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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Jun 06. 2021

전이와 역전이란 무엇인가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아픔에 관하여

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역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특징적인 심리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정신분석학파 등에서 제출된 하나의 구인개념이다. 권석만(2012)은 전이에 대한 융(K. Jung)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한 줄로 정리한다. “내담자가 과거의 중요한 타인에게 느꼈던 감정이나 환상을 무의식적으로 치료자에게 나타내는 것이다.”(Page. 74) 성격의 기본구조가 부모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만 5~6세 이전에 모두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정신분석학파 심리학에 있어서 과거의 중요한 타인이란 대체적으로 부모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말 그대로 ‘과거의 중요한 타인’은 자신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것이기만 한다면 부모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도 될 수 있다. 전이는 근본적으로 재경험이기 때문이다. 내담자가 인식한 지금의 상황이나 상대방 특성이 내가 과거에 느꼈던 어떤 장면이나 인물과 혼동되어서,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이 순간에도 그당시에 내가 했어야 했거나 하지 말았어야 하는 행동을 지금 되풀이하는 것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의 ‘자극 일반화’와도 비슷한 기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진 속담처럼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을 솥뚜껑에 일반화하듯이, 과거에 내가 엄청나게 상처받은 사람을 그와 비슷한 외모나 그당시와 비슷한 상황에서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상당한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자신을 학대하던 아버지의 이미지를 무작위 남성들을 보면서 느끼거나, 자신을 학대하던 어머니의 이미지를 무작위 여성들을 보면서 느끼게 된다면 일상생활에는 상당한 지장이 가해진다. 하지만 전이 현상은 상담현장에서 단지 병리현상의 일부분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전이 현상은 과거의 중요한 어떤 타인을 현재로 소환할 뿐만 아니라, 내담자가 어떤 타인에 대하여 보인 행동과 감정까지도 같이 소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이를 적절한 방식으로 이끌어내고 관찰하는 것은 정신분석 심리학과 그것의 장점을 채용한 일군의 통합적 상담에서 중요한 실천방식이다. 특히 정신분석적 상담에서 내담자가 무의식적인 정보를 편하게 많이 내어놓을 수 있도록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내담자의 반응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고, 모든 반응에 고르게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편안하게 자유연상을 하도록 유도하는 까닭도 이와 같다.(ibid.) 충분히 허용적인 분위기에서 내담자가 편안한 상태에 접어들어서, 치료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과거 중요한 누군가와의 관계를 소환할 수 있도록 – 즉 전이가 발생하도록 돕는 것이다. 


권석만에 따르면, 이렇게 나타난 전이는 내담자의 내면적 상황 · 기대 · 콤플렉스 · 공상 · 감정 등을 보여주고, 자아로 통합되지 못한 부분이나 억압된 부분이 치료자에게 투사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Page. 110)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병리이지만, 우리가 심리치료를 하는 데 필요한 기초자료를 제공해 주는 치료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겼던 무의식적 주요사건이 재현되는 것을 치료자가 직접 보면서(또는 겪으면서) 과거에 겪었던 문제나 현재 겪는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지금 내담자의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 반복되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전이라는 심리현상이 내담자가 아닌 상담자(치료자)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전이는 기본적으로 대인관계에 관한 심리현상이기 때문에(그래서 대상관계이론에서도 중요하게 다룬다), 치료자 역시, 내담자와 오랜 시간 대화하고 라포가 형성되면서 내담자가 자신에게 그러하듯이 자신도 내담자에게 전이감정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역전이라고 부른다. 역전이도 전이처럼 풍부한 심리적 정보를 담고 있다. 권석만은 그 예로 ‘치료자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내담자의 심리적 속성과 무의식적 내용’을 꼽는다.(Page. 111) 즉, 치료자 역시 내담자를 보고 떠오르는 불편감이나 특유한 감정을 하나의 자료로 활용하여, 달리 말하자면 자신의 무의식이 피드백해준 감정적 단서를 바탕으로 내담자의 특성을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이다. 


역전이는 양날의 검과 같이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치료자는 치료를 하는 사람이지 치료를 받는 사람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러한 그러잖아도 도움이 필요한 상태인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켜서는 더욱 곤란하기 때문이다. 치료자가 내담자와 관계를 형성하면서 불쾌한 감정에 휩싸인다는 것은, 치료자 자신이 임상가로 훈련받는 과정에서 충분한 자기탐색을 통해 스스로의 콤플렉스나 ‘미해결 과제’ 등을 적정 수준으로 해소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임상가는 자신에 대해서 집중적이고 강도 높은 탐색과 상담을 실시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종합하면, 전이와 역전이는 과거의 해결되지 못한 중요인물과의 관계를 편안한 상대를 대상으로 재경험하는 독특한 방식의 투사(projection)이며, 이것은 병리인 동시에 그 중요인물과의 관계와 그것을 위시한 전반적인 대인관계 및 성격특성 정보를 노출시켜 주는 행동(behaviour)인 동시에 임상증상(clinical manifestation)이다. 이러한 전이 · 역전이의 이중적 가치는, 우리에게 두 가지 핵심 교훈을 제공한다. 


첫째로, ‘심리학에 있어서 모든 증상은 그 사람이 겪은 역사와 사건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증상은 그것 자체로 그 사람의 내면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모든 부정적인 증상에서 나타난 나름의 대처방략에서 우리는 내담자의 강점을 찾을 수도 있다. 완전히 새로운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제공하는 것보다, 기존에 내담자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던 사람 · 사건 · 신념을 중심으로 인지적 재구조화를 시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리는 무의식에 상당히 많은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인간의 주체성을 제한적으로 해석하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누군가의 병리적이거나 꺼림칙한 행동을 접할 때에도 그것을 결코 악마화하거나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의미한다. 현재의 인간은 기질과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질과 환경 중 어떤 것도 개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병리적 사고방식으로 말미암아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을 볼 때에도,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는 어느정도의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그리고 치료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타인에 대한 우호성을 잃고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의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건강한 상황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관점에서, 사법적 정의의 주된 목적은 가해자를 징벌한다기보다는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현재의 피해자를 위로하고 잠재적 희생자를 방지하기 위해 가해자에게 법을 통하여 보복해야겠지만,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전이 현상을 지켜보며 나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삶에 대한 책임을 어디까지 질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진정한 나의 통제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대단히 찾기 힘든 것이다.


이처럼 전이와 역전이는 정신분석이론의 여러가지 방어기제 중에서 맨 첫번째로 다룰 가치가 있는 중요한 개념이다. 더 많은 자아 탐색과 일상적인 상담을 통하여 자신의 과거를 지속적으로 다시 소화함으로써, 과거의 경험에서 벗어나 그것을 완전히 외면하지도 않고 다만 그것을 자신의 기억 안에 통합해줄 수 있을 것이다. 꿈에 그것이 다시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것과 아예 상관없이 살게 되는 그 날까지, 우리는 훈습할 수 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2021-06-06 과제로 제출된 것을 보완한 것입니다.

Photo by Jovis Aloo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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