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까지 해오던 것은 말하자면 "임파워라이팅"이었다.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강해! 너는 최고야!" 이것이 내 친구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들은, 그리고 내 친구가 되면 많이 들을 말일 것이다. 내 친구들 중에는 이미 최고인 자들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최고가 될 자들이 있다. 우울증에 걸렸거나, 자신의 잠재력을 믿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긍정과 임파워링의 말을 박아넣었다. 그것이 세뇌와 다른 점은 오직 바람직하다는 사실이다. 강점 관점, 대안행동차별강화, 임파워링, 다체계 지지…. 내가 배운 모든 긍정심리학은 친구들을 강화시키는 데 동원되었다.
나에게도 축 늘어진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우울과 침체에 빠진 내 소중한 친구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멱살 잡고 일으켜서 탈탈 흔들고 북돋워주었다. 나는 그들이 강해지기를 바랐고, 그것을 위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했다. 어딘가 중독되어 있으면 중독부터 잘랐다. 담배 피는 친구에게 그딴 짓 하다가는 폐암 걸릴 거라 하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일까? 그것은 '건강정보'이다. 술 마시는 친구에게 끔찍한 코르사코프 증후군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모욕일까? 그것은 '보건복지'이다. 세상에 인생 막 살 자유란 없다! (물론 자유는 개인에게 속한 것이기에 엄밀히 말하면 각자에게 언제나 존재하지만, 내가 그것을 인정치 않겠다는 것이다) 인생 막 살겠다는 '자기결정'은 사실 자기결정이 아니다. 그것은 느린 자살을 하겠다는 것이고, 역사상 타인의 자살 의지를 용인하는 사회는 단 한 군데도 없었으며 나 역시 그것을 용납않는다. 죽을 자유는 없다. 자기 자신을 파괴할 자유는 없다. 당장 돗대를 쳐 잡은 그 집게손가락을 내려놓아라.
우리에게는 오직 자아를 실현하고 상승하고 위대해질 자유만이 존재한다. 자아실현을 포기하고 내 인생이 어떻게 되든 배달음식 처먹고 드러누울 자유 그딴 건 없다! 일어나라, 인간! 기능사를 땄으면 기사를 따고 기사를 땄으면 기술사를 준비해라! 2급을 땄으면 1급을 따고 1급을 땄으면 강사자격과정을 들어라! 일학업병행으로 학위를 취득하라! 학사를 했으면 석사를 하고 석사를 했으면 박사를 해라! 무한한 배움과 발전 바깥은 영원한 벼랑 뿐이리라! 인간으로 태어나 가진 최고의 지복은 인지능력이거늘, 그것을 낭비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당화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전 인류의 석사화! 전 인류의 기사취득화! 전 인류의 1급취득화! 이것이 우리의 영원하고 정당한 비전이다!
비전 속에서, 대학은 의무교육이요, 석사는 교양이라! 오직 평생교육 속에 생명이 있나니!
지금 이대로를 즐기겠다는 애들을 다시 일으켜서 정보와 육성의 영양제를 박아넣었다. 자소서를 첨삭해주고, 진로직업상담을 해 주고, 복수전공 학점컷 맞춰야 하니 성적 올려달라는 이메일을 대신 써 주고, 장학금에 붙여주고, 통계학 지식을 전달하고, 학과 지식을 알려주고, 예를들어 '한국 취업정보망 활용 설명회'나 '창업지원 경영자 수업' 등을 듣고 요약해서 보내주고, 분명 내 눈에는 형광물질처럼 빛나는 강점을 정확하게 짚어주었다. 미시에서 거시까지, 디지털 기미상궁이 되어서 모든 정보를 내가 먼저 맛보고 영양가 많은 것들은 모두 먹였다. 내 모든 친구와 파트너가 강해져서 더 많은 세계를 지배하고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고 진보와 좌파의 깃발을 더 넓은 영토에 꽂기를 바란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 : 1)
이것이 "임파워라이터"와 "가스라이터"의 공통점이다. 사실 솔직히 말해, 더 나은 미래를 믿게 하고, 자신의 강점을 신뢰케 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분명히 보도록 비전(Vision)을 심어주며, 본질적으로 존재가 보증되지 않은 자기효능감을 굳건하게 설립하는 것만큼이나 '가스라이팅'에 가까운 작업은 없다. "내 인생은 망했다"라는 믿음을 흔들어놓고 의심케 하는 것이 임파워링의 중핵이다. "나도 할 수 있고 나는 성공할 수 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라는 명제를 믿지 못하는 '부정적 믿음'을 흔들어놓고 오히려 맹신케 하는 것이 임파워링의 중핵이다. 믿어야 성취하거늘 어찌 의심케 하리? 지금 없는 걸 있게 믿어야 하거늘 어찌 물리세계에 존재하는 것만을 '있다' 주장하리?
나중에 있을 거라 해놓고 나중에 진짜 그걸 만들어버리면 그만이다. 결과가 과거의 뻥카를 정당화하며, 모든 인간은 시행착오를 통해 모든 과거의 시행착오를 보상하고 정당화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음이다. 미래조망(future-prospect)의 눈으로 다가올 날을 예비하는 '현재라는 과거'의 순간에서, 강점 관점과 긍정심리학만큼 가스라이팅에 가까운 작업은 없다. 그러나 그러한 '성공 믿음의 확립'만큼 인간에게 필요로 하고, 모든 선한 인간이 마땅히 세례받아야 하는 가스라이팅은 없다. 물론 우리는 그걸 가스라이팅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걸 '긍정심리학'이라 부른다.
그러나 진짜 가스라이터들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무리를 계속 약하게 만들고, 무리에서 제일 강한 자가 자신으로 남기를 바라니까. 그런 못된 마음을 먹는 쌍놈새끼들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는가? 그리고, 다른 무리의 중립적이거나 선한 강자들이 그 꼴을 모르겠는가? 선(善)함. 윤리성. 그것은 그 자체로 힘과 실력을 구성하는 일부이다. 악한 힘은, 단지 악하기 때문에 쉽게 부서진다. 선한 힘은, 선하기 때문에 더욱 강하며 더욱 지지받으며 훨씬 오랫동안 위력적이다.
나는 내 무리의 모든 인원을 마치 해병처럼 강인하게 키우고, 갱상도 마초처럼 고통을 씹어삼키게 키우고, 술과 담배를 끊게 하고, 자유와 자율의 맛을 알게 하고, 훈련하고 육성하여, 나의 친구들을 대통령과 세계정복자로 만들고 그 과업의 평균에 비하면 내가 그저 고만고만한 존재로 남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성공과 은퇴를 동시에 바라기 때문이다.
천 명의 정예군을 만들고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며 은퇴해야지. 왜 굶주린 빈민을 이끄는 한 명의 교주가 되려 하는가? 가스라이팅을 통한 교주 모델은 무엇보다 윤리적으로 문제이지만, 전략적으로도 문제다. 타인을 강화시켜서 얻는 이득도 분배되지만, 타인을 파괴시켜서 발생하는 손실도 분배된다. 독재자, 비열한 조종자는 결국 공멸한다. 오직 함께 모두가 강해져서 공동의 성공을 바라는 자만이 승리한다. 그것이 바로 선량함 = 착함 = 개발 = 육성 = 발전 = 진보 = 분배 = 인간 평균치 강화 = 공동승리 = 좌파 = 생산성 = 창조성 = 임파워링 = 자유 추구 = 자율 추구 = 탁월성 추구 들이 모두 같은 원리에 정초하는 까닭이다. 지배하는 자는 자신이 가둔 역량들의 쇠퇴로 인하여 파멸하리라. 육성하는 자는 자신이 키운 인재들이 흘린 빵 부스러기가 지구 한 바퀴를 돌아와도 넘쳐흘러 유복해지리라. 우리 모두 함께 강해지고 이 세계에 우리의 깃발을 꽂으리라!
함께 승리하자, 오직 선한 친구들이여!
Photo by Solen Feyiss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