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루 Nov 12. 2021

악인들의 솔직한 고백을 응원하며

악한 행동 이전에 다친 마음이 있고, 치유를 위해서는 자기고백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증오하고 공격하는 문화를 증폭하며, 사회적 지표들을 피해망상적 음모론에 따라 해석하고 혐오감정에 잠식된 인간 괴물을 키워내는 세균 배양지가 되었다. 2010년을 전후한 '일베'(일간베스트갤러리)의 급부상 이후, MLB파크, 오늘의유머, 웃긴대학, DC인사이드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일관된 여성혐오 및 소수자혐오뿐만 아니라 사회복지를 축소하고 사회안전망을 철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우파적 발상을 선전 · 선동하는 극우주의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런 사이트의 글을 볼 때가 있다. 주로 여성혐오자들(이것은 하나의 지표로서, 여혐을 하는 자들은 보통 이민자 · 저임금노동자 · 난민 · 기타 일반적인 약자도 같이 공격한다)이 형성하는 동시대 증오 컨센서스를 모니터링하기 위함이다. 물론 그런 일은 언제나 분노와 한탄을 동반하는 일이다.


하지만 '중산층 알파 메일'이 되어서 여자들을 거느리고 살지 못한다는 기괴한 정념으로 도배된 인터넷 커뮤니티의 일관성에도 불구하고, 정말 가끔씩은 마치 '뜻하지 않은 의인'을 만난 것처럼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글들이 있다. 그 글들의 공통점은 바로 솔직함이다. 나는 이번에 한 유저의 댓글을 캡쳐한 스크린샷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가장 좋은 사례다.



이게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자신이 타인에게 저지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자신에게 혐오가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는지, 정확하게 고백하고 있다. 누구도 더 이상 이 사람에게 "당신이 그렇게 하는 것은, 타인을 상처입히는 나쁜 짓이오." 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왜나하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으니까. 그는 자신과 자기 무리가 타인에게 상처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마치 돌아가면서 왕따를 하는 청소년 무리가, 악을 저지르기 위해 준수하는 그 암묵적 룰 그 자체의 공평함만큼은 인정하고 있듯이, 이 사람은 자신이 하는 게 혐오이고 이 재미있는 혐오의 행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내부자의 목소리로 밝혀 준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분노와 증오의 생활사적 기원과 그러한 사람의 전반적인 사고방식에 대해서 기술한, 인터넷상에서 굉장히 유명한 캡쳐본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글의 일부도 함께 살펴볼 수 있겠다.



이런 종류의 글을 통해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새롭게 알게 되거나 아니면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정보들은 굉장히 많다. 손상된 자아존중감, 자기연민, 타자의 고통과의 감정적 격리, 적절히 훈련되지 못한 박탈감의 처리, 공격성의 원천, 이기심, 복잡한 감정들, 그 감정들을 처리하는 내면의 사고 과정들이 더할 나위 없는 솔직함으로 보고되어 있다. 이것은 정말로 값진 자기보고이다. 이 사람이 아닐지라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절반은 환자이고 절반은 악인인' 사람들에게 대응하는 데 이런 정보들은 얼마나 보탬이 될 것인가?


이건 정말 도움 되는 행동이다. 나는 거의 고마움을 느낄 정도로 이런 솔직함을 좋아한다. 그리고 악인들중에 솔직한 사람이 정말 드물고 귀하다는 점에서 이런 악의 자기고백은 실제로도 정말 '고맙다'. 善과 惡에 상관없이, 솔직하게 자기 진짜 의도와 세계관을 말하는 문화가 있어야만, 공동체 내부에서 정말 실제로 충돌하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와 대결할 수 있다.


여혐을 하는 사람이 본인이 여혐 하고 있다는 걸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그것으로 일단 만족한다. 나는 얼굴 시커멓고 가난한 사람들이 솔직히 보기 싫기 때문에 난민이 싫다고, 남자의 골격이 드러나는데 여자처럼 꾸민 사람들이 솔직히 보기싫기 때문에 트랜스젠더가 싫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것으로 일단 만족한다. 그것은 자신의 악함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어려운 것은 악한 자들이 선함을 참칭하는 경우다. 여성혐오를 사회정의구현으로 포장하고, 난민 증오 선동을 국익 수호로 포장하고, 트랜스젠더 혐오를 페미니즘으로 포장하는 양아치들의 개쓰레기같은 행동은 정말 풀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실은 위선자이고 실제로는 해롭다는 까닭을 하나하나 논파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한 사람들을 상당히 귀찮게 만든다.


그냥 내가 악하고 싶어서 악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위선의 죄가 없기 때문에 본인에게도 좋고 그것에 대응해야 하는 타인에게도 좋다. 악의 인정은 반성의 출발이기 때문에, 그들이 악하지 않고 서로서로 도움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기도 쉽다. 또한, 그것은 약자를 공격하는 혐오주의자들의 정신 내면을 솔직하게 보고해주기 때문에 큰 정보 가치가 있다. 그것은 정말로 쉽게 들여다보기 힘든, 가치 있는 자료이다.


 나는 그래서 언제나 여혐이 횡행하는 남초사이트라든지 유머사이트 등지에서 보석처럼 돋보이는, "나는 솔직히 여혐하는거 맞아. 니들도 다 그렇잖아?"라고 말하는 '양심의 양심고발자'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언제나 그들이 들려준 솔직한 이야기들을 존중하며 곱게 아카이브한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열패감과 열등감을 자신보다 더 약자인 사람들에게 난사하는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악인들이 사회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악행을 멈추기 위해서도,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자신이 가진 열등감 · 열패감 · 자격지심 · 왜곡되고 부적응적인 스키마 · 강박적이고 당위적인 사고방식을 교정하여서 남을 미워하는 데 자기 소중한 인생을 낭비치 않고 더 발전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 그 내면의 고백들은 중요하다. 


솔직한 악인들은, 그 솔직함 덕분에 악인 가운데서도 가장 선해질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악인들일지라도 그 솔직함을 단계적으로 보상하고, 솔직함으로부터 용서받고 재통합될 가능성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렇게 악인들이 자신의 진짜 욕구와 진짜 콤플렉스를 밝히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방식으로 치유해줄 수 있다. 치유를 통해, 그들도 행복하고 그리하여 모두가 다함께 행복할 수 있다. 악행은 근본적으로 즐겁지 않은 것이다. 즐겁지 않은데도 악행을 하는 자들은, 그 뒤에 그 악을 무릅쓰고라도 해결하고 싶은 나름의 고충이 있는 것이다.


세상에 누가 "너는 악독한 쓰레기 새끼야!" 라는 말을 들으면서 살고 싶겠는가? 일베를 하는 남성들은 자신의 고요한 마음 속 내면의 방에서, 따듯한 할로겐 램프 아래에 걸린 거울을 마주보고, 이렇게 말할까? "응. 나는 일베를 하는 사람이야. 나는 말 안 듣는 여자는 줘패야 한다고 생각해. 능력없는 사람들은 다 굶어죽으면 된다고 생각해. 권력에 저항하는 폭도들은 다 죽여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그런 내가 정말로 좋아. 나는 내가 일베를 하는 행동이 정말로 자랑스럽고, 내가 일베라는 것은 내가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중요한 자아의 한 부분이야."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마도, 아마도,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와 증오를 쏟지만, 그것은 자신의 부서진 일부를 복원하려는 욕구에 그 근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당연히 매우 못 배웠고 이기적이고 미성숙한 대처방식이다. 그러나 그것이 여전히 일종의 고통과 결핍에 대한 대처방식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다 죽이자는 얘기는 답이 될 수 없다. 다 같이 살려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각 문제행동을 가진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분석하는 것이 선결요건이다. 그러려면, 더 많은 여성혐오자들, 더 많은 복지철폐론자들, 더 많은 크고작은 범죄자들, 더 많은 트랜스젠더 혐오자들의 솔직한 마음고백이 필요하다. 나는 그 마음고백을 응원하고 싶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hoto by Víctor Martín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해바라기센터 : 한국형 성폭력통합지원체계의 빛과 그림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