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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Feb 28. 2020

작설(雀舌)

나루시선, 9

작설(雀舌)

                        서나루



하이비스커스 차를 우리면

우려서 따르면


처음에는 유리처럼 맑은 물이 나오다가 마치 붉은 실이 풀리듯이

가는 참새의 혀처럼 붉은 선이 뽑혀나온다

한 가닥 한 줄 한 토악질


가끔씩 글을 읽다가, 코가 아니라 목으로 숨을 쉬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여러 번 찔려 죽은 여자들의 이야기

도대체 내 시의 레파토리는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 역시도

일조하고 

방조하고 있는데, 범죄자들이 행복하게 사는 필리핀 섬 감옥과

여러 군데가 찔려 떠오른 익사체들이 나는 도저히 

한 골수 안에 담기지가 않는 것이다. 나는 또 한모금 마시고


가슴이 짓이겨질 것 같으면 또 한모금 마신다 

고요히 다도를 즐기면 심신의 평화가 찾아온다는 

스님의 프로파간다 때문이다. 괴물과 싸우면 괴물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데 정말, 요즘 많이 하는 상상은

찻상을 뒤엎는 것이다. 특히 신앙심 지극한 분들의.

이 개 새끼들아, 너희는 뉴스도 안 보니, 느그 하나님 나라가

변사체 위에 있니, 이 개 새끼들아. 홧김에 이혼한 애비에게 욕 문자를 보내고


조직원들 고기는 빼고 하루 한 끼 주면서

위안부 서명운동 하러 전국을 돌아다녔다던, 아는 주사파 운동조직이

생각난다. 장례식에서는 건배를 하지 말라는 예절과

고통스럽고 느린 죽음들 멀리서 한잔을 홀짝이는 그리고

주사파 운동조직의 차이는 무엇인가,

혼자서만 행복해서는 안 된다는 똥양의 마인드인가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가,


따끈한 찻잔을 쥐고

TV에 나온 중산층의 응접실처럼 나도 한 잔 홀짝이고 싶은데

옷 안에 온통 다리 긴 거미처럼 다닥다닥 달라붙은 진실 때문에

나아지는 것이 없다. 씨팔 그만 좀 뒈져야 나아지는 것이지

고추 달린 악마들과 같이 사는 사회인으로서 기분이 어떠한가?

아침마다 면도기로 턱주가리의 뿔을 갈아넣으면서

씨팔 개 씨팔 그만 좀 찔러죽여야 나아지는 것이지


이번 주 기사는 전남편의 성폭행을 신고하자 

경찰이 그것을 주인에게 알려 빌라 앞에서 여러 군데를 찔려 죽은 여자였다


일이 일찍 끝난 금요일마다

어두운 황금빛의 코코넛 차, 구수한 늦봄의 말차와

코를 찌르는 하이비스커스 차를 우린다. 

물을 붓고 기다리면, 층을 잘 낸 칵테일처럼

붉고 투명한 층이 우러난다. 잔에 따르기가 겁난다. 작설처럼 뽑히는 붉은 선이

자꾸 생각난다. 유리구슬에 든 빨간 나일론처럼이 아니라, 작설처럼 그러니까

참새 혀처럼 한 줄 두 줄 뽑히다 콸콸 쏟아지는 붉은 선이 말이야









(2018.04.13)

Photo by FOODISM360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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