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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Mar 11. 2021

후회를 이겨내는 법

좋으나 궂으나 무조건 행복해지는 심리적 범주화의 기술

삶이란, 벌어진 결과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스토리텔링이다.

- 작자 미상 



우리 삶에는 행운이 가득하다. 행운이 가득하다는 것은, 그 행운이 될 뻔 했지만 되지 못한 아쉽고 아까운 상황도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 아찔한 기회를 잡았더라면 다행스러운 일로 완성되었겠지만, 어떤 상황과 사람들은 정말 놓쳐 버려서 그저 안타까움으로 굳어져 버리기도 한다. 그런 일들은 기억 속에 남아서 '그때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때 그 사람을 잘 붙잡았다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라는 후회의 재료가 된다. 하지만 후회는 교훈으로 승화되는 것 외에는, 거의 쓸모가 없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오늘은 이러한 후회감들이 마음에 주는 아픔을 줄이고 결국 이겨내는 법을 논해보고자 한다. 


나도 후회를 많이 하고 살았다. 내가 후회를 대처하기 위해 사용할 주된 방법은 주의 돌리기였다. 주의 돌리기는 일종의 시간 끌기 기술이다. 내 생활이 원래 사건으로부터 시간적 · 공간적으로 멀어지고, 나의 뇌를 다른 정보가 계속 덮어씀으로써 사건의 기억이 정신적으로 희미해질 때까지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일반적으로 필수적인 심리 기술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필수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맥가이버칼 같은 만능공구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되 무엇 하나 제대로 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대부분의 사례에 적용이 되지만 완전하게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음이다.  


특히 내가 기억의 문제에 있어서 주의 돌리기가 큰 효과 없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장기기억(LTM)의 용량은 '거의 무한하다'고 배운다. 우리가 망각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사실은 많은 잡음들이 섞여 들어간 탓에 백지 상태에서 즉시 회상(recall)해내기가 곤란해졌을 뿐 완전히 잊은 것이 아니다. 그 정보와 연관된 다른 단서들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재인(recognition)해낼 가능성이 있다. 


음, 그게 기억이니까. (끄덕)


한때 여행지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풍조가 있었다. 그 순간을 눈과 마음에 담으면 되지, 왜 그저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공연장에서 모두가 머리 높이 들고 있는 휴대폰 카메라에 대한 비판도 비슷했다. 촬영하느라 정신 팔리지 말고 이 순간을 누리고 즐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되새겨 본다면, 대답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어릴 적 찍었던 사진이나 오래 전 친척들과 여행 갔던 사진을 다시 열어 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지 인간의 장기기억력에 놀라게 된다. 사진이라는 제한된 인출 단서만이 입력되더라도, 때때로 우리는 폭풍같은 기억의 연쇄에 잠시나마 행복하기도 하고 이불킥을 하기도 한다. 


기억은 일반적으로 잊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억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또한 기억 당시의 주의집중력이기도 하다. 인간의 주의력 중 가장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감정적 반응이다. 열망, 사랑, 두근거림, 때로는 분노와 긴장과 같은 정서들도 우리 뇌가 그 상황을 거의 사진의 한 장면처럼 기억하게 한다. 그렇기에 더군다나 후회까지나 할 만큼 감정적으로 많은 기대와 소망을 품고 있었던 대상(사람이든 사건이든)에 대한 기억은 잊어버리는 것으로 대응할 수 없다.  


심지어 잊으면 잊으려 할수록,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책에서 경고한 바와 같이, 잊으려 노력하는 그 대상이 내 생각에 찰흙처럼 달라붙는 경험을 할 것이다. 찰흙을 떼어내는 방법은 자꾸 만지고 문지르는 것이 아니다. 그럴수록 자국은 더 번질 것이다. 가장 나은 방법은 그냥 상관쓰지 말고 사는 것이다. 그러면 찰흙은 저절로 말라서 떨어져 나가리라(이것이 인지행동치료CBT의 3번째 물결인 수용전념치료ACT가 주는 지혜이다). 그러나 우리집 하얀 냉장고에서 음료수 꺼낼 때마다 보이는 누런 찰흙에 아예 신경 끌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혼자 차가운 이부자리에 들 때 생각나는 나를 매정하게 떠나버린 사람과 성공할 수 있었던 인연, 한심한 하루를 보낸 뒤에 생각나는 나를 비난하고 모욕한 사람의 기억과 성공할 수 있었던 일들을 아예 무시해 버리긴 힘들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후회 · 안타까움 · 아까움 · 아쉬움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기억을 재분류하는 것이다. 인간 심리의 아주 재미있는 원리 가운데 하나는, 범주화라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사서들이 구조화된 십진분류표를 사용하여, 쌓아만 놓으면 단지 종이더미에 불과한 수십만권의 장서들을 고속으로 접근가능한 정보 저장소로 만드는 것과 같이,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무작위적이고 압도적인 양으로 쏟아 들어오는 감각 정보들과 고속으로 쌓여 가는 기억들을 효율적으로 분류하여 대응할 수 있도록 진화해 왔다.  


[주석상자]

잠깐, 진화… 진화라. 잠시 주석상자를 열어서 진화에 대해 논하고 넘어가자. 솔직히 나는 진화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진화에는 '옳음'이나 '우월'의 뉘앙스가 내포되어 있는데, 실제로 그 진화의 결실이라는 것들을 보면 차라리 사이코패스 신께서 피조물들 일부러 고통 받으라고 개떡같이 설계했다고 믿는 것이 훨씬 나을 만큼 비효율적이고 추할 뿐이다. 고작 COVID-19 바이러스 하나에 면역계 멘탈이 나가서 자가면역질환이 생기고 지구촌이 박살이 나는데…, 다윈주의자들이 믿는 것처럼 아름다운 진화가 어디에 있고 종교인들이 믿는 것처럼 하나님 은혜가 어디에 있는가?

방역마스크 안 쓰면 중증폐렴으로 죽게 창조해놓은 게 창조주 하나님 은혜라고 믿는 세계최강 천재님들은 내 글 읽을 자격 없으니 그만 읽고 교회로 꺼시지길 바란다. 진화는 운좋게 죽음을 피해 온 자들의 궤적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팔짱끼고 '진화압'이라고 세련되게 불러 주는 아수라장 생존자들의 통계적 그래프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고급진 인지처리를 하도록 진화했다기보다는, 그런 고급진 인지처리를 못 한 애들은 다 어벙벙 하다가 죽어버리고 우리만 남았다고 하는 편이 훨씬 적절한 표현이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자. 


기억과 자극의 범주화란 지난 수백만년의 세월동안 우리 종의 생존을 보장했을 만큼 강력한 정신적 도구이다. 환경으로부터의 무작위적인 자극을 생존에 활용하기 위하여 스스로(또는 자의적으로) 분류하고 구조화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무려 인간 정신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인 신경심리학적 단계에서부터 드러난다. 


우리 뉴런들은, 어떤 시각 정보들 가운데서도 수평 자극과 수직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것을 인지심리학에서는 경사 효과(Oblique Effect)라고 부른다. 이렇게 질문해 보자. 왜 우리는 가끔 농담으로라도 정렬되지 않은 물건들이나 비뚤어진 직선을 보면 '불-편'하다고 말하는가? 그냥 강박증이기 때문에? 그래 강박이라고 치자. 그러면 왜 하필 인간에게는 모든 것을 대각선으로 맞추려는 강박이 아니라 수직-수평으로 맞추려는 강박이 나타나는가? 왜 엑셀을 대각선으로 작성하기보다는 직각으로 작성하는 편이 더 편한가? 심리학자들은 그 까닭은 바로 생물들이 생존해 온 이 대지가 수평으로 되어 있고, 그들이 의존한 나무들이 수직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행동 실험의 설명을 통해 사람들이 다른 흔치 않은 기울기보다는 수직과 수평에 더 민감하게 반응함을 볼 수 있었다. (...) 어떤 연구자들이 원송이와 흰족제비의 시각피질 안에 있는 단일 뉴런 활동을 측정했을 때 수평과 수직에 가장 크게 반응하는 뉴런이 기울기에 가장 크게 반응하는 뉴런보다 더 많이 발견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Coppola et al., 1998; DeValois et al., 1982). 나아가 다른 뇌 스캔 연구 결과들을 통해 이러한 뉴런의 비대칭 경향성이 인간에게도 발견되었다(Furmanski & Engel, 2000).

- 센게이지, 인지심리학 (4판), 도경수 외, 2016


 즉, 생존해야 하는 세계에 흔하게 나타나는 패턴들을 더 현저하게 지각하고 그러므로 빠르게 행동하는 자들은 살아남았다. 조상 세대 생존자들이 하필 그런 수평-수직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뉴런을 우연히도 가지게 된 것은 물론 DNA의 우연 덕택이었겠지만, 그 우연이 생존의 비결이 된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ibid) 이것은 우리가 완전한 타뷸라-라싸(Tabula rasa), 즉 정신의 공터에서 인지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정신없는 시각 자극에서 가로와 세로를 선명하게 추출하는 인지적 범주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처럼 특정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뉴런들의 사례는 아주 많다. 마치 메이플스토리에서 첫 캐릭터를 만들면 평균 6, 6, 6, 6정도는 스탯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도 세상을 어느 정도는 구분하는 기초적인 능력이 있는 것이다. 세포 수준에서 이럴진데, 수십억 개의 세포들이 함께 작동하는 현상인 의식과 무의식의 단계에서 범주화는 얼마나 강력할 것인가?


뉴런 수준에서도 작동하는 이러한 구조화의 능력은 보다 고등한 단계에서도 작동한다. 1923년 J. Piaget의 연구를 통해 처음 소개된 '인지도식'(스키마, Schema)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세상 어디에도 완전히 똑같이 생긴 '자동차'는 없다. 출시된 모델마다 껍데기가 다를 뿐만 아니라, 같은 모델이라고 하더라도 어디에서 목격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범주를 조금만 더 넓게 잡고 질문받는다면, 세상 어디서든 똑같은 '자동차'를 보았다고 대답할 수 있다. 심지어 우리 마음속의 '자동차'라는 스키마는 언어적 정의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우리 중 누구도 자동차를 굳이 '네 바퀴가 달리고 운전대가 있고 문짝이 달려 있는 움직이는 탈것'이라고 굳이 언어적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정의하고 세상을 보는 순간 무의식 수준에서 자동으로 작동하던 인지 처리 과정은 의식으로 넘어오면서 갑자기 무엇이 자동차인지 확신할 수 없고 버벅거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의식 단계에서의 범주화이다.


자동차라는 범주와 실제 개별 자동차들의 관계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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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사회적이고 복잡다단한 상황에서도 이러한 범주화의 원리는 적용된다. 이 사람이 지금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게 맞는지 아니면 도끼병인지 - 즉 그린라이트 여부를 구분해 내는 능력, 썸인지 아닌지를 구분해 내는 능력은 인간의 주된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다. 융 심리학이 낳은 희대의 쓰레기이자 편견 제조기인 MBTI 성격검사가 또다시 광신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불안과 불확실성 그리고 높은 신뢰비용 속에서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을 16가지 범주로 딱 잘라 주는 것이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주석상자] 

물론 우리는 그것보다 더 간단명료한 범주가 폐기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백인, 황인, 흑인. 사실은 딱 두 가지 범주도 있었다; 위대한 독일 아리아인, 인종청소 되어야 할 민족들. 하여간 사람을 유형론으로 나누는 것은 비과학이며 비윤리라는 점에서 레이시즘과 전혀 다를 바가 없으니까 MBTI좀 하지 말라고! 아 진짜 사주팔자 보는 것들이랑 쌍으로 미치겠네 진짜;; 


한편 우리가 추구하는 전문가로서의 능력 역시, 어느 특정한 분야에 랜덤하게 제시되는 대상들을 목적에 맞게 합리적으로 범주화하는 능력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없을 것이다. 직업생활 역시, 너는 이것을 어떻게 새롭게 범주화할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대결하는 시간들에 다름없다. 내가 직업적으로 수탁하게 된 사건이 그동안 처리해 온 수많은 경험에 비추어 어느 유형인지 묻고, 이번에는 기존의 범주를 탐색하는 능력을 사용해 솔루션들을 검색하여, 다시 어떻게 이 사안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편입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응답인 것이다. 


이러한 범주의 고등한 사용 사례가 증명해 주듯이, 우리는 벌써 범주를 인위적으로 창조하고 폐지하며 병합하고 분할해왔던 것이다. 실용적이고 창의적으로 범주를 설정 · 해제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순간만큼, 지능이 가장 빛나는 장면은 없을 것이다. 자 그러면 우리가 이 이야기를 시작했던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쉬움과 아까움을 이기는 법에 대해서 마저 이야기하자. 아마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이미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대략적으로 감을 잡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잊기 힘든 안타까운 기억이라면, 오히려 의미있고 가치로운 범주로 이첩시켜 주는 것이다.


기억이 잊히지 않는 것이라면, 심지어 너무 아픈 기억이라면, 기억에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나의 '삶의 성장 과정' 범주로 편입해주는 수밖에는 없다. 이것은 결코 그 기억을 반드시 화해하라거나 용서하라거나 아니면 딛고 일어서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 기억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정신적 정면대결을 펼치라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단지 한번 성찰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기억이 얼마나 아프든 간에 나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 무조건 하나는 있을 것이다. 아픔과 실패와 불운의 경험이 나에게 가르쳐준 크고-작은 교훈들을 마음속에서 또는 일기장에 정리해본 뒤, 경험이라는 스승에 예를 갖추어 인사드리고, 그 기억을 '삶의 성장'이라는 명예의 전당에 헌정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특정한 기억에 더욱 강한 심리적 고통을 느낀다면, 당신은 그 기억을 '특별히 의미깊고 아픈 기억'이라는 특별 범주에 포함시켜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 특별 범주를 폐쇄하라. 그 특별 계정 안에서의 고통의 한도는 끝이 없다. 그 사건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이 정도 일이면 내가 무한한 슬픔과 탄식을 느껴도 괜찮겠지 하하> 라고 적어 놓은 범주에 그 사건을 가져다 놓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은 그 자체로 범주들의 춤이다. 감정적으로 무엇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싫어하기로 여길지조차 하나의 범주이다. 후회와 안타까움, 아까움과 아쉬움도 하나의 범주이다. 그 범주들을 싹 드래그하여, 해당 경험에서 배우게 된 나름의 교훈들을 덧붙인 뒤, 모조리 <감사한 배움과 성장 경험> 폴더에 넣으시라.


만약 당신이 그렇게 범주를 재설정한다면, 그 기억이 가진 특별한 고통은 갑자기 아주 평범하게 느껴질 것이다. 왜냐하면 성장이라는 폴더에는 고통이라는 해쉬태그가 자동으로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자동으로 저장되어 있느냐면, 이미 우리는 살면서 고통스러운 성장과 훈련의 순간들을 거쳤고, 성장과 훈련은 원래 그냥 고통스러우니까 고통에는 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두발자전거를 배우다 생긴 흉터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 때 도랑으로 추락해서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던 육체적 고통도 기억한다. 첫 번째 고백과 첫 번째 거절의 느낌도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압도적인 고통들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그런 일을 당하면 고통스럽지, 안 고통스럽겠는가? 고통은 때론 압도적이지만, 압도적이기 때문에 고통인 것이고, 전혀 이상하지 않다. 우리 모두 그런 막대한 고통과 흉터들 속에서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이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실은 알고 있다. 고통은 정상이다. 


게다가 심지어 우리는 단지 고통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성장을 위해서 고통의 바다로 뛰어들기까지 한다. 자발적으로 헬스를 하면서 근육이 불타는 느낌을 받고, 네 번 잊고 다섯 번을 외워도 안 외워지는 개념들에 좌절하고 열받고 가끔은 답답해서 울기도 하면서 결국엔 끝까지 외운다. 이별과 상처 속에서 사람을 거르고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심지어 거절당하고 또 거절당하면서 거절당해도 크게 상처받지 않는 법을 배운다. 사실 우리는 고통 마니아들이다. 고통이 곧 성장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사실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고통스러운 후회와 상실의 기억조차, 그것이 고통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이용 하여서, 성장이라는 폴더에 옮겨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범주를 통해 파악한다는 점은 인간을 자유롭게 할까, 제한하게 할까? 범주는 인간에게 존재를 준다. 내가 나의 시에서 자주 언급하듯이 인간은 새인 동시에 새장인 존재다. 범주화하는 동시에 범주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런 생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당신의 마음에 들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반드시 만족할 만한 희망적인 사실을 알려주려고 한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런 범주를 얼마든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정신 자체가 범주지만, 그 범주를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신을 바라는 대로 재 창조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정신이 위대한 까닭이다. 영원히 꺾이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영원히 꺾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심리의 제 측면들을 이용하면 마음이 쉽게 편안해지고, 삶이 굉장히 쉬워지게 된다. 범주에 대한 이해도 이와 같다. 과거의 안타깝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성장의 교훈으로 재평가하는 인지적 대처 방략을 통해, 독자 여러분 모두가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원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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