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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Jul 03. 2022

당신이 거머쥔
권총만이 당신을 구할 것입니다.

<권총 정신>에 관하여.


나는 항상 여러분께, 권총 정신이 있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권총 정신이. 권총이 뭐야. 내 몸에 딱 붙어 있는 거죠? 내 몸에 딱 붙어서 남이 절대 뺏어갈 수 없는 나만의 무기야! 권총 정신에 반대되는 건 뭐야? 탱크에 대한 믿음이에요. 탱크에 대한 믿음. 탱크처럼 듬직한 내 배우자가 나를 지켜주겠지. 내 자녀가 나를 지켜주겠지. 내 국가가 나를 지켜주겠지. 내 민족이 나를 지켜주겠지. 그 망상을 버리라 이겁니다.


항상 큰 거에 자꾸 몰빵해요 여러분은. 자꾸 한방을 준비하는거에요 여러분들은. 큰 거 한 방! 저격총처럼! 대포처럼! 원 샷, 원 오퍼튜니티! 그냥 몰빵하는 거야! 내 인생의 단 한 사람!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한 사람! 여러분! 바아로 그거에 배신당한다니까요! 제발 통계를 좀 보고 움직여요. 예를 들면 이혼률 통계, 뭐 이런거 다 나와 있단 말입니다. 왜 본인 운명만큼은 통계를 비껴 나갈 수 있다고 믿어요?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에요? 왜 거짓말처럼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를 구하러 온 전투헬기가 등장할 거라고 믿는 것입니까? 내 조국은 나를 버리지 않을…? 버립니다! 반드시 버려요! 님을 젤 먼저 버려요! 군대 끌려갔다가 뉴스에 나온 군인 피해자들 못 보셨어요? 조국과 민족이 여러분을 지켜요? 제발 뉴스를 봐요 뉴스를. 개인적인 해법도, 공적인 해법도, 여러분을 지켜 주지 않는- 다고요.


여러분을 지켜주는 공적인 장치는 김대중 대통령때 만든 기초생활수급제도 같은 것밖에 없어요. 근데 '무려' 생계급여 수급권이 작동한걸 우리가 '성공'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요. 누가 산소호흡기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해서 'WOW 건강에 되게 성공적인 장치네'라고 말해요? 애초에 최종수단을 쓸 일이 없는 게 성공이라고. 최후의 장치가 작동하기 전에 여러분이 여러분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표적들을 쓰러트려야 되는 거야. 왜? 빅 건, 슈퍼 캐논, 울트라 미싸일들은 반드시 빗나가니까요. 여러분을 지켜 줄 수단은 여러분의 평소에 갈고닦아 온, 작지만 단단한 꿘총 밖에 없어 꿘총! 아시겠어요? 님이 모든 것을 몰빵한 그 거대하고 복잡한 저격총은 빗나 갑니다! 빗나 가요! 한두번은 맞을 수 있겠지. 세 번째는 빗나간다니까 거짓말처럼 드라마처럼? 어떤 어려움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확실히 총알을 박아줄 수 있는 내 작고 단단한 꿘총을 믿고 살아야 돼요. 


여러분에게 저격총이 있던 미사일이 있던 핵폭탄이 있던 그런 복잡한 것들이 내가 필요할 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리라고 기대를 하지 말라고. 그건 망상이에요. 내가 이해할 수 있고, 내 손에 있고,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 볼 수 있을 만큼 단순하고 확고해서 어떤 컨디션에서도 확실히 작동하는 권총을 손에 꽉 쥐어야 해요. 권총이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권총이 없다고 해서 누가 함부로 나에게 시비를 걸지는 않겠지요(그런데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권총이 없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그리고 내가 나의 빛나는 권총을 홀스터 채로 바 위에 턱 올려놓고 싱글몰트 위스키 한 잔을 주문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다른 눈으로 봅니다. 혹은 쳐다보던 시선을 거둡니다. 둘 다 위험합니다.


타인이 나를 공정하게 대하는 것과 불공정하게 대하는 것. 그 이분법만 있는 건 아니에요. 0부터 100까지의 스펙트럼상에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들은 예외이겠으나, 대부분 사람은 제대로 작동하는 권총 한 정 쥐지 않은 사람에게 100을 주지 않아요. 권총이 딱 한 정 있는 사람과 수십 개의 권총 컬렉션이 있는 사람을 동일하게 대하지 않아요. 녹슨 구닥다리 권총이 여러 정 있는 사람과 손에 닿는 곳에 정확하게 꽂혀 있는 윤활유 잘 먹은 빛나는 권총 여덟 정 있는 사람을 동일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장치들이 실패하였을 때, 내가 함정에 빠져서 다른 모든 체계들과의 생명선이 끊기고 나의 권총들과 홀로 남겨졌을 때, 나는 무엇으로 내 몸을 내 인생을 지킬 수 있습니까? 내 정서 안정의 권총, 내 건강의 권총, 내 자기관리 습관의 권총, 내 재무관리의 권총, 내 돈벌이의 권총, 내 커리어의 권총, 내 애착이슈 해결의 권총, 내 매력의 권총…. 그 모든 권총들을 여러분은 어깨에도 차고 허리에도 차고 허벅지에도 차고 있어야 한다고요. 언제 터널 안에 홀로 낙오될 지 모릅니다. 


그리고 어떤 것은 말이죠, 존재 그 자체가 권총이야. 예를 들어 봅시다. 애인이 있다고 혹은 결혼했다고 자기관리 안 하고 뱃살 나오는 사람들 있지요? 멀쩡한 권총을 바닷물에 던져 버리는 짓입니다. 누구한테 매력 어필 안 해도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애인 생겼으니까, 결혼했으니까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에 플러팅 없어? 맙소사.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 내가 내 손으로 플러팅이 절실해지는 순간까지의 타이머를 설정하는 행동입니다. 내가 권총을 바닷물에 던져 버리는 순간이 바로 근거리사격을 해야 하는 순간을 불러오는 행동이라고요. 알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위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면서 자국의 군비 증강에 대해서 찬성합니다. 국제정치의 눈으로 보았을 때 전반적으로 맞는 말이지요. 근데 왜 '만남을 위한다면 이별을 준비'하지 않습니까? 왜 긴장을 풀어요? 왜 '커리어를 위해서 실직을 준비'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 사람을 내 곁에 붙어 있게 하기 위해서, 잘 담금질된 날카로운 플러팅을 장전하지 않습니까? 인간은 복잡합니다. 복잡한 장치는 반드시 고장납니다. 인간은 충직합니다. 그 믿음 때문에 인간은 반드시 배신합니다. 고장나지도 않고 배신하지도 않고 도망가지도 않는 유일한 충직자는 여러분 손에 꼭 맞는 '권총'입니다. 그 권총을 거머쥐세요. 손아귀에서 놓지 마세요. 매일 갈고 닦으세요. 


권총은 '도구(tool)'보다는 복잡하지만 '장치(equipment)'보다는 단순한, '기구(device)'입니다. 내 손에 꼭 맞을 뿐만 아니라, 그 작동원리가 너무나도 확실하고 명료해서 이 장치에서 어떻게 총알이 나가서 표적을 관통하는지 눈 감고도 떠올릴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어요. 바로 그 단순명료함이, 그 장악가능성이, 그 지배가능성이, 권총이 오직 당신만의 무기인 까닭입니다. 항상 갈고 닦으세요. 총에서 생명의 향기가 나도록. 위기의 순간에 당신이 비상버튼을 누르지 않고 서서 버티게 해 주는 유일한 무기가 바로 당신의 권총입니다. 그 권총의 손잡이를 잡기만 해도 어려움들이 쓰러지도록 사격을 연습하세요. 손때를 비누로 닦아도 남는 금속 표면의 반질반질한 지문 자국. 광택이 나는 당신 여섯 발 실린더를 치밀한 총알과 독실한 화약으로 꽉 채워 놓으세요. 내 권총이 작동할 때, 나의 폭격기와 미사일에 고장이 없습니다. 그것들은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손 안에서, 내가 엮인 모든 체계들의 영혼을 부릅뜨게 하세요.


살아 있으십시오. 지켜내십시오. 나라를, 민족을, 공동체를, 가족을 지켜내는 것은 당신이 아니고요 당신이 포섭된 체계가 알아서 합니다. 체계는 님아가 아니라도 지 알아서 살아움직입니다. 사회는 구성원들의 단순한 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위력적입니다. 그러나 당신만큼은 자신이 즉시 뽑아 쏠 수 있는 권총의 합보다 크지 않습니다. 지켜내십시오. 당신을 지켜내세요. 살아남으세요. 죽어도 권총을 쥔 채로 서서 죽으세요. 당신이 두 발로 땅을 딛고 숨만 쉴 수 있어도, 당신이 헌신하려 했던 다른 모든 체계들은 알아서 움직입니다. 당신이 갈구하려 했던 것들을 이제 타인이 당신에게 갈구할 것입니다. 당신이 일어나 걷는 동안 당신의 샘솟는 원천도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기 때문에. 권총을 차고, 권총을 쥐고, 방아쇠울에 검지를 가볍게 대고, 전방을 똑바로 쳐다보고, 계속 일어서 있으세요.









땅파기 / 셰이머스 히니(류시화 옮김)


내 엄지와 검지 사이

뭉툭한 펜이 놓여 있다, 권총처럼 꼭 맞게


창문 아래서는 자갈밭에

삽을 밀어 넣을 때마다 경쾌하게 긁히는 소리

아버지가 땅을 파고 있다, 나는 내려다본다


화단 사이에서 힘을 준 엉덩이가

낮게 굽혔다가 올라온다, 스무 해 전에도

감자밭 이랑 따라 구부정한 율동으로

그렇게 땅을 파셨다


거친 장화를 삽의 귀에 얹고

삽자루는 지렛대처럼 무릎 안쪽에 단단히 받쳤다.

길게 자란 줄기들을 뽑아 낸 뒤 빛나는 삽날을 깊이 묻어

햇감자들을 주위에 흩뿌리면 우리가 주웠다

손에 만져지는 그 차가운 딱딱함이 좋았다 


정말이지 아버지는 삽을 잘 다루었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할아버지는 토너 습지에서 그 어떤 남자보다

더 많은 토탄을 잘라 내었다

한번은 종이로 엉성하게 막은 병에 든 우유를 

가져다 드렸는데 할아버지는 허리를 펴고 

그것을 마신 후 곧바로 일로 돌아가 

깔끔하게 절단면을 자른 뗏장을 어깨 너머로 던지며

질 좋은 토탄을 찾아 아래로 아래로 

파내려갔다, 땅파기를 계속하면서


감자밭 구덩이의 차가운 냄새, 축축한 토탄이

질퍽거리며 던져지는 감촉, 살아 있는 뿌리들이 

가차없이 잘린 단면들이 내 머릿속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내게는 그 남자들의 뒤를 이를 삽이 없다


내 엄지와 검지 사이

뭉툭한 펜이 놓여 있다

나는 이것으로 땅을 파리라






Digging / Seamus Heaney


Between my finger and my thumb
The squat pen rests; as a snug as a gun.

Under my window, a clean rasping sound
When the spade sinks into gravelly ground:
My father, digging. I look down.

Till his straining rump among the flowerbeds
Bends low, comes up twenty years away
Stooping in rhythm through potato drills
Where he was digging.

The coarse boot nestled on the lug, the shaft
Against the inside knee was levered firmly.
He rooted out tall tops, buried the bright edge deep
To scatter new potatoes that we picked,
Loving their cool hardness in our hands.

By God, the old man could handle a spade.
Just like his old man.

My grandfather cut more turf in a day
Than any other man on Toner’s bog.
Once I carried him milk in a bottle
Corked sloppily with paper. He straightened up
To drink it, then fell to right away
Nicking and slicing neatly, heaving sods
Over his shoulder, going down and down
For the good turf. Digging.

The cold smell of potato mould, the squelch and slap
Of soggy peat, the curt cuts of an edge
Through living roots awaken in my head.
But I’ve no spade to follow men like them.

Between my finger and my thumb
The squat pen rests.
I’ll dig with it.



Photo by Andrey Zvyagintse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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