고, 넷째로 정책결정자가 충분한 협조를 받고 있어야 한다. 다섯째로 정책에 관련된 집단들, 예를 들면 홍보매체나 전문가집단이나 정책대상집단이 잘 단결되어 있어야 한다. 여섯째로 집행조직이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일곱째로 정책집행담당자가 능력이 있어야 하고, 여덟째로 정책집행에 있어서 그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잘 순응해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정책집행자가 현장에서의 적절한 임기응변과 센스를 가지고 ‘정책내용의 실질적 결정공간’인 집행현장에서 재량권을 가지고 잘 행동해야 한다.
셧다운제의 사례는 이러한 정책집행 성공의 필수요소들 가운데 무엇은 성공했고 무엇은 성공하지 못했으며, 무엇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셧다운제는 정책집행수단과 자원이 풍부했으며 정책집행자의 재량에 맡길 정도로 집행 자체가 복잡한 문제 정책집행의 하향식 접근을 취할 때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그룹과 정책의 대상이 되는 집단 간에 발생하는 의견충돌는 아니었다(정책에 맞게 코딩하면 되는 사이버 세계였으니까). 그러나 셧다운제는 기술적인 문제는 전혀 없었지만 인간들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셧다운제는 정책결정의 주체(정책결정자)와 정책을 적용받는 주체(정책대상자)가 구조적으로 괴리되어 있는 ‘하향식 접근방법’을 쓰면서도, 똑같이 하향식 접근을 사용했음에도 그럭저럭 취지에 맞는 결과를 냈던 ‘재난지원금 지급’과 같은 정책과는 다르게 두 그룹 사이의 의견을 일치시키지도 못했고, 정책대상그룹에게 양해를 얻어내지도 못했다. 물론, 게임 셧다운제 자체가 극히 비윤리적이라거나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셧다운제는 복잡한 법도 아닐 뿐더러, 취지는 ‘12시가 넘으면 게임을 끄고 자러 가라’로 압축될 수 있는,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요구였다. 그러나 이 법이 적용을 받는 정책대상들의 입장이 문제였다. 이 법의 적용대상은 16세 미만의 청소년이었고,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자신에게 씌워진 고통스러운 입시교육의 굴레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탈출구마저 빼앗긴 것이었다.
이것은 청소년 당사자들에게 절대 양해받지 못할 문제였다. 빌딩 숲 속에서,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여가생활은 게임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고, 입시학원에서 돌아오면 24시가 다 되어가는 한밤중이었는데, 그런 쳇바퀴 같은 삶 속에서 게임마저 박탈당한 청소년들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 분노가 이 정책의 주관부처이자 한국에서 가장 만만한 정부부처인 여성가족부에 대한 저주와 들끓는 여성혐오로 변질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셧다운제법을 통과시켜서 아이들이 제 시간에 잠들게 하려는 양육자(특히 한국적 뉘앙스에서 말하자면 “학부모”)들의 의지는 단호했고, 청소년의 발달과정을 가장 객관적인 눈으로 지켜보는 청소년전문가들의 입장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것은 좀 더 도식적으로 말하면, 학부모들이 정부에게 부모 역할을 위임한 것이기도 하고, 청소년전문가들이 정부에게 청소년육성 차원의 개입을 의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셧다운제는 일종의 ‘국가후견주의(State Paternalism, 국가가 다른 사람을 그의 의사에 반해 더 좋은 상태로 이끌려는 목적으로 개입하는 것)’[6]로 보이기도 하며, 실제로 당시에도 이러한 법철학적인 비판이 존재했다. 나는 정부의 청소년에 대한 개입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때로는 (밤새도록 게임하기와 같은) 자기파괴적인 행위를 하며, 그 자기파괴를 막을 의무 역시 정부에게 존재한다.
흡연자에게 담뱃값을 올리는 등 담배를 더 이상 못 피울 조건을 만들어주면 당연히 적대적으로 반응한다. 성매매 종사자에게 성매매를 단속하는 등 성매매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주면 당연히 적대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그것이 공공의 이익과 ‘미래의 그 사람의 입장에서조차 이익(미래시점의 동의, future-oriented consent[7])’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킬 때, 공익과 개인의 이익을 수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는, 정책대상자에게 비록 단기적으로는 본인이 싫어하는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자꾸 개인에게 간섭하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정책방향은 극히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국가후견주의는 좋게 사용할 때 청소년육성진흥법이지만 나쁘게 사용하면 바로 히틀러청소년단(히틀러유겐트, Hitlerjugend)이나 홍위병(红卫兵[8])을 만들어내는 무서운 개념이며, 국가후견주의 자체에 무조건적으로 찬동하는 것은 파시즘과 가까운 발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또 특정 집단에 개입하기를 바라는 법제 요구에 완전히 귀를 닫고 있는 것도 좋은 정부는 아니다. 단지 ‘작은 정부’이고 ‘큰 정부’이고 한 것이 그 나라 사람들이 좋은 정부를 가지고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크고 윤리적이고 유능한 정부’일 때만 그 정부는 좋은 정부이며, 이것은 단지 정책요구자의 요구대로 정책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그 정책을 모든 정책대상자에게 합리적으로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고 정책집행에 따르는 피해에 대한 충분한 대안과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정부는 셧다운제의 도입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수의 정책대상자(청소년 당사자와 게임회사)의 반발에 적절한 방식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게임회사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정부 청소년에게 왜 지금 우리가 당신의 게임할 자유 가운데 일부를 제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다. 의사소통이 부족했고, 정책내용의 특성상 일관성은 있었으나 그것의 유효성이 극히 부족했으며(Steam, Origin 등 외국 게임 퍼블리셔들은 셧다운제로 막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 게임 서비스도 부모님 주민등록번호로 가입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음[9]), 정책대상자들의 반발이 극심했고, 따라서 정책집행상의 순응(compliance)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청소년정책의 주무부처인 여성(청소년)가족부 소관 정책이라 극심한 여성혐오적 공격에까지 노출된 것은 덤이다. 셧다운제는 사회복지 정책집행의 아홉 가지 성공요인 가운데, 의사소통에 관련한 성공요인들은 모두 놓쳤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셧다운제는 정책이 매우 명료하고 일관되며 공익에 적합할지라도, 예비정책대상자 그룹과 충분히 소통하고 정책집행과정에서 생기는 정책대상자의 불만을 봉합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셧다운제는 규제를 피해가는 여러가지 우회로의 존재, 그리고 인권기준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 전 인구의 게임시간을 규제하는 것은 별다른 실익도 없다는 비판에 의하여 2021년 8월부로 폐지되었다. 그리고 셧다운제의 본질이었던 게임시간 규제 기능은 게임산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811175, 발의일: 2011년 3월 15일, 의결일: 2011년 6월 29일)에 마련된 게임시간 선택제(또는 선택적 셧다운제)와 통합되었다.
우리는 파란만장했던 10년간의 ‘셧다운제’ 역사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사회복지정책이 물리적-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기술을 설계하는 정책결정권자들의 사회-심리-문화적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정책대상자들의 반발과 파열음으로 나타날 것이다. 또한 아무리 정책대상자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대상자들과 모든 수단을 다해 소통하고, 정책이 우려받는 역효과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순효과를 거두기 위해 협조가 필요한 까닭에 대해 지극한 마음으로 홍보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점에 분노할 뿐이다.
나는 언제나 말한다: 국가를 실체라고 착각하여서 시민들을 국가의 애완동물로 취급하는 실수를 절대 저지르지 말라고. 국가가 있고 그 국가 안에 국민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 것은 우익적 프로파간다일 뿐이다. 오직 존재하는 실체는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개인들이며, 우리들의 계약 하에 존재하는 헌법 하의 정부부처이며, 그마저도 민주주의적 동의에 의하여 단지 임시적으로 매일매일 계약이 갱신될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정책기획과 정책집행은 동의와 설득 그리고 양보와 보상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언제나 강조한다.
다행히도 한국 정부(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는 2021년 8월 셧다운제를 게임시간선택제로 통폐합하면서, 많은 진보된 시민 의사소통 시스템을 마련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게임업계, 인플루언서, 게임 유튜버 등과 협업해 이용방법을 안내하고 (…) '찾아가는 게임문화교실'을 확대해 청소년의 게임이용 조절능력 향상을 지원’ 한다. 또한, ‘보호자와 교사를 위한 게임 이해도 제고·게임이용 지도법 교육을 확대하며 2022 개정 교육과정에 '게임 과몰입'을 포함하는 등 가정과 학교에서 지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학교차원에서는 ‘게임과몰입힐링센터(7개소)를 통해 검사·상담도 제공하고 저소득층에는 최대 50%까지 치료비를 지원하며 집중 치유가 필요한 경우에 이용하는 기숙형 치유캠프와 인터넷 치유학교도 확대 운영’한다고 발표했다.[10]
결국 이렇게 한 정책의 사이클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한국 정부의 주관부처들이 셧다운제를 개량하면서, 아이들의 교육과 청소년복지를 위해 일관된 규제장치를 만들고자 했던 학부모와 청소년전문가의 뜻을 유지하는 동시에 더욱 이용자(시민) 중심적인 규제시스템과 더 나은 의사소통방식을 도입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으로도 우리가 만들어야 할 제도는 수없이 많이 남아있다. 셧다운제가 우리 사회에 남긴 교훈을 살피면서, 더 조심스럽고 더 인간의 진정한 복지와 장기적인 이익을 생각하는 사회복지정책을 많이 만들어갔으면 한다.
끝. 감사합니다. [11]
[1] 고용노동부, 2020. 12월말 산업재해 발생현황, 2021 �
[2] 노동건강연대, 통계가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이유 : 2019년 산업재해 발생현황 �
[3] 이하나, [만남] 한국은 세계 6위 성매매 시장… “수요 차단이 먼저다”, �
[4]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2010 성매매 실태조사」, 2010 �
[5]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9 성매매 실태조사」, 2019 �
[6] 임영택, 청소년 보호, 게임에서만 자율성 침해?…법적 강제 부당, 매일신문 �
[7] 권지혜, 형법정책의 토대로서 자유주의적 후견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 2016, pp. 21~28 �
[8] 이것은 중국 특산품이므로 간체자로 적어 드렸음.
[9] 나도 이렇게 게임했다.
[10] 유영규, 게임 셧다운제 10년 만에 폐지…게임시간 선택제로 일원화 �
[11] 출처 표기된 부분을 제외한 모든 내용은 유범상&문병기,「사회복지정책론」, 2017 을 참고하였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2021-10-11 과제로 제출된 것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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