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책에서 구경만 하던 공황발작을 겪고 착해진 이야기
하잎(Hype) 이라는 말이 있다. 잘 알려진 뉴진스의 노래 중에도 『Hype Boy』가 있다. 실제보다 더 과장된 것, 잠깐의 열광, 일시적인 거품과 호들갑을 일컫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가 가질 자격이 없었던 모든 젊음으로부터의 하잎(Hype)을 자연에게 반납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노화나 주름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산화 혹은 방사선에 의한 손상이니, 이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것은 차라리 우리가 '나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에 관한 다소간의 아쉬움이다. 하지만 우리가 삶을 통해서 나의 자아상에 대한 하잎(Hype)을 내려놓게 되는 순간은, 되던 가동범위가 안 되는 걸 발견하는 순간보다, 작년에 찍은 셀카에만 해도 없었던 주름을 발견하는 일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경험이 된다.
충분한 시간동안 살아보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당혹스러운 경험을 통해, 뉴스에 나오는 남일일 뿐 절대로 겪을 일이 없다 생각한 당황스러운 일을 겪으면서, 내가 지금까지 가졌던 오만한 자아상을 자연에게 돌려주는… 그리하여 있는 그대로의 취약한, 벌거벗은 나를 발견할 기회가 오곤 하는 것이다. 그것을 성장통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스스로 오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것이 내가 내려놓아야 할 가짜 자아상이었다.
열심히 사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환금성까지 높았으면 일등 신랑감이라도 되었겠으나, 나는 딱히 돈이 되지 않을 목표여도 내 소신을 지키고, 내 사람들을 지키고자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지냈다. 그런 시도는 대부분 과로로 이어진다. 과로한 계절에 대한 기억은 자연스레 뒤죽박죽이 된다.
확신할 수 있는 기억의 한도 내에서, 나는 지난 3개월 동안 휴일이 없었다. 하루 12시간 미만으로 '생산적인 활동'을 해 본 날이 없다. 새벽 5시에 경기도로 출근해서, 서울행 버스에서 강의안을 짜다가, 자정 가까이에 들어오는 식으로 살았다. 주중에는 일과 공부, 토요일에는 홀데이 개발 세미나, 일요일에는 오전에 밀린 일을 하다 세미나를 들었다. 서너 시간의 잠으로 사나흘 내내 버텨본 적도 많았다.
상당한 과로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할 일 목록과 미룬 답장이 쌓여갔다. 결제만 해둔 VOD강의도 거의 백 시간이 넘게 적체되었다. 버틸 만 했다. 3시간 수면한 다음 날은 보상처럼 7시간~8시간을 자려 노력했고, 그렇게 하면 또 하루가 그럭저럭 살아졌다. 그런 동시에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피곤할수록 더 웃고, 좋게 해석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고, 더 많이 양보했다. 혹시라도 체력이 적어서 타인에게 짜증을 부리지 않을지 노심초사 하면서.
그렇게 한 주 한 주가 버텨지니, 나는 몇 가지 착각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지속가능하다는 가정. 그리고 내가 이것을 지속가능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고 넉넉하다는 가정. 그리고 나의 정서적 재능에 대한 과신이 그것이었다. 누구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신의 일부가 있는데, 나의 경우엔 그것이 성격이었다. 얼굴이 안 되니까 장점을 성격으로 민 것도 맞는데(농담이다), 나는 고 스트레스·고 로딩 상황에서도, 불교철학 비슷한 사고방식과 자극에 무던한 기질을 가지고 그럭저럭 위기를 승화시키곤 했다.
그러나 삶이라는 카드놀이는, 석유처럼 질고 축축한 생의 산업용수에 담갔다 꺼낸 무작위의 곤경을 매일 한 장씩 뽑아 보이며, 마치 두 숫자를 합쳐 21을 만들 수 있냐고 묻는 블랙잭처럼, 내게 남은 패에 그것을 이길 카드가 있는지 시험하는 날들인 것이다. 가끔 이겼고, 대부분 비겼다. 하지만 그 카드놀이에서 지면 어떻게 될까? 난 한 번도 져 본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얼기설기 쌓아올린 하루들로 된 삶의 구조에는 서서히 피로파괴가 일어나고 있었다. 방치한 거실에는 머리카락이 쌓였고, 식기세척기는 마지막 깨끗한 접시들을 몇 달째 혓바닥처럼 내밀었다. 무 휴식 · 무 주말 일학업병행을 하는 동안 집에서 따듯한 밥을 챙겨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CU에서 전자레인지에 1분 돌린, 중앙은 차갑고 양끝은 뜨거워서 혀를 데는 줄김밥을 지하철 계단을 잰걸음으로 내려가며 허겁지겁 쑤셔 넣는 것이 식사였다.
이번 주는 그렇게 쉼없이 달리면서도 특별히 바짝 긴장한 주간이었다. 중요한 면접이 연달아 있었기 때문이다. AI 에이전트 설계에 관한 1 : 1 멘토링이 두 건… 아니 세 건, 민간 AI 연구소 담당자님과 예비 면접이 있었고, 중요한 잠재적인 사업파트너 분께 잘 보여야 하는 만찬 자리도 하루종일 있었다. 곧장 다음날은 눈을 부릅뜨고 연구동향을 살펴야 하는 한국임상심리학회의 추계 학술대회가 이어졌는데, 만찬 후에 집에 들를 시간이 없어 근처 친구 집에서 묵으며 입었던 정장을 또 입고 출근해야 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런 과로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순항중이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삐걱거림은 터틀넥 니트를 잘못 선택한 것에서 시작했다. 겨우 여섯 시간을 맞춰 자고 학회에 늦지 않으려 아무 옷이나 입고 나섰는데, 실수였다. 털은 까끌거렸고, 목이 너무 조였다. 아침에는 워낙 추워서 목이라도 따듯한 게 좋았으니, 그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체력을 깎아 가면서 살다 보니 무의식이 그것을 보상하려 한 것인지, 은연중에 고기가 자꾸 생각이 났다.
오전 세션을 듣고, 킨텍스 맞은편의 식당가로 달려가 고기가 든 음식을 찾았다. 미식에 가까운 비싼 요리였지만 나는 이 통삼겹 크림 파스타에 단백질이 몇 그람이 들었을까 세어 가면서 먹었다. 살아야 하니까. 느끼한 데다가 잠을 여러 날 못 잤으니 몸도 무거웠다. 입을 헹굴 겸 카페를 찾았다. 오후에는 정말 중요한 세션이 포진해 있어서 절실했다. 게임중독 질병 코드등재에 관한 토론, 도덕손상에 대한 다학제적 접근…. 어떻게든 집중력을 되찾고 싶었다. 말차 라떼 라지 사이즈를 주문하고, 커피 샷을 두 개 추가했다.
평소의 내가 상상도 하지 않는 엄청난 카페인이었다. 물론 그게 화근이라고는 할 수 없다. 화가 드디어 꽃을 피운 것에 가까울테지만. 점원이 내 주문번호를 불러서 옵션을 이렇게 추가한 게 진짜 맞는지 재차 확인해주었을 때, 그 때가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나는 테이크아웃을 받자마자 에스컬레이터로 뛰었고, 첫 발제가 끝나기도 전에 말차 층과 커피 층을 빨대 끝으로 달콤쌉쌀하게 골라가면서 다 마셔버렸다.
어림잡아 400mg이 넘는 카페인을 30분 만에 투여하고 나니 평소에 없던 긴장과 급박함이 올라왔다. 오묘한 불안과 불쾌감이 가슴 안쪽에서 울려퍼지는 급성 카페인 증상을 느끼며, 나는 업계에서 정신운동속도라고 부르는 것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온 말과 사물이 더 또렷해졌다. 지혜보다는 지능이 더 우대받는 세상에서, 사고가 빨라지는 느낌은 늘 나의 은연중의 열등감을 보상하는 희열이었다. 덕은 보았다. 오후까지 계속된 세미나에서 정말 중요한 최신 연구들이 오갔고, 카페인은 내가 그것들을 조금 더 또렷하게 한자한자 이해하고 받아 적도록 도와주었다.
컨퍼런스는 성공이었지만, 끝나자마자 또 달려야 했다. 다음 일정으로 클래식 공연이 있었다. 분에 넘치게도, 공연에 서는 당사자 분께 직접 초대장을 받았기에 꼭 참석해야만 했다. 하루종일 5분도 쉬지 못했지만 마지막 세션이 끝나고 뛰어야만 제때 도착할 수 있었다. 15시에 마신 카페인의 효과는 18시가 되자 최고조였다. 손끝이 덜덜 떨렸다.
원래는 광역버스에서 30-40분 가량은 잠을 보충하고 싶었다. 하지만 카페인이 나를 강제로 각성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휴식할 수 없었다. 자야되는데… 자야되는데… 하는 강박적인 죄책감만 쌓여갔다. 업계에서 배운 심호흡이니 위빠싸나 명상이니 해 보려고 했지만,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힙합과 인스타그램 릴스를 강박적으로 넘기며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서울에 떨어지니 가짜 배고픔을 이기지 못했다. 허겁지겁 눈에 보이는 햄버거집에 들어가서 먹었다. 공연장으로 뛰면서 꽃집을 찾았다. 초대해주셨는데 빈 손으로 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또 달렸다.
저녁이 되니 아침과는 다르게 기온이 포근했다. 원망스러웠다. 공연장에 단 2분을 남기고 도착하니 땀 범벅이었다. 한 손에는 덜렁거리는 꽃다발 쇼핑백이, 다른 한 손에는 먹다 남은 펩시제로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이것 하나 버릴 곳을 못 찾아서 점원에게 물었더니 기둥 뒤에 아주 작은 쓰레기통이 숨겨져 있었다. 별 것 아닌데 짜증이 났다.
실내 난방은 과잉 친절이었고, 아침에 잘못 고른 까끌까끌한 터틀넥 티셔츠는 미끌거리며 목을 조여 와서 숨이 막혔다. 손에서는 햄버거 소스 냄새가 났지만 손 씻으러 갈 시간이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카페인의 불안 · 초조 효과와 결합해서, 괴로워 할 이유가 없는 아주 괴로운 불쾌감을 만들었다.
겨우 초대권을 발급받고, 꽃다발을 맡기고 공연장을 들어서니 좌석에 앉기도 전에 객석의 불이 꺼졌다. 니트가 흡수하지 못한 땀을 깔고 앉았다. 초조하게 걱정하며 휴대폰 알람 창을 두 번씩 확인했다. 초대받은 자리인데, 피곤하고 맥이 풀리니 졸 것만 같았다. 앵클부츠 때문에 신은 육군 양말까지 합세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답답했다. 편하게라도 앉고 싶었으나, (말도 안 되는 망상인 거 알지만) 초대한 사람 앞에서 예의없이 보일까봐 다리를 꼬지도 못했다.
물론 공연자가 관객의 자세 따위를 신경쓸 리도 없고, 나 역시 무대에 서 보았기에 하우스 조명 없이는 객석이 절대 보이지 않음을 안다. 하지만 충동적인 믿음은 반성되지 않는 모든 순간에 진실로 느껴지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소심하게 통로 반대편으로만 다리를 꼬았다. 그 모든 것이 거슬리기 시작하면서, 내가 그동안 무의식에 숨겨두었던 역기능적 공감능력과 불쾌한 연합 학습들이 떠올랐다.
누구나 자신만의 죄책감을 가지고 오는 곳이 심리학계다. 내 경우의 아픈 손가락은, 폭력과 고문 끝에 후유장애와 사망에 다다른 억울한 피해자들이다. 나는 그들이 칼로 손목 긋는 일이 더 이상 없게 하려고 이 길에 들어섰다. 매일 나를 이 과로에 몰아넣고 없는 프리랜서 살림에 생돈 140,000원 내고 무엇 하나라도 도움되는 지식을 더 주워 먹으라고 세미나에 앉혀놓는 동기부여자들은,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그들이다.
이런 형태의 의지는 공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키스의 정보가 뇌를 녹여버리는 듯한 보상적 자극 때문에 각인된다면, 반대로 이런 종류의 정보는 점토판에 쐐기문자가 새겨지듯 한 자 한 자 트라우마적인 - 말 뜻 그대로 외상(外傷)적인 - 충격으로 새겨지는 것이다. 전쟁이나 국가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기억되고 전이되는 원리와 같이, 감전이 전기가 지나간 무늬를 남기듯, 나 역시도 대리외상이라는 길을 통하여 내가 헌신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정신의 지도(스키마)를 구축했다.
추체험(追體驗 , Nacherleben)이라고도 불리는, 남의 경험을 머리속에서 그대로 따라 경험하고, 그 고통과 절망 역시 내 것처럼 여기는 현상은 타인을 돕고자 하는 열망이 형성되는 데 거의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학습과정이다. 타인의 고통 · 충격 · 상처를 그대로 겪어야만 타인을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는, 모든 분의 의지 형성 과정을 다 겪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험에 의하면, 타인의 고통 · 충격 · 상처를 그대로 겪는 공감능력을 겪는 사람들은 대체로 공감능력을 타고 들어와서 발병한 정신질환에 걸리거나 아니면 그 아픔을 유리처럼 씹어삼키면서, 사회적인 어쩌구 저쩌구…, 취약계층을 돕는 어쩌구 저쩌구…, 피해자 지원 어쩌구 저쩌구…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발목을 잡는 것은, 이렇게 아주 불쾌하고 불리한 긴박한 때, 흔히 '편도체 과활성화'로 요약되는 불안 · 초조 · 강박이 올라온 상태에서 내 기억속의 추체험이 자꾸 떠오르고 재경험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기억과 학습이란 시냅스의 동시 발화이고, 우리는 (웃기게도 마치 LLM처럼) 학습해야 할 정보와 잊어버려야 할 정보를 구분하지 못하고 무조건 기억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그러면 코끼리가 기억된다.
그래서 우리는 한 맥락에 연관된 여러 감각기관에서 온 정보들을 앞뒤 분간 없는 수억 개의 피아노 건반을 동시에 눌러 화음을 만들듯 뇌에 새기고, 같은 건반을 다시 누르는 식으로, 그 기억을 떠올려낸다. 그리고 전혀 다른 맥락에서 그 건반이 눌리면, LLM이 내가 이미 완수한 프로젝트를 끌어와 할루시네이션을 만들듯이, 유사한 기억까지 고구마줄기처럼 소환된다. 이것이 전애인 향수 냄새가 우리를 순간 기억속으로 데려다 놓는 원리이고, PTSD가 격발되고 생존자가 얼어붙는 원리다.
내가 갑자기 둘러본 지옥이 무엇이었겠는가. 적응되지 않은 카페인 과용이 만든 불안 · 초조, 더위, 땀, 답답함이 소환하는 데 성공해버린… 내가 과거에 추체험하였던 문제적 사고사례가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말할 수 없다. 나의 대리외상을 여러분에게 옮길 위험을 무릅쓸 수 없으므로. 그러나 뻔한 것이다. 인간세상은 천국과 지옥이 불균등하게 뒤섞인 데칼코마니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지옥에서 끔찍하게 숨을 거두었다. 나는 그것을 애써 지성화(intellectualization)와 같은 방어기제 봉투에 넣어서 눌러 놓았는데, 그것을 불러내는 당시 경험의 암호 같은 조합과, 지금 이 순간의 불운들이 마치 좌우에서 동시에 누른 동일한 화음처럼 조응했다.
물을 끓일 때의 기포가 원인이 아닌 결과이듯,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라고 말할 때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코끼리의 상(相)처럼, 한 번 격발된 외상적 경험은, 내가 상담사례집과 사건사고 목록에서 목격한 모든 유사사례의 신경 발화를 죄다 격발했다. 모든 끔찍한 사건들이 끌려와서 연상되었다. 불안과 초조는, 불안과 초조라는 태그가 달린 모든 것을 동네 강아지 친구들처럼 불러온 것이다. 그래, 그게 기억의 원리이고 컴퓨터공학에서 벡터 임베딩 데이터베이스 유사도 검색의 원리가 아니던가? 모든 자연법칙이 아쉽게도 정상 작동하고 있었다.
내가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몇 가지 사례의 기억이 로딩되자, 터틀넥 셔츠가 내 목을 옥죄는 그 답답한 느낌이 어느 한 지점에서 뚝 부러지듯 임계치를 넘는 순간이 느껴졌다. 맨 먼저 로딩된 감각은 아주 좁은 곳에 갇힌 느낌이었다. 일단 여기는 안 된다는 직감이 뒤이어 로딩되었다. 심장이 뛰었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동시에 내가 쉬는 숨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온 몸의 느낌이 차갑게 느껴지며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들었다.
그래. 내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그것이다. 모든 진단기준을 충족한다. 이것이 그것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전해 들었던 모든 공황장애 환자분들이 이걸 느끼셨던 거구나. 그랬다면 정말 힘드셨겠네. 정말 견디기 힘드셨겠어. 그런 생각과 함께, 나도 견디기 힘들었다. 터틀넥 니트가 목을 조르는 느낌이 로그 함수처럼 폭발적으로 느껴지고, 심장은 점점 더 강하게 뛰고 있었다.
첫 번째 곡의 마지막 악장이 막 끝난 순간이었다. 천만다행이었을지, 다행이 아니었을지는 모른다. 곡이 진행되는 중이었다면, 내 주의력과 상상력이 외상적 기억까지 더듬지 못했을 수 있으니. 연주자는 박수를 다 받고, 의례에 따라 잠시 출입구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다음 곡이 시작되면, 여기서 세 악장을 버텨야 했다.
2초 정도 고민했다. 참을까? 2초가 끝나기 전에, 싸하고 서늘한 위기감이 온 몸을 위에서 아래로 덮듯이 쓸고 지나갔다. 살짝 어지러웠고, 명치 안쪽에서 폐 방향으로 뭔가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순간 나는 지식 없이도 앎을 획득했다. 여기서 이걸 참으면, 아무 일 없이 진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단계는, 발작이었다. 공황발작이 오면, 공황발작의 기억 때문에, 이와 같은 유사한 상황들(더위, 땀, 니트, 폴라티, 공연장, 첼로, 피아노….)에 대한 혐오학습(aversion learning)이 발생할 것이다. 혐오학습은 내가 의지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주 짧은 순간동안, 여기서 버팅겼을 때 예측되는 공황발작의 충격력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경험 이후, 그 기억을 지우고자 구매해야 하는 체계적 둔감화 등의 CBT 세션에 드는 고생과 임상심리사에게 결제해야 하는 카드값을 직관했다. 세 번 정도 시뮬레이션을 돌린 것 같다. 정확하게는 두 번 반 정도였다. 세 번째가 되기 전에, 상황파악에 확신이 생겼다. 나는 옆좌석에 둔 배낭과 외투를 집어들고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공황발작의 격발을 100℃라 하면, 95℃였다. 98℃에서 스팀을 빼며 유지해 보려는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기억을 뭉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완벽하지 않다. 언제 엄습할줄 모르는 내 편도체의 학습경험을 하나 만드느니, 실례를 무릅쓰고 차이코프스키는 건너뛰는 게 나았다. 문지기가 말했다. 지금 나가시면 재입장은 어려우세요. 그 순간 내가 바란 것은, 이 공황 직전의 증상이 바깥공기를 쐬는 것으로도 가라앉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확신을 가지고 객석 문을 잡아당겼다. 미등이 켜진 나뭇결 코너를 돌아 바깥 문으로 나가는 길이 미궁처럼 길게 느껴졌다. 나는 거짓말처럼 복도에 서 있었다. 주변이 환했다. 조금 걸어 보았다. 아직까지 살짝 어지러웠다. 밖으로 나갈까 고민하는 사이, 괜찮아졌다. 그래. 이것이 그것이구나. 나는 끓어넘칠 뻔 했던 냄비를 손에 쥐고 서 있었다. 이 경우엔 그게 내 편도체였다.
남들처럼 나도 자랑거리가 있었다. 남들이 화내고 당황할 때도 허허 웃고 넘기고, 불안하고 초조할 때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유전적 기질이 그것이었다. 남들에게 자랑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에게는 자랑거리였다. MBTI같은 이야기보다 더 농담 같지만, 한때 주류 심리학에서 사람의 성격을 A형 성격 · B형 성격으로 분류하는 방법이 있었다. (혈액형 성격설과는 아무 상관없다) A형 성격은 신경질적이고, B형 성격은 느긋하고 무던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쓰지 않지만, 교과서에서 짚고 넘어가는 실제 발달사이고, 일선 전문가에 따라서는 이 프레임워크를 유용한 것으로 판단하실 수도 있어서 폐기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내 견해로는 성격특성의 전체적인 임상적 인상이 동쪽 방향이냐, 서쪽 방향이냐 정도를 분간하고자 쓰일 수 있는 듯한데, 발달심리학에서도 이와 비슷하면서도 현장에서 쓰이는 이론으로 '까다로운 아이' 개념이 있다.
나는 지금껏 내심, 그런 '까다로운 아이' 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오만한 태도였을 것이다. 내가 오늘 느낀, 도저히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었던 내적 긴박감 · 압박감 · 팽만감은, 이것을 쉽게 경험하는 기질과 경험을 배경으로 둔 수많은 인구가 매일 숨쉬듯 겪는 고통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람들의 마음을 나는 아직 다 알지 못하지만, 그 마음 안에는 매일 스스로가 만든 찜통에서 교살되어가는 정신 역동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매 순간이, 끝나지 않는 차이코프스키 2악장 앞에서 좌석에 결박된 정신일지도 모르고, 그걸 빨리 끝내기 위해 객석 문을 잡아당긴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환각이다. 모든 공황발작은 오해석이듯. 그리고 또한 우리는, 선배님들과 후배님들, 나와 동료들은, 그 환각을 끝내는 다양한 방식의 임팩트 포트폴리오를 실천해왔다. 하지만 내가 전신을 옥죄는 충격을 받고서야, 평온 바깥의 세상이 있음을… 경험적 지옥이 실존함을 보고 온 것은 나의 수치스러운 짧음이다.
사람들에게 참 따뜻하고 인간적이라는 말을 비교적 자주 듣고 살아왔다. 하지만 나 역시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도할 만큼 편협한 부분이 있었다.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았으나, 나는 그들을 마치 오작동을 뿜어내는 블랙박스처럼 보고 피했을 뿐, 그들의 마음속에 어떤 견딜 수 없는 끓는 보일러가 들어있는지는 잘 공감하지 않았다. 각종 사건사고의 피해자에게 공감했으나, 그것은 주로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지배나 협박의 고통 등에 관한 것이었지, 피해자가 연쇄적으로 저지르면서 피해규모를 키운 각종 판단미스를 만들어낸 내적 긴박감과 터널시야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 안에 경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여러 역량 중 공감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며 살아왔으나, 어떤 차원에서는, 나 역시 싸가지 없이 말하는 협소한 재능을 가진 인간들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내가 아이를 낳고싶어 하고, 가정을 꾸리기를 절실히 여기는 사람들을 공감했는가? 열정적인 신앙인들을 공감했는가? 통성기도하는 개신교인들, 한여름에 히잡 쓰는 무슬림들의 내적 경험과 생애 체험의 여정을 얼마나 공감했는가?
도박 중독자나 게임 중독자, 마약 중독에 이르게 된 사회경제적 레일 위에 던져진 사람들을 얼마나 공감했는가, 하다못해 담배를 끊지 못하여 나에게 5분마다 한 번씩 욕을 먹는 친구들을 얼마나 공감했는가? 그뿐인가, 나에게 되도 않는 플러팅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공감했는가? 나 역시 타인에게 되도 않는 플러팅을 하면서도. 타인이 나에게 하는 버거운 행동에 위화감을 느끼면서, 나 때문에 위화감을 느꼈던 타인의 마음은 공감했는가?
많은 사람이 자기의 강점을 무기화하곤 한다. 예를 들면 나도 어떤 측면에서는 내가 가진 친절을 무기화하기도 했던 것 같다. 친절로 누군가를 구워삶으려고 했다는 것이 아니라, 친절은 그저 결과일 뿐이라는 점에서. 친절 그 자체는, 마치 촛불의 빛처럼,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친절이라는 결과를 나오게 하는 여러가지 타고난 기질과 성격이 꼬이지 않게 받쳐주는 운 좋은 환경 같은 것들이 먼저 존재하고, 그럴 만한 사람에게서 우러나오는 그럴 만한 친절은, '사전 분포'의 표현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친절은 인간의 수많은 재능 중 하나(일 뿐)인데, 예를 들어서 더위를 잘 견디는 사람이 에어컨을 트는 사람을 비난하듯이 혹은 추위를 잘 견디는 사람이 에어컨을 꺼달라고 하는 사람을 비난하듯이, 나 역시도 내가 친절을 비교적 잘 베풀 수 있게 된 계기인 어떤 운 좋게 타고난 기질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것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내적으로 비난해왔던 적이 없지 않다.
어쩌면 누구나 자신의 강점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 강점이 없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또 어떻게 보면 그 강점이 없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그 강점 없음에 당혹해하고, 어떻게 보면은 상처받기도 한다. 나는 오늘 공황장애와 거의 유사한 경험을 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나의 안정적인 성격특성이나 기질와 같은 재능이라든지, 나를 보호하고 있는 어떤 타고난 유리한 여건 같은 것들이 얼마나 얇은 얼음판 (박빙, 薄氷) 처럼 정말 덧없고 위태로운 것인지 뒤늦게 알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 나는 내가 평생동안 내심 비웃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비춘 웃음을 합친 것만큼 부끄러웠다. 예민하지 않다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요행히 누린 행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이게 행운이 맞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치 선천적으로 통각을 못 느끼거나 덜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이 부상당한 것을 쉽게 알아채기 힘들듯, 나 역시도 전반적으로 무던한 성격과 내수용감각에 미지근하게 잠겨 있느라, 가랑비에 옷 젖듯 나에게 어떤 강박과 불안이 겹치고 누적되고 있는 줄은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이런 것을 스스로 자각하지도 못하는 것 자체가 과로의 원인이자, 또한 결과,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음성 피드백'의 증상 중 하나인 것이다.
몇 달째인지 셀 수도 없는 월화수목금금금의 생활, 하루에도 몇 개씩 듣는 세미나와 교육, 오랫동안의 과로로 인해서 내 판단력은 일부 손상되어 있었고 그렇다보니 기존에는 하지 않았을 일종의 작지만 확실한 약물 남용(카페인 과다 복용)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것 자체는 윤슬처럼 삶의 숱한 섬광 중 하나였고, 반나절이면 지나갈 정전기였다. 그러나 내 커리어의 뿌리에는 대리외상(Vicarious Trauma)이라는 오발탄이 박혀 있었고, 지금껏 마치 나무를 충전해주듯 번개를 흡수하던 그루터기의 원통이 배터리가 아니라 특정 전압에서 격발되는 폭탄인 줄은 알지 못했다. 내가 답답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모르듯, 나 역시 남들이 답답하게 여기도록 나 자신을 알지 못했고, 나는 두뇌가 창작한 가짜 지옥의 실제 위력을 살짝 엿보고 나서야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의 매일을 유추하게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저 손상되거나 노화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그건 단지 부상입는 것에 불과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의 본질은, 시간 속에서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반복하는 것이고, 내면의 작은 확률의 씨앗들에게도 큰 씨앗들만큼의 기회를 주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바라건대, 아마도, 타인을 헤아리게 된다. 그리하여, 타인을 용서하게 된다. 타인을… 경험하였으므로. 더 이상… 타인이 아니므로.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큰 씨앗이, 나에게도 작은 씨앗으로 심겨 있었음을. 타인이 앞서 끊어진 약한 고리가, 내가 준비되지 못한 순간에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끊어질 수 있음을. 그렇게 함으로써, 요행히 유리한 큰 씨앗만을 가지고 태어나서 히히덕거리고 살았던 내가 가질 자격이 없었던 모든 젊음으로부터의 하잎(Hype)을 자연에게 반납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요행히도 요절치 않고, 랜덤히 부여받은 생의 반복이 시간 속에서 드러내는 긴 끈 모양의 진실 속에서 내가 체득할 수 있는 것이 겸손이라면, 나는 생도 사도 아닌 앎이라는 체험적 본질 속에 과잉된 기쁨을 덜어내어가는 필연을 누렸음에 감사할 것이다.
사진: Unsplash의Rodrigo Ru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