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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May 18. 2021

외로움 이겨내기:
그곳에 걸터앉아 있지 말라

나루의 외로움 클리닉 003

살면서 너무나 놀란 것은, 내가 과도하게 많은 칭찬을 받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능률의 결핍에 시달리고 있고, 내 스스로가 정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가 아닌가 하고 늘 불안하다. 나는 대학교에서 세 종류의 학위를 받았다. 그것은 철학 학사 · 사회학 학사 · 심리학 학사이다. 부전공은 아니고 모두 복수전공으로 이수했고, 단과대학의 학생회장도 맡았다. 나는 이러한 사실로 인해 너무 많은 과분한 칭찬들을 받았다. 몇 년간 운 좋게 공부 좀 한 것 제외하면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을 갖고, 성실하니 대단하니 하는 너무 많은 칭찬들을 들은 것이다. 물론 칭찬해 주신 분들께 나는 진실로 감사드린다. 하지만 나는 타인에게 행한 봉사와 헌신으로 스스로를 칭찬한 적은 있어도, 단 한 번도 내가 성실히 공부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칭찬한 적은 없다. 나는 언제나 자기조절도 못하는 게을러빠진 인간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나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와 타인의 평가 사이 차이가 너무 커서, 점차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이 정도는 하고 살지 않나?"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은 주변 친구들이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개발에 정진하는 데에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논다. 퇴근을 하면, 하루에 남은 시간은 너댓시간도 채 남지 않는다. 그 때 어떻게 놀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여 참된 나를 키워낼 시간이 다섯 시간도 없는데! 많은 학생들이 술을 마신다. 어떻게 술을 마시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는가, 하루종일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가장 머리를 명석하게 굴려야 할 타이밍인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너무 자연스럽게 피워 댄다. 담배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명백하지 않은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천연덕스럽게 야식을 먹는다. 제정신인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극에 탐닉하고 인생을 낭비한다. 그것의 핵심 중의 핵심은, 사람들의 인간관계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무나와 어울린다. 아무나 만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아무데서나 만난다는 뜻이고, 둘째로 기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매우 낮은 기준으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당신이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고 하자. 당신은 부산에 가고 싶다. 부산에 가는 것이 당신의 삶의 가장 큰 목표이고, 단짝도 부산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서울과 부산 사이에는 만남의광장휴게소(하행) 라는 휴게소가 있다. 그곳은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휴게소 중에 첫 번째 휴게소이다. 그곳은 양재나들목에 위치한 곳이라서, 부산 가는 길에 있는 휴게소이기는 하지만 사실 서초구 양재동 소재지로서 서울조차 벗어나지 않은 곳에 있다.  



당신이 목표를 향한 시간을 딴짓하느라 지체하는 것, 그 과정에서 외롭다 하여 아무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나 만나는 것은, 부산행을 결심하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와중에 이 만남의광장휴게소에 들러서 시간을 때우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과 같다. 만남의광장휴게소는 하행 방면만 존재한다. 즉, 거기에는 부산을 가다가 서울도 벗어나지 않고 눌러앉아 있는 사람들이 우글우글한 것이다. 대부분이 당신과 비슷한 동기와 결심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부산을 향해 400km에 달하는 경부고속도로에 올라타는 것이 두려워서, 엄두가 안 나서, 귀찮아서, 까마득해서 양재나들목도 나서지 않아 휴게소에 눌러앉아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동질감이 드는 사람도 만나고, 품질도 조악하고 비싼 휴게소 음식을 사먹고, 통신사 할인도 안 되는 비싼 커피를 사먹고, PC방에서 게임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섹스를 하고, 뭔가 새로운 자극을 주는 이벤트에 참가한다. 하지만 휴게소에서는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다. 소비를 할지라도 아무런 고유하고 대체불가능한 물건과 서비스를 소비할 수 없다. 휴게소이지만 역설적으로 진정 편하게 휴식할 수도 없고, 나의 좁은 자동차 이외에는 구할 안식처도 없다. 내가 찾는 진정한 어떤 그 사람도 만날 수 없다. 나는 애초에 부산 사람을 만나고자 부산에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서울 사람들이 부산으로 갈 때 들르는 휴게소에서 부산 사람을 만날 수 있겠는가? 



부산행 휴게소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모두가 당신과 같은 먼 미래를 기대하고 출발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모두가 당신처럼 외로움과 노고가 두려워서 진정한 도로에 올라타기도 전에 걸터앉은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과 도대체 무엇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무엇을 구상하고 구현하고 형성하고 건축하고 쌓아올릴 수 있겠는가? 당신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 부산이 아니라 부산행 휴게소에 걸터앉아 있는 당신의 열등감 하나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 부산이 아니라 부산행 휴게소에 걸터앉아 있는 그곳에서 만나는 모든 타인들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불만족과 열등감은 절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걸터앉아 있는 시간이 장기화되면서, 각자에게 결핍되고 고갈되기 시작하는 자원들은 절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번 걸터앉아 있을 수는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중학교 시절 20시간씩 컴퓨터 게임을 하던 게임 중독이었고, 아무런 운동과 식이요법을 하지 않아서 중학생 작은 키에 70kg은 족히 넘을 만큼 비만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걸터앉아 있었던 집구석에서 툭툭 털고 일어났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언제나 내가 부족하다는 조바심에 쫓기면서 항상 글을 쓰고 독서하고 공부를 했다. 이것은 조금도 자랑거리가 아니다. 나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유복한 부모를 두었거나 돈이 많아서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저렴하게 언제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공짜 활동을 했다고 말하는 것 뿐이다. 나는 그냥 단지, '걸터앉아 있지 않았다.'



걷는 것이 공짜이듯이 안주하지 않는 것과 자기개발과 사회봉사에 전념하는 것도 공짜다. 도대체 누가 그런 비인기 종목에 돈을 매기는가? 그것은 가장 이익이 많고 가장 저렴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저렴하다고 해서 그것이 싸구려라고 놀린다. 많은 탐구자들이 저렴한 학문의 길을 간다고 해서 싸구려라고 놀림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저렴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지 싸구려가 아니다. 큰 대가를 주고 적은 이익을 얻는 것이 바로 싸구려이다.



내가 정말로 비싼 것들을 알려주겠다. 사람들이 모여서 우글거리고 수요가 폭발하고 공급이 부족하기 시작하는 곳들이 비싸지는 곳이다. 사람을 간단히 만날 수 있는 곳이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손쉽게 사귀고 만난 사람들이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손쉬운 술자리가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손쉬운 섹스가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구들과 갑자기 어울려도 즐거운 자리들이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나의 관심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나에게 너무 쉽게 애정을 주는 사람들이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나에게 너무 좋은 조건과 호의를 제시하는 사람들이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나의 존재에 너무 전폭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나의 여정에 너무 흔쾌히 동참하려는 사람들이 가장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아무런 문제 없었다고? 축하한다. 하지만 당신은 대가를 지불한 게 맞다. 당신이 다행스럽게 지나쳤던 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요행히도 피해갔을지라도, 그것은 이미 '장전된 확률'이었다. 보험계리학적으로 당신은 이미 비용을 치른 것이다. 당신과 동일한 행동을 함으로써 같은 통계적 수준에 포함되었던 사람들 가운데 아주 운이 없었던 사람이 '보험금을 타게 된' 것일 뿐이다. 하지만 부산행 도로에 눌러앉은 부산 지망생들을 보호해주는 보험은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손쉬운 것을 찾다가 너무 손쉽게 보험처리를 할 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어떤 보험사도 보험상품을 팔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손쉬운 모든 것들, 컴퓨터 게임과 모바일 게임 · 음주 · 담배 흡연 · 게으름 · 현실 안주 · 자기합리화 · 감정 폭발시키기 · 품위 없게 행동하기 · 무례함 · 비위생 · 리스크 간과하기 · 할일 미루기 · 사람 함부로 대하기 · 공격적이고 잔인한 행동 · 질 낮은 제품과 서비스 소비 · 달고 기름진 음식 먹기 · 자기탐색과 반성 멈추기 · 전체를 보지 않고 지엽적인 문제에 몰두하기 · 열광하고 숭배하기 ·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기 ·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 욕구와 욕망의 노예가 되기 · 내일 생각하지 않고 결정을 질러버리기 등은…, 그야말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의 가격을 요구한다. 그것들은 더 이상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당신의 인생 전체를 요구한다. 그래서 당신은 아주 손쉽고 값싸게 그것을 얻는 것이다. 이미 남은 인생으로 그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즐기고 싶으면 즐겨라!



내가 무엇을 휴게소에 비유하고 있는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이켜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보험 팔기를 거절하는 보험사에 비유하고 있는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 걸터 앉아 있지 말라. 일어서서 차에 올라타라. 출발하라. 400km는 길다. 그러나 과거의 사람들은 4,000km도 심지어 40,000km도 주파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달에도 가야 하고 별에도 가야 한다. 400km에 위축되고 걸터앉아 버린 자는 400걸음도 가지 못한다. 



실제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할 때는 휴게소에서 자주 쉬어야 한다. 그러나 손쉬운 인연이 우글거리는 휴게소 · 낭비하고 탐닉하는 여가생활의 휴게소 · 나태하고 늘어져도 모두가 박수 쳐주는 휴게소 · 놀고 술마시는 것이 자랑이 되는 휴게소 · 광신과 정신승리가 하나의 세계관이 되는 휴게소 · 증오와 분노, 비판과 비난이 잔치처럼 벌어지는 휴게소 · 지식추구와 자기계발을 업신여기고 진귀한 것 취급하는 휴게소에서는 당장 벗어나야 한다. 그 도로의 가드레일에는 절대 걸터앉지 말라. 그곳은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인간이 돼지로 변하는 유곽이다. 돼지처럼 먹고 마시다가 귀신이 되는 마을이다. 그곳은 이미 인생이 끝난 좀비들이 사는 유령 마을이다. 



그곳에 절대 걸터 앉아 있지 말라. 당신은 부산에 가기로 했다. 남은 길은 사백키로. 시동을 걸어라. 운전대를 꽉 쥐어라. 악셀을 밟아라. 유령 휴게소에 수류탄 한 개를 까넣고 룸미러로 그곳이 불타는 광경을 보아라. 그러나 뒤돌아보지는 마라. 그곳에 남은 존재들을 위해서라도 당신이 굳건한 자가 되어야 한다. 당신만의 부산으로 달려라. 부산에 도착하면 다시 이야기하자.











Photo by Ajai Arif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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