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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Jan 02. 2021

딥 러닝

나루시선, 27

딥 러닝


                                        서나루




기계 학습 알고리즘은 구름으로부터 얼굴을 찾아낸다


덩어리 밑에 무슨 동글동글 한 게 여럿 달리면

문어가 기차가 되고

그게 다시 장난감 자동차가 되는 것이다

수염이 콧망울이 되고

소리를 지켜보던 귓구멍이 눈동자가 된다


마음은 그 사람의 부재로부터 얼굴을 찾아낸다


품 안으로 파고들면

두 눈이 한 개로 보이도록 이마를 맞대고 다시

갸웃하면 다시 눈이 두 개가 되는 식의 장난을 하다 보면

얘 입술이 언제 이렇게 통통했는지, 

눈은 꼭 부처같이 잘생겼네 하는 동안 얼굴은 목덜미 너머로 사라졌다


정말로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날

나는 기계 학습 알고리즘을 끄고 배터리를 버렸다.

얼굴을 찾아 헤매는 일을 좀 그만두려고 했다


어느날 아침에 그 사람이 없어지고, 

미친놈처럼 방을 뒹굴었을 때, 기계는 유령처럼 돌아가고


다시 문어는 기차가 되고

기차는 멀미하는 걔가 탈 수 있는 유일한 차편이었다

걔가 집을 나가서 못 갈아끼우는 형광등과 피잣집 스티커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사람 토핑에 한 개 더 올려 주었던 

목 없는 왕새우가 나를 쳐다본다


기계의 대가리를 화단 모서리에 찧어 보아도

가우시안 블러는 웅성거리며 그 아이 모습을 뭉개 놓았다

이제 눈 두 개에 코 한 개만 있어도 다 걔를 닮을 수밖에 없다


기계가 문질러 놓은

이제 그건 거울이고

마음은 거울이 뜯겨나간 자국에서도 기어이 얼굴을 만난다

저게 계속 나를 쳐다본다














신승백 김용훈(Shinseungback Kimyonghun), <Cloud Face>, 2012

1st Photo by INTERLAB

2nd Photo by 아트센터 나비 with DesignJun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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