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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May 14. 2021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 구상

지방일자리사업과 가출청소년 그룹홈을 융합한 재활형 일자리마을의 가능성

서나루의 "이런거 어떠세요" 01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의 구상: 

지방일자리사업과 가출청소년 그룹홈을 융합한 

재활형 일자리마을의 가능성


지옥문을 장식할 거적때기*


가출청소년의 숫자가 20만명에서 40만명으로 추산된다. 그 중 70%는 거리에 방치된다. 가출청소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비참하고 위험한지는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말해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빈곤, 학력단절, 경력단절, 성매매(성착취), 가정폭력, 정신질환 등과 같은 주제에 대해 인생의 상당기간 동안 공부해 왔고 일부는 관계단체에서 활동중인 바도 있다. 나는 가출청소년이라는 문제가 그 모든 문제들을 마치 클러스터 폭탄(집속탄)처럼 증오스러울 만큼 앙증맞게 압축해 놓은 사회문제의 뷔페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어슐러 K. 르 귄의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1973)을 알고 있는가? 그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 가출청소년이 추운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는데, 이 사회는 그 양반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출카페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애들을 아저씨들이 성 착취나 일삼는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무슨 소용인가? 40만명의 고통받는 아이들을 내팽개쳐놓는 한 현대사회의 영광 같은 것은 "지옥문을 장식할 거적때기" 같은 것이다. 


나는 최근 청소년 관련 교육을 듣고 있는데, 덕분에 청소년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공공적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할지에 대하여 여러 구상을 하고 있다. 나는 사회복지에 있어서 한가지 중요한 딜레마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생산성에 관한 것이다. 사회복지는 전통적으로 경제적 자유주의자(혹은 신자유주의자)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하였다. 그것은 별다른 것은 아니고, "사람들을 소비만 하는 존재로 격하시킨다" 라는 비판이다. 신자유주의의 철학적 전제는 '인간은 빈곤을 면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그런 근면성실이 인간 자신과 사회 모두를 발전시킨다. 근면성실을 불러오기 위해서는 빈곤은 충분히 가능성 있고 두려운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국가의) 개입은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든다' 라는 것이다.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고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기 때문에 귀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는 명제이다.




생산성이라는 뜨거운 감자


사회복지학 전공자인 내가 '생산성' 처럼 관계자들에게 거의 금기시되는 주제를 꺼내는 것을 용서해주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사회복지 대상자들의 생산성은 확실히 논의할 가치가 있는 것은 맞다. 왜냐하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소비하는 존재, 즉, 돈을 쓰는 존재이고 그 돈은 본인이 벌지 않으면 누군가가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모든 인간은 비용을 발생시킨다. 우리가 타인의 비용을 감내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사람들이 인권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가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거나(우리가 노령이나 장애인이 아니라도 노령연금이나 장애연금을 부담하는 까닭이다), 그 사람들을 지원하지 않으면 사회적 안전과 통합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우리가 범죄자가 아니라도 교도소 등 교정시설을 운영하는 까닭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비용의 청구가 법학적으로 권리의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복지대상자들은 결코 대가 없이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사회 구성원인 한, 무조건적으로 인간의 권리(인권) · 시민의 권리(시민권) · 사회적 권리(사회권)을 보유하기 때문에 누구나 그 권리를 행사하여 취득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나의 개인적 의견이 아니라, 한국 정부의 법적 셋팅이다. 『기초생활보장법』(법률 제6024호, 1999)은 기존 『생활보호법』(법률 제913호, 1961)에서의 생활보호대상자 개념을 폐지하고 기초생활수급자의 기초생활수급권을 지정했다. 


'수급권'이라는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무림고수의 태극권이나 북두신권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권리를 소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복지대상자들은 인권이라는 일종의 법적 채권 행사를 통해 생활비를 수령하는 것이다. 그것이 공공성이고 인권이며 헌법정신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런 권리의 개념을 이해를 못하거나 아까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가급적 이해를 하는 편이 좋을 것이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세금 분담을 아까워 하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언제가는 그 권리 중 적어도 일부를 행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일부는 이미 행사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분한 이유가 있을지라도, 분담은 언제나 재정적 한계에 마주친다. 사람들이 딱히 관심이 없는 대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청소년이 바로 그 대표적인 집단이다. 사람들은 '학생'들, 특히 '서울대 갈 수도 있는 청소년'에게 관심이 있지 취약집단으로서 '청소년'에게는 관심이 없고 그래서 기부도 정책적 옹호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인들은 장애를 얻거나 노령이 될 가능성은 있어도, 다시 청소년이 될 확률은 없으니 말이다. 마치 군대를 이미 전역한 사람이 모병제 도입에 별 관심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사회복지 재정을 단순히 타인의 사회적 분담에만 의존할 경우, 사람들의 관심 부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재정난에 직면하게 된다. 



복지와 임파워링 :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복지재정을 단지 사회적 분담에 의존하게 될 때, 복지 대상자들에게도 역시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돈의 상대적인 크기 가늠을 학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돈은 통상적인 노동과 연동되어 있는데, 작은 노동으로 너무 많은 돈을 받거나 · 노동 없이 돈을 받거나 · 돈을 받지 않고 노동하거나 · 많은 노동으로 너무 적은 돈을 받거나 · 매우 특수한 노동으로 돈을 벌 때 노동-화폐-재화 3자간의 대략적인 상대크기를 가늠하는 경제관념은 왜곡되게 된다. 이것의 대표적 사례가 성매매 피해자(나는 이러한 손상의 관점에서는 '성노동자'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인 것이다. 『레이디 크레딧』(김주희, 2020)을 참조하라. 


또한 그것은 자기효능감과 경제적 유능감을 키우는 데에도 지장을 초래한다. 일을 하는 것은 단지 돈을 버는 목적 뿐만 아니라, 커리어 패스(나는 '커리어 나무'라고 부른다)를 키우는 것과 내적인 전문성과 자신감을 축적하는 목적도 대단히 크다. 왜 수많은 학생들이 일이 없으면 자원활동이라도 해서 무언가를 쌓겠는가? 일은 마치 블랙홀의 호킹 복사처럼, 외적으로는 돈과 커리어를 생성하지만 내적으로는 경험과 자신감을 생성하는 것이다. 당사자를 유연한 노동자로 육성하는 것은 당연히 종합적인 관점에서 사회복지에서의 당사자 임파워링(Empowering) 문제와 직결되며, 인간을 총체적으로 강화하고 주체로 우뚝세운다는 점에서 임파워먼트(Empowerment)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가 없이 돈을 받으면 사람이 게을러진다'는 사회복지에 대한 전통적인 비난은 극히 부분적으로만 합당하며 실제로는 쓸모없는 비판이다. 대가 없이 돈을 받기도 힘들 뿐더러, 건강하고 잘 기능하는 사람은 수급권으로 연명하는 것에 만족하지도 않는다. 수급권이나 보조금은 물론 있으면 좋지만, 그러한 사회급여를 아무리 받더라도 결국 거의 모든 인간은 자아실현을 위해 일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걱정도 사회복지 급여가 충분하기나 하고 나서 했으면 좋을 것이다. 내가 사회복지대상자들도 생산성을 갖추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는 까닭은, 헌법적 권리이니 수급권의 행사이니 인권이니 아무리 이론적인 정당성이 단단해도 결국 한국의 세금이 너무 적고 사회복지예산이 너무 부족해서 주고 싶어도 줄 돈이 없기 때문이다.


보건학 · 복지학을 포함한 모든 사회학 연구자나 학생 가운데 구조체계적 관점을 취하지 않는 사람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지금-여기에 목숨이 붙어있는 사람을 어떻게든 살려내야 하는 절박한 필요성에 직면한 사람들은 결국 대상체계적 관점을 가지지 아니할 수 없다. 즉, 케이스-바이-케이스로 접근하여 최대한 개인의 역량을 끌어올려서 그 사람이 어떻든 이 시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임파워링 하는 것밖에는 수가 없는 것이다. 성매매 가출청소년이라는 물리적 문제 앞에서 제3물결 페미니즘 책 펼쳐서 한국의 가부장제가 얼마나 제왕적이니 여성혐오 문화가 어쩌니 해봐야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사회복지의 진짜 버거운 적수는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은 심어져 있는 은근한 여성혐오(Misogyny)와 차별 문화 같은 게 아니라, 애들 줘패는 애비 · 깡패 · 포주 같은 살아있는 육체적 존재들이다. 가출 청소년들을 낚아채 가는 것은 살아있는 진짜 악한 인간들이라고.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에 대고 '그러면 여성혐오 문화는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요?' 라고 말하는 사람은 제발 없기를 바란다…. 물론 그런 남성 괴물들을 만든 것은 가부장제이고 여성혐오이겠지. 하지만 한 번 인간의 몸을 입은 문화들은 다시는 문화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한 번 한국어를 쓰기 시작한 사람에게서 한국어를 쏙 빼낼 수 있는가? 가부장제가 마늘과 쑥을 처먹고 한 번 인간이 되고 나면 가부장제를 아무리 욕해봐야 쓸모가 없다. 그때부터는 가부장적인 '인간'을 제압해야 하는 것이다.



자력구제라는 새로운 도전

 

가출청소년 등 소수자에 대한 자원 부족과 인식 부족. 어떻게든 사람은 살려내야 하는 이런 이중의 곤란함 속에 있다 보면, 거시적인 사회구조를 건너뛰고 소수자 집단의 자조적 보호와 영달에만 집중하는 한국 여성의당(Korea Women's Party)식 접근법이 훨씬 유효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된다. 지금-여기의 인간에게 돈 한 푼 쥐어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는가? 여성의당이 신라호텔 이부진 사장에게 애플망고빙수 사달라고 하는 거 사람들이 다 비웃었지만, 나는 지금 와서 재고하건대 그것이 얼마나 여성의당이 여성문제 해결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시도했는가를 느낄 수 있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비록 트랜스젠더 등 사회적 소수자를 희생양 삼아 의제셋팅을 하는 식으로 한국인들의 인권개념 부족과 반지성주의를 그대로 노출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과오가 있었지만, 결코 여성의당의 모든 것이 잘못된 헛발질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성의당이 TERF/한국식 래디컬 페미니즘의 '야망보지' 담론을 현실정치 장면에서 재해석하여, 기존 자본주의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여성의 남성만큼의 성공을 겨냥하려 하는 여성의당식 정책철학으로 재구성한 현상은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가치가 있다. 전통적인 맑시즘 조직, 예컨대 <사회변혁노동자당>이나 <노동자연대> 등이 줄기차게 여성차별의 근본은 자본주의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성차별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자본주의 문제와 결부하는 방식으로 -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희석하는 방식으로 - 이론적 · 실천적으로 대응해 왔다. 맑시즘 운동에 여성운동을 포섭시켜서 참여시키는가 하면, 모든 것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이고 반지성적이며 가부장적인 의도가 다분한 프레임으로 유도하여 온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성 맑시스트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솔직히 그건 물타기 맞죠.


이에 반해, <여성의당>은 자본주의와 불평등이라는 꿈쩍도 않는 문제는 깔끔하게 무시하고, 혁명보다는 비교적 쉬운 성차별방지 법제화와 일상의 성차별 등을 집중겨냥함으로써 지금-여기 여성 동지들의 생존과 번영에만 집중하는 독특한 정치적 실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이렇듯 여성의당은 그 세력규모와 무관하게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니다. 전통적 사회주의자들의 유서깊은 욕설 중 하나인 '개량주의' 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매우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으로 순응적이고 사회문화적으로 개혁적인 당사자주의적 · 생존주의적 액티비즘'은 앞으로도 주의깊게 관찰해야 하며, 언제나 자원부족에 시달리고 어려운 과도기에 있는 사회복지와 소수자지원 시스템에서도 참고할 가치가 있다.



임시방편이지만 매력적인 자력구제의 철학


복지서비스를 통한 재화의 분배는 그 액수가 실질생활비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사실과, 청소년들의 경우 부모의 존재 여부에 상관없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 노동 없이 돈을 받을 경우에 경제관념 자체가 건전하게 형성되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복지서비스 수령자들이 나름의 생산력을 갖출 '현실적인' 필요성이 요구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노동을 사회보장급여 수령에 대한 대가나 대위권(代位權)과 같이 취급하는 경우로 오해받거나 '노동 조건부 복지'라는 컨셉으로 인권 정신을 위협하는 '제3의 길' 등 중도우파적 발상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다. 나는 그런 비판을 인정하고 장기적으로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자아실현이라는 심리학적 지평에서, '커리어나무' 개발이라는 HRD의 지평에서, 그리고 앞서 언급한 <여성의당>이 보여준 바와 같이 형식적 민주주의/형식적 자유경쟁시장이라는 '최소한의 조건(Condicio Minimum)' 위에서 새롭게 등장한 경제적 자력구제 시도라는 지평에서 서비스대상자에 대한 직접적 임파워링의 실효성과 잠재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회복지대상자들이 기존의 산업과 결합하여 자신의 위기상황을 넘기는 동안 일정한 노동을 통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산업권의 일종인 '노동할 권리'에 부합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날 노동과 고용 문제가 심각한 딜레마에 처한 까닭은, 당연한 말이지만, 노동수요와 노동공급의 불균형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지리적인 문제 때문이다. 노동집약적이고 단위생산성이 낮은 하청업체나 중소기업들은 땅값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지대가 저렴한 공단이나 시골로 향하게 된다. 그런 곳에는 사람이 없고, 그런 곳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구인난(인력난)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도시에 있는 기업들은 반대로 땅값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시간과 공간 양측에서 단위생산력이 높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경영한다. 도회지는 쾌적하고, 사람도 많고, 인프라가 잘 정비되어 있고, 여러 서비스가 풍족하다. 퇴근 후에 맥주도 마실 수 있고 극장에서 영화도 볼 수 있고 이성도 만날 수 있다. 인구당 비중이 적은 동성애자를 비롯한 LGBTAIQOC 등 성소수자들에게는 도시가 훨씬 더 중요해진다 - 큰 수의 법칙(LLN)을 따라 그러잖아도 희귀한 단짝을 만날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 그러니, 당연히 사람이 몰려서 구직난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도시적 사회에 가출청소년이 들어올 때, 문제가 생긴다. 도시에서의 삶은 높은 생활비와 월세 때문에, 도시의 산업에 참여해서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아니면 모두를 빈자로 만들만큼 가혹하기 때문이다. 가출청소년의 18.5%는 한달에 5만원 이하의 돈으로 살아가고, 11.6%는 6만원~10만원의 돈으로, 9.8%는 11만원~20만원 사이의 돈으로 살아간다.(청소년보호위원회, 『가출청소년 경로현황 및 단계별 대응과제』, 2001, 링크) 우리와 같은 대부분의 성인들도 도시에 붙어 있으려고 하루종일 일하고 자격증을 따고 중기청 전세대출을 알아보고 아둥바둥한다. 4년제 대졸 전문직도 생존의 불안을 느끼는 곳이 도시이다. 아무런 자격, 기술, 노하우, 경험이 없는 채 완전히 알몸으로 거리에 나오게 된 가출청소년은 반드시 심각한 부상과 손실에 직면하게 된다. 


"한 헬퍼가 성매매를 위해 오피스텔을 운영하는 현장이 포착됐다. 또 아이들을 끌어들여 노래방 도우미, 마사지 등의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박한나, 이데일리, 2020-02-13, 링크


"16세 이하 가출청소년 68.9% 성매매 경험" (여성가족부, 『성매매실태조사』, 2016 링크)  


"남자청소년의 경우 대부분 절도범죄를 행하고 범죄의 보조자 내지 주동자가 된다" (여성가족부, 2013 ; 오세연, 『한국경찰연구』, 「가출팸 청소년들의 범죄피해대상자 선택에 관한 연구」, 2018에서 재인용, 링크)



가출청소년과 범죄 - 성매매문제의 본질에 관하여


아무런 전문기술 없이 생존에 내몰린 가출청소년들은 이처럼 매우 부적절한 산업에 노동력으로 공급된다. 왜? 대부분의 양식 있는 사람들은 '수요가 있어서' 라고 말하며 성구매를 일삼는 사람들을 비판할 것이다. 물론 성구매자들을 감옥에 보내야 하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단순히 수요가 있기 때문에 공급이 있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이다. 수요와 공급 사이에는 그 둘을 매개하는 산업이라는 블랙박스가 존재하고, 그 블랙박스의 다른쪽 끝에는 공급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산업경찰을 성매매와 범죄라는 블랙박스에 투입해서 하나하나 추적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당장은 어렵다. 일단은 블랙박스를 뚜껑 덮인 상자로 놔두고, 그 상자 안팎의 흐름을 차단하는 수밖에 없다. 노르딕 모델로 불리는 성매매 수요차단모델처럼 수요를 차단하는 것은 사법의 영역이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인간 재료들의 공급을 차단하는 것은 바로 사회복지의 영역이다.


성행위를 사는 사람이 구매의사를 접으면 성매매가 없어지지만, 성행위를 파는 사람이 '성을 판매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어도 성매매는 없어진다. 사회복지와 공공보건 종사자들은 그 지점에 개입해야 한다. 지금까지 페미니즘 사회학 접근은 남성의 성매수라는 가해행위에 초점을 두어 성구매자 처벌에 집중하였다. 또한 여성혐오자들의 뿌리깊은 성매매당사자 및 폭력 피해자 비난 문화(Slut-Shaming · Victim-Blaming)에 대항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성판매자에게 어떤 행동변화를 요구하거나 교정하려는 시도는 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성판매자에 대한 행위이론이나 의사결정이론적 접근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내가 '주체화의 딜레마'라고 부르는 사회학의 고질적 문제와 궤를 같이한다. 성매매 피해자를 주체적 인간으로 간주하면 그들이 성매매를 어느정도 자발적으로 선택했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이 있다는 논리적 귀결의 압박을 받기 때문에 완전히 무력화된 피해자로 프레이밍해야 하는데, 그러면 다시 당사자를 과거에 '금치산자' 라고 부르던 피성년후견인 취급할 수밖에 없게 됨으로써 여성 주체성의 인정이라는 여성주의 접근의 대원칙에 예외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실이 중요하다. 어떤 종류의 사회적 금기나 쉬쉬하는 분위기에도 맞춰줄 생각이 없다. 그것은 조선시대의 피휘(避諱)만큼이나 낭비적인 행위일 뿐만 아니라 실제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나는 주체화의 딜레마에서 단호하게 한 쪽 편을 들 수밖에 없다. 정신보건과 HRD의 관점에서, 성매매피해자를 피성년후견인에 준하는 일종의 환자로 파악하고 재활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훨씬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가깝다. 성 구매자에게도 특정한 문제가 있듯이, 성 판매자에게도 특정한 문제가 있다. 나는 거짓말은 못 하겠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성판매자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고 모든 것이 성구매자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하면서 트위터에는 항정신병 약을 한움큼씩 먹는 '성노동자'를 리트윗 하면서 오오 이 분이야말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자 주체라고 떠받들어줄 것인가? 그 사람은 자살 직전의 환자라는 말이다! 환자는 룸살롱이 아니라 병원으로 가야 한다. 


성노동론? 가능하지. 석사학위 이상 · RIR(소득대비 주택임대료비율) 20% 미만 · 자산 1억원 이상 · 정신질환 및 고액질환 없음 · 원래 직업 있음 · 가족관계 좋고 가족 건강 양호 · 국가전문자격 및 국가기술자격 소지 · 통신비 및 카드연체기록 없고 신용점수 800점 이상인 사람이 성판매 하고자 한다면 그런 건강한 동료 시민의 성노동을 누가 무슨 권리로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정말로 저런 건강한 사람들이 단지 그냥 새로운 직업을 시도해 보려고 성매매를 시작한다면 진심으로 환영한다. 성매매만이 생산하는 대체불가능한 가치가 있으니까. 그러나 실제 성매매피해자 가운데 저 자원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가진 사람이 있는가? 전부 다 당신이 외면하고 내가 외면하고 사회가 갖다버려서 병들고 부상당한 사람들이지! 나는 심신미약에 의한 범죄피해를 주체성으로 포장하는 성노동론을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 성매매 산업은 누군가 사듯이 누군가 팔고 있으며, 그 파는 사람도 재활 프로그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행 『성매매피해자보호법』(2004)의 입법취지 자체는 적절하다.) 이 이중성을 수용하고 수요-공급 양쪽을 다 틀어막는 것이 성매매문제에 관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길이다.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 : 수요공급곡선의 순풍을 타고


그렇다면, 주로 여성 가출청소년에 있어서 성매매 피해와 주로 남성 가출청소년에 있어서 범죄로의 노동 공급을 틀어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그 사람들에게 적절한 주거와 직장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복지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일자리와 주택 등 인프라가 초과공급 상태인 시골과 중소도시의 잠재력이 빛을 발한다. 가출청소년과 같은 울타리 바깥의 시민들이 근본적으로 도시의 고물가와 일자리난에 노출되면 어떤 산업에 종사할지라도 - 심지어 그것이 범죄 산업일지라도 - 임금과 노동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가정으로부터 축출되어서 원가족으로 복귀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거나, 학교에 복귀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거나,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여 다른 방법으로 앞으로의 삶을 모색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우리가 주거-생활 전체를 포괄하는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할 때, 그것이 도시에 위치한다면 오히려 똑같은 돈으로 비교적 더 적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가출청소년 숙소를 지방으로 옮겨서, 그리고 지역의 산업과 결합하여, 청소년에게 일자리와 숙소를 연결시켜 주고 지역 마을공동체와 연결하여 하나의 재활형 마을을 만들어주는 것은 어떨까? 이것이 내가 제안하는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의 구상이다. 나는 가출청소년이 연고지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출발을 하는 것이 오히려 치유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가출청소년들은 학교와 가족과 단절되어서 새로운 가출팸을 형성하고 알지도 못하는 고용주와 '헬퍼'들에게 찾아간다. 그 결과는 보다시피 참혹하다. 정부 · 사회복지사 · 지역 생산직 사업체가 기존의 못된 어른들을 대체하는 새로운 가족과 고용주가 되어주는 것이 이 구상의 기본 원리다. 지방의 잠재적인 일자리 자원과 값싼 주택들은 쉽게 확장되기 어려운 청소년보호시설의 수요 중 드롭인센터(Drop-in Center)를 제외한 단기쉼터와 장기쉼터의 도심 서비스 수요를 비교적 쉽고 빠르게 충족해줄 수 있다. 


지구온난화처럼 너무 명백하고 심각하기 때문에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는 문제이지만, 현재 가출청소년 쉼터는 말 그대로 '턱없이 부족'하다. 거리에 내몰린 가출청소년과 가출청소년 팸을 추적해서 포섭하는 전담인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가출청소년이 마음놓고 성장할 수 있는 장기쉼터 자체도 수요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도록 부족하기 때문에 가출청소년 쉼터는 현재로서는 아무리 증설해도 넘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현재의 두 배 규모로는 증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음 기사들을 참고하자.


2020년 청소년 쉼터는 현재 전국적으로 135개가 운영 중이다. 동일 시점 최대 수용 인원은 1369명 수준이다. 2019년 기준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의 연인원은 3만2402명이다. 결국 12만 명 대비 약 27%의 가출 청소년만이 청소년 쉼터를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다.(민주신문, 2020-10-27, 링크) "우리는 통조림 인생 같아요. 유통기한이 있는 통조림처럼 기한이 되면 한 쉼터에서는 나가야 하니까요." 가출하거나 집에서 내쫓겨 쉼터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청소년들의 얘기다.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위한 중장기쉼터와 사회적 보호장치가 부족하다 보니 나온 자포자기성 푸념이다. (연합뉴스, 2017-03-05, 링크)


이러한 상황에서, 대도시에 비해 50%~70%, 심지어 그 이상 저렴한 주택 임대료 · 언제나 모집중인 중소기업 일자리 · 조용하고 넓은 자연환경 등을 갖추고 있는 지방 소도시 공업단지나 시골 공업단지의 조건은, 포화된 도심 가출청소년의 생활과 일자리 그리고 재활과 재교육을 책임지기에 아주 적합하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사회복지사들의 현장 코디네이션이다. 시골이라고 해서 완전히 범죄에서 자유롭거나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노동자에게 아주 융숭한 대접을 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다. 주택과 주택이 위치한 지역환경에 대한 안전 및 품질관리, 지역주민과의 융합 프로그램, 지역자원 끌어오기, 지역 기업과의 적절한 일자리 매칭 코디네이션 등이 케이스-바이-케이스로 지원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한다.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 : 구체적 조건들


이 프로그램에서 노동임금은 물론 높을수록 좋지만, 최저임금보다 높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고임금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 요구사항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임금보다 지역사회에 가출청소년 재활의 집을 안전하게 생착시키고, 회사로부터 청소년의 특성에 맞게 안전하고 짧게 일하는 노동환경을 제공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상에서 중요한 것은 가출청소년에게서 박탈된 '사회적 관계'와 '생산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즉, 마을에 다시 섞여들고, 스스로를 먹여살릴 일을 다시 시작하고, 그렇게 자기효능감과 재기에 필요한 개인 자본을 축적하고, 그 돈으로 자기가 하고싶은 것과 갖고싶은 물건도 사 보고, 질환을 치료하고 학업을 마무리하고 커리어를 성장시킬 시간을 벌고, 가능하다면 그렇게 쌓인 자기효능감과 자아정체감을 통해 단절되었던 가족이나 선생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1.    일반안전


그러한 성장이 이 기획의 궁극적 목적에 있기 때문에,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의 일자리 매칭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하는 가치는 바로 안전이다. 이미 수많은 위험들을 피해서 삶이 서바이벌 게임이 된 아이들이고 청소년들인데, 더 이상의 어떤 위험에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이것은 가출청소년이 스스로 생산력을 갖기 위해서 매칭될 기업에 대한 매우 심층적인 협상과 노동조건 감독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반드시 맞서야 하는 과제이다. 



2.    산업안전


특수용접 자격증을 취득하고 용접공으로 일하던 몇 년 전, 어느 시골의 중소기업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이번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 구상에서 언급한 입지와 비슷한 XX군 XX면 위치한 XX정공이었는데, 사업이 잘 되는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위험한 격무에는 시달리지 않았으나 그만큼 안전관리감독도 허술해서 한 번은 드릴에 장갑이 빨려들어가 손목이 날아갈 뻔 한 적도 있다. 산업안전은 단지 산업기준을 맞추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한 회사의 문화와 관습이 얽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은 주택의 가격과 여건만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안전기준을 충족하고 안전관리감독을 성실히 이행하며 무재해 실적이 좋은 회사인지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가 있은 후에, 다른 입지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의 마을 개척에 있어서 산업안전기사 자격 보유자, 노무사 등이 동행하며 청소년에게 적절한 강도와 안전도의 일자리인지를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3.    대인안전 (범죄예방)


또한, 청소년상대/청소년간 범죄 예방 등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시골은 CCTV · 보안문 · 경찰서 등 보안시설과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처할 자원이 대단히 부족하기 때문에, CCTV 등 보안설비를 추가로 설비하고 마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범죄와 사고의 가능성에 대하여 예방하고 대응하는 매뉴얼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시골이 아무리 CCTV가 없다고 해도, 대도시에서 숲처럼 많은 CCTV 아래에서도 수많은 범죄에 노출되는 가출청소년에게는 일정한 직장과 주거가 보장되어 있는 이곳이 훨씬 안전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또한 현장의 여러 위험요인들을 사전에 예방하고 제거하기 위하여 청소년지도사와 사회복지사 등이 청소년그룹홈의 형태로 함께 상주하며 상시 관리감독을 수행해야 한다. 



4.    워러밸(일과 배움의 밸런스)


안전과 범죄예방이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의 기초 토대라면, 그 다음에 수행해야 할 재활과 육성 서비스의 핵심은 바로 일자리와 교육의 밸런스이다. 가출청소년이 정상적인 일자리로 자신의 생활비 일부를 감당함으로써 같은 사회복지예산으로 훨씬 더 나은 복지서비스를 누리는 것은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을 떠올린 가장 핵심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 구상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최종 목표는 당연히 더 고등한 기술자격의 취득, 학위의 취득, 커리어나무의 개발이어야 한다. 


따라서, 하루 노동시간은 일정 시간 이하로 제한하여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하루 6시간 정도면 소득과 여가/공부시간 확보의 적정선이라 생각한다. 성인은 8시간 일하지만, 청소년이라면 2시간은 공부와 휴식을 위해 빼줘야 한다. 학생들은 잠이 많으므로 10시에 출근해서, 점심시간 60분 가지고, 17시에 퇴근하는 것을 노동조건으로 하여 기업 측과 협상할 수 있도록 한다. 17시부터 21시까지 4시간은 학교공부나 검정고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한다. 가능하면 지역 분교로 전학하여 방과후학교 등에서 공부하거나, 학교 수업 이후 근무할 수 있도록 한다. 9시부터 12시까지는 자유시간을 줘야 한다. 혹은 오전 근무 청소년과 오후 근무 청소년을 나뉘어서 사업주 측이 업체를 장시간 가동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 개인의 업무시간을 적정수준으로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5.    적극적 융화


청소년의 마을 진입은 많은 기회와 리스크를 함께 안고 있다. 청소년들이 마을에서 주력 청년구성원으로 인정받을수도 있고, 비행청소년의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가서 현지 청소년들과 잘못된 방식으로 융합될 가능성도 있다. 그것을 관리하고 조성하기 위하여서는 사회복지사와 청소년지도자들이 마을공동체를 육성하는 정기적이고 지역의 니즈를 해결해주는 유용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지역주민과 재배치된 가출청소년들을 모두 참여시키고 임무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겨울철 김장김치 담그기나 음악회처럼 일회성 행사를 넘어서, 지역사회 서비스제공자의 한 축으로 가출청소년들이 진입할 때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청소년들이 자체적으로 협동조합형 사업체를 만들어서 지역주민 대상으로 서비스를 판매하며 경영하는 벤처기업형 · 농번기에 주기적인 임금노동을 제공하는 농업형 · 기능사/산업기사 등 단기적으로 취득가능한 자격증을 따서 지역주민에게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형 ·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가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요금을 받는 돌봄형 등을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구상을 추진하는 사회복지법인 등은 마을벽화그리기 · 마을환경개선사업 등 지자체 사업을 수주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일감을 제공하고 임금을 제공하는 식으로도 가출청소년의 경제적 자립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복지사각지대에서 간절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계실 것인데, 봉사활동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의 의미를 배우고 또 하나의 개인적 의미와 또 한 명의 개인적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6.    적극적 치료와 사전 스크리닝 그리고 유지관리


가출청소년 관리에 있어서 단기적으로는 주거지를 옮기고 직장을 구해주는 것이 관건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교육과 함께 치료도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반사회적 성격장애나 심한 공격성 등 정신과적 문제를 안고 있는 가출청소년의 경우 오히려 소수의 인원이 부대끼며 함께 살아가는 재활형 마을공동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엄격한 스크리닝에 따라 공격성과 반사회성을 띈 청소년들은 그것이 보다 잘 관리될 수 있는 다른 방식이 고려되어야 한다. 마을의 존재 조건은 친사회성과 우호성 그리고 평화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마을들이 여럿 생길 경우에는, 마을에 내려간 가출청소년들이 부당노동이나 기타 위험 또는 상호간의 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전용 관리서비스 핫라인이 운영되어야 한다. 또한, 여기서 부적응한 청소년들을 다시 받아줄 수 있는 2차 안전망의 기능을 하는 임시 숙소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완충 숙소'로 부르고 싶다. 개인마다 어떤 마을 · 어떤 구성원이 적합할지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부적응한 청소년 개인에게도 계속해서 다른 마을로 가서 살아보면서 적응할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



7.    무한한 교육


또한, 교사 · 심리상담사 · 임상심리사 등이 학생들의 발달수준을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이상 유무를 감지해야 한다. 도회지 학생들과의 문화적 · 학습적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 다양한 저비용 고효율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원격수업 · 칸 아카데미 · OCW · MOOC · 방송통신대학 · 사이버대학 · 학점은행제 등이 제안될 수 있는 옵션이다. 아이들을 치유적인 환경으로 보낸다는 명목하에 디지털 환경을 차단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뒤떨어지게 하는 것은 쉽고 안전한 길이지만 옳은 길은 아니다. 


컴퓨터실 형태의 사이버 공부방 환경과 1인 1스마트폰이 제공되어야 하며, 페이스북 · 트위터 · 카페 · 밴드 · 포르노사이트 · 도박사이트 등 디지털 청소년유해환경을 단지 통제하기보다 그것에 대해서 함께 심층적으로 해부하고, 예상되는 유해한 사이트를 직접 함께 접속하여 뜯어보면서, 그것이 인생에 미칠 치명적인 해악을 진지하게 정면으로 설명하고 교육해야 한다. 그리하여 청소년들이 디지털 환경에 대한 장악력을 가지고, 그것을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사용할 때 정말로 강한 개인이 만들어질 수 있다.



8.    성비 관리와 개인공간 지급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 구축에 있어서, 성비와 성적 조건들은 안전을 위협하는 긴급상황을 제외하고는 첫 번째로 심혈을 기울여서 다루어야 하는 대상이다. 청소년들도 남자와 여자가 있고 거의 모든 인구는 이성애자들이다. 성별의 문제는 아주 큰 골칫거리이다. 성별을 건강한 방식으로 섞어줄 수 있는 방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관리가 쉽다는 이유만으로 남자와 여자 청소년이 살아가는 마을을 나눠버리면 사기가 크게 저하된다. 생각해보라. 당신이 끔찍한 집구석을 나와서, 갈 곳이 없어서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매일 느낄 수 있는건 허허벌판에 세워진 공장과 면사무소와 닭 우는 소리랑 소똥 냄새 뿐이고, 이성은 한 명도 못 만난다? 절대 지속 불가능하며 그렇게 억제된 리비도는 엉뚱한 곳을 향해 불을 뿜게 된다. 청년 지방 이주 정책이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이성을 못 만남' 이라는 것은 사회심리학적 통찰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여자나 남자 한쪽 성별로 구성된 공동체는 행복도와 사기가 땅에 떨어진다. 반드시. 


하지만 성별을 너무 부주의하게 섞게 되면 성폭력 문제가 발생한다. 성폭력을 완벽하게 억제하면서 혼성 공동체/마을을 형성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성비는 5 : 5가 가장 적당하다. 공동체의 양적 완화(다수의 인구)와 적정거시성비(5 : 5)는 성적인 긴장을 완화하고, 인간의 내적 긴장을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 아니라 이성을 유혹하는 자기계발로 승화시키는 환경이 된다.  


아이들의 연애나 성적 활동를 위한 '프라이버시 룸'의 도입도 매우 혁신적인 방안이다. 원리는 단순하다. 혼자서 또는 커플이 들어가서 이용할 수 있는 방이나 독채를 구성원 모두에게 일정한 시간씩 나누어 제공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자위나 섹스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인데. 이 아이템은 내가 최초는 아니고 몇몇 성교육 강사님들에 의해서 이미 제안된 것이다. 당시에는 모두가 놀라움 절반 비웃음 절반으로 웃어넘긴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청소년의 강력한 성적 욕구에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묘책일 것이다. 안전이 확보된 환경에서 하게 하는 것. 


나의 청소년교육 철학은 개방성과 정면돌파이다. 청소년은 자신이 한 번 궁금해하거나 욕망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성취하기 때문에, 그걸 어물쩍 넘기거나 억압해 보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걸 단순히 막아서는 것은, 고대 중국 요임금 시대에 곤(鯀)이 홍수방지 토목사업을 할 때에 제방을 높게 쌓아 물길을 막는 방식으로 하다가 9년동안 9번 다 터트려 먹고 목이 달아난 사례처럼 반드시 폭발적인 역풍을 만난다. 요임금 다음 왕인 순임금이 등용한 우(禹)가, 곤과는 정반대로 물길을 인위적으로 터주는 방식으로 홍수를 극복했던 사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교육자와 어른 사회는 청소년의 욕망을 '청소년 그 자신보다 먼저' 치고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인간 욕구의 구조를 미리 밝혀 주고, 바람직한 방법으로 충족하는 경험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청소년의 강력한 리비도로부터 어른 사회가 승리하는 법이다.  


이것은 기존의 '활동은 함께, 숙소는 따로' 정책을 지키는 한편, 성적인 관심을 건강하게 표현하고 이성관계와 관련된 갈등을 적절히 푸는 방법을 교육장면에서 솔직하게 다루고, 마을로 내려간 청소년들을 기존 지역사회와 융화시켜서 전체 공동체의 덩치를 늘려줌으로써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성욕은 연애와 성관계 자체가 직접적인 해소요인이긴 하지만,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활발한 사회적 활동 · 다양한 대인 상호작용(Interaction) · 풍부한 인간관계 그 자체가 청소년의 성적 관심을 다른 데로 정신없게 분산시켜주고 리비도 에너지를 빼 주는 컨텐츠이다. 청소년육성의 업무에 있는 성인들에 입장에서는 매우 유리한 자원이자 레버리지인 것이다.



9.    정부와의 긴밀한 협조와 모니터링


이 구상에서 마지막으로 주의해야 할 것으로 강조하는 것 하나는, 이 사업이 정부의 지원 아래에서 정부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업은 자칫 잘못하면 '청소년 앵벌이', '염전 노예'와 같은 사업이 될 수 있다. 갈 곳 없는 가출청소년에게 지방의 일자리와 숙소를 제공한다는 사업의 개요는 청소년 인신매매와 혼동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우려를 사기 충분한 구상이다. 사실 어떤 점에서는 바로 그 점이 이 사업의 특징이다. 커피의 카페인이 졸음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아데노신 수용체에 아데노신 대신 끼어들어서 잠을 깨우는 것과 똑같다. 진짜 앵벌이와 진짜 청소년 인신매매가 지배하는 자리에, 국가가 경쟁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청소년대상 범죄 공급을 차단하고 당사자들을 적정한 대우를 받고 회복에 힘쓸 수 있는 지방 숙소와 일자리에 재배치하는 것이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 사업의 골자인 것이다.


이 구상에 가해지는 여러 우려를 일축하기 위해서는 이 프로젝트를 개시하는 여러 사회복지 주체들이 여성가족부 · 교육부 · 고용노동부 등 정부 청소년 및 노동당국의 강력한 감시를 받아야 한다. 혹시라도 청소년의 임금이 갈취되거나, 청소년이 지역사회에 범죄적으로 정착하거나, 지역사회에서 성매매를 하거나, 자기 임금의 일부를 생활비로 스스로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합숙시설에 지원되어야 할 자금이 지급되지 않는 것은 감시되고 근절되어야 한다. 또한 인간의 사악함을 숙고해 봤을 때, 이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 사업을 카피하여 유사한 형태로 청소년들을 지방으로 꾀어내어 착취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반드시 등장할 것이다. 따라서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의 모든 사업은 물리적으로 고용노동부 고용복지플러스센터 등의 대형 관청 안에서 진행도어야 한다. 그리하여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진행되지 않는 모든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 사업은 사기 행위라는 것이 알려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 자체를 유지보수하기 위한 상시 모니터링단을 배치하여야 한다. 이 모니터링단은 세 가지 할 일을 가지는데, ❶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과 유사한 범죄적 시도의 홍보물을 조기에 감지하고 신고하는 것 ❷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 홍보물을 가출카페 · 가출커뮤니티 · 가출 오픈카카오톡 등지에 깊숙히 전파시키고 간단한 문의에 응답하는 것 ❸ 실시간으로 접수되는 일자리마을 신청과 문의를 수리하고 사업단에 이첩해주는 것 등이 있다.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 : 

누군가가 이 아이템을 먼저 실현시켜주기를 기다리며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의 구상은, 대도시 · 지방의 소도시 · 시골의 공단 · 읍과 면 수준의 마을 · 중소기업 모두를 겪으며 자라온 내가 생각하기에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누군가 의지만 있다면 단 5명의 팀, 2명의 팀, 아니 여유가 있다면 어떤 뜻 있는 사회복지사 혼자서도 관계전문가들을 파트타임으로 고용하여 컨설팅 받으면서 성취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마치 전화번호부 정리처럼 아주 쉽고 번거로운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많이 해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귀찮은 일이지만, 엄청난 학술적인 훈련이 필요한 일도 아니고 엄청난 시장 트렌드 감각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사회복지사나 청소년지도사라면 누구나 청소년 관계법률전문가와 기존 그룹홈 및 쉼터 실무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얼마든지 해봄직하다. 왜냐하면 이미 이러한 수준의 자활 그룹홈은 수없이 많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일자리 매칭이라는 변수와 가출청소년이라는 변수가 추가되는 것인데, 일자리도 일정한 기준이 존재하고 가출청소년이라고 해서 무슨 괴물이 아니며 그저 일정한 교육학 · 심리학적 지원이 필요한 중고등학생일 뿐이다.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어느정도는 생활을 영위할 힘이 있다. 그 힘을 믿고 잘 활용한다면, 가출청소년이 극단적 상황에서 벗어나 비교적 여유로운 환경에서 매우 효율적인 사회복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옛날부터 흩어져 있는 것들을 필요한 데에 딱딱 들어맞추는 강박적인 취미가 있었다. 예를 들면 햄버거 집에 가서 햄버거를 주문하면 작은 봉지에 담긴 케첩을 주는데, 그 케첩을 그냥 버리기보다 집에 들고와서 토마토파스타를 할 때 활용하는 게 그렇게 좋았다. 세상에는 의미없이 버려지는 것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왔다. 그게 인권을 가진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 생각할 것도 없다. 숙소도 마찬가지이다.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어서 거리에서 잘 동안, 지방에는 공실이 나고 버려진 숙소들이 넘쳐난다.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킨다는 건 단지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쉴곳 없는 사람에게 집을 주는 것이다.


지방이 소멸하고 있다. 대도시에서 버려지고 튕겨나온 아이들을 턱없이 부족한 복지자원으로 거두어야 하는 사회복지사들에게는 오히려 기회이다. 지방 소도시와 시골의 버려진 숙소를 찾자. 그런 주택은 썩어 넘쳐난다. 일자리를 못 찾아서 전전긍긍하는 저숙련 단순반복작업의 중소기업들을 찾자. 그런 중소기업들도 넘쳐난다. 가출청소년들을 지방으로 보내는 것에 위험이 있기도 하지만, 도시에 놔둔다고 안전한 것도 아니고, 지역의 비행과 일탈의 레이더망에 연루된 아이들은 스스로 자립할 힘을 얻을 때까지는 잠시 무연고지에서 기숙학교처럼 돈 벌고 공부하고 돌아오는 것이 낫다. 애초에 도움이라는 것을 주어야 '연고'가 아닌가? 가출청소년을 해치는 연고지는 더 이상 고향이 아니다. 그들을 살리고 육성하고 환영해주는 곳이 고향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형 가출청소년 일자리마을'은 가출청소년의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줄 수 있는 곳이다. 


뜻이 있으면 길도 있다. 고용복지플러스센터 등의 공공기관에서 진행해서 청소년들의 신뢰를 얻으면 된다. 공단 지역에 숙소를 구해주고, 나쁜 사람들이 어울리지 않게 잘 관리해주고, 약간의 돈을 벌어서 일부는 저축하고 일부는 원하는 것을 하게 하고, 사회복지기금과 기부금을 통해 주거환경 등 그룹홈 공공재를 꾸준히 개선해주며, 교육지원을 통해 유능한 사회인이자 전문가로 길러내면 된다. 


이 구상을 떠올린 것이 아마 내가 가장 먼저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나중도 아닐 것이다. 심지어 내가 최초라고 할지라도, 이런 컨셉의 생각에는 아무런 저작권 같은 것이 없다. 그러니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공식적으로 가출청소년 치유와 육성 프로그램의 '거대한 전환'을 일으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역시도 이 구상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








* 이영준 · 임태훈 · 홍성욱,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 p. 328 中

** 사진 출처: 산청군, 경호강 100리 자전거·걷기길로 지역 상생 잇다 < 둘레길 < 뉴스 < 기사본문 - 로드프레스 (roadpress.net)

이 글은 2021-05-21 제출된 과제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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