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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Dec 31. 2020

통근

나루시선, 25

통근


                                서나루





긴 숫자의 버스는 길게 달리지

760

1001

1100

6411


너는 매일 오른쪽에 앉아서 갔을까, 왼 쪽에 앉아서 갔을까

해가 뜨거운 남향을 피해야 해

살이 타겠다

자외선도 피해서 오래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해가 뜨기 전에 가서 해가 지고 오면

괜찮아. 무엇이 그날의 칼이었는지

그 자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그 날 집에 오면서

어데 앉았는지 온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집에 와서 잤어


우리는 그걸 절차기억이라고 하지

맨정신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연쇄

멀쩡한 마음이 선명해질 때까지 깎아내는 연필

네가 쓰러져 자는 동안 너의 꿈이 밤새 치댄 빨래


아침이면 항상 좀 꿉꿉하지

덜 마른 옷이라서 그래. 말갛게 하얀

사탕 가루처럼 생긴 분이 나올 때까지 말려야 하는데


오늘은 벌써 가고 일어나면 벌써 출근이야

마음은 너에게 얻어맞고 너에게 미안해하는 너 자신

긴 숫자의 벌이는 

더운 엿처럼 늘어지고


200

250

300

500


그래도 나 

삼천 모았어, 그래도 나 혼자 밥해먹고 다니면서

나쁜 짓도 안 하고 주말에는 집 치우고 고양이 밥 주고  

내가 야근하고 내가 멘탈 나가고

내가 해서 번거야, 연말이니까 보너스도

내 명의로 받았어 내가 울어서 아니면 또 운동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자고


힘들면 이를 꽉 문다는 것도 잊고 세상걱정 다 해가면서

힘든 것이 무엇인지도 잊고 0번 버스와 999의 그리고 

250과 750의 숫자도 잊고


세상을 겨누며 배웠던 이론상의 모든 곡선과 교차점도 잊고

1000과 1001이 천 일을 돌고 어김없이 이 정류소에 서도

온통 길거리에 내 인생을 크레파스처럼 긁으며

내가 이만큼 모은 거야


넘 기뻐....히히 













오늘 성과급을 받은 친구에게

Photo by 동아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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