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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Jun 07. 2021

게임중독과 ICD-11 및 DSM-5

IGD 질병코드 지정의 의미와 게임중독의 실제를 찾아서

게임중독 인정에 대한 격렬한 저항들


2019년 5월, WHO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72차 WHO총회 B위원회에서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 분류가 포함되어 있는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의결이 통과된 뒤, 한국의 게이머 커뮤니티와 게임 개발자들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게이머들은 게임을 질병 취급한다고 분개하며, 자신의 SNS 프로필 사진에 “게임은 질병이 아닙니다.” 라는 슬로건을 덧씌우고 #게임이용장애 · #질병코드도입반대 등과 같은 해쉬태그 공유를 통해서 항의의 뜻을 밝혔다. 외부에 잘 공개되지 않은 게이머 내부 커뮤니티에서의 반응은 훨씬 더 거부적이었고 격렬했다. 


NC소프트 · 넥슨 · 한게임 · 펄어비스 · 네오위즈 등과 같은 게임회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회사들도 게임이용장애 분류 결정을 비난하며 자사의 온라인 채널을 통해 #게임은_문화입니다 · #게임은_질병이아닙니다와 같은 주장을 내세우며 게임의 질병화가 게임산업에 대한 과잉규제로 작용한다는 프레임 짜기를 시도하였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할 연구 증거도 부족하다는 주장뿐만 아니라, 심지어 게임중독의 질병코드 등록이 의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질병을 만드는 과잉의료화를 시도하는 것이라는 음모론까지 유포되었다. 이렇게 시끄럽던 넥슨 · 넷마블 · NC소프트 3사가 인간의 보상회로를 자극해 무절제하게 돈을 쓰게 하는 랜덤박스 시스템을 공정거래위 과징금을 먹어가면서까지 도입해 2020년 8조 316억원을 벌어들었을 때에 이에 대해 한 마디 말도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IGD 인정의 타당성


WHO나 APA의 결정이 일부 게임 이용자나 게임회사 직원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존하는 게임중독이라는 객관적 실체를 놓고 그 존재 이유를 정신보건 종사자들의 악의에서 찾는 것은 전혀 건설적이지 않은 태도이다. 정신과 의사들이나 심리학자들이 굳이 게임 업계를 공격할 아무런 동기가 없다. 차라리 학부모협회에서 공격할 의사가 훨씬 더 강력할 것이다. 정신보건 종사자들의 관심은, 실제 정신병리적인 문제를 겪지만 기존에 그 문제를 딱 잘라 규정할 학술적으로 합의된 진단을 가지지 못했던 구체적인 환자들에게 더 세분화된 진단기준을 제공하고, 세분화된 진단기준 위에서 더욱 맞춤화된 치료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 더불어, 게임중독에 대한 논의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거나 증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2000년대 이후로 집중적으로 논의되어 온 주제이다. 뿐만 아니라 게임중독은 근본적으로 성중독 · 도박중독 · 운동중독과 유사한 기전을 공유하는 행위중독의 한 유형으로서 행위중독 연구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즉,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연구주제일 뿐만 아니라, PC · 모바일 게이밍 등의 보급에 따라 인간의 다른 모든 행위와 같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질환이고 따라서 언젠가는 제정되었어야 하는 표준이다.


게임회사와 게임커뮤니티 회원 그리고 언론들은 ICD-11의 IGD 편입이 시기상조라거나 근거가 불명확하다고 주장하면서 어떻게든 무산시키려 했지만, 행위중독으로서 게임중독을 정신병리 진단시스템 안에 포섭하여 진단과 처방 규준을 확립하려는 연구는 2000년대 이후로 꾸준히 시도되었고 연구성과도 충분하다. WHO 행위중독 대응 TF 한국위원인 의정부성모병원 정신의학과 이해국 교수는 2019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게임중독을 주제로 한 장기 추적 연구가 51개 정도이며, 2013년 이후만 따져도 9개의 장기 추적 연구 중 2개가 아시아 국가, 7개는 유럽과 미주 국가의 연구이다. 이런 장기 추적 연구를 통해 진단의 안정성, 그리고 관련 정신 및 신체 건강의 폐해가 발생한다는 보고가 일관된다. 그리고 중독성 질환 인정의 조건은 뇌 영상 연구를 통해 도파민 회로의 이상이 밝혀져야 하는데, 2013년 이전에 이미 도파민 회로의 이상이 보고됐고, 이후로 1000개가 넘는 뇌 기능 연구가 시행됐다. 이는 도박장애 관련 연구보다 2배가 넘는 숫자이다.”(의협신문, 2019-06-11, 출처)


이해국 교수는 같은 해 7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중독적 사용상태를 '중독성 장애'로 정의하기 위해선 3가지 연구근거가 필요하다. 첫째는 뇌과학적 기전 연구, 둘째 질병 자연사에 대한 종단 연구, 셋째, 중독적 사용으로 인한 건강 폐해에 대한 연구다. 게임 사용이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고, 게임을 과도하게 하면 이런 현상이 만성화돼 대뇌(大腦) 보상회로 변화를 초래한다는 결과가 확인됐다. 또 2013년 이후에만 전세계적으로 9개의 종단연구가 존재하며 대개 30% 내외의 진단유지율이 보고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종단연구, 단면연구 등을 통해 충동성, 우울, 불안, 발달 등 뇌와 정신건강문제, 비만, 안구건조, 근골격계, 사고 등 다양한 건강 폐해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해국 교수는 WHO의 진단기준이 모호한 것이 아니느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일축한다. “WHO는 3가지 게임사용 패턴이 1년 이상 나타나면 질병으로 진단토록 한다. 첫 번째는 조절 불능이다. 게임을 한번 시작하면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먹고 자는 것을 포함한 다른 모든 일상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게임으로 일상생활에 문제가 계속 생기는데도 게임을 그만두지 못하고 게임에 더 빠져 있는 것이다. 3가지 핵심 패턴은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제시한 인터넷게임장애 진단기준 9개 중 국내외 연구를 통해 일상생활 기능 이상이 심한 대상자를 가장 잘 구별해내는 항목 3개만 선택한 것이다. 일상생활이 어렵고, 유의한 신체 손상이 있어 전문가(의사)에 의해 진단된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기에 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게임을 즐기는 건강한 게이머들마저 환자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는 우려는 과장된 반응이다.”(2019-07-04, 양보혜, 링크)


실제로 이러한 보고를 바탕으로 APA는 2013년 정신진단통계편람 5판(DSM-5)에서 이미 인터넷게임장애(IGD ; Internet Game Disorder) 항목을 신설하였고, 그 이전에도 『Young 인터넷게임중독척도』, 『한국판 인터넷게임중독척도』, 『온라인게임사용동기척도(MOGQ)』(Demetrovics et al., 2011 ; Kim et al., 2015 번안), 『K 척도』(김청택 et al., 2002) 등이 개발되어 있었다. DSM-5가 개정된 이후에는 IGD에 대한 당해 판의 조작적 정의와 진단준거를 반영하기 위하여 Cho et al., 2014; Lemmens et al., 2015; Petry et al., 2014; Pontes&Griffiths, 2014; Pontes et al., 2014 등의 연구가 수행되었다. 또한 2018년에는 김빛나가 『인터넷 게임 중독: DSM-5 진단 기준에 따른 새로운 측정도구의 타당화 및 행위 중독으로서의 개념적 명료화』(2018, 링크) 논문에서, 『인터넷 게임 장애 진단을 위한 구조화된 진단 면담 도구(DIS-IGD)』(한국정보화진흥원, 2014) 외 여러 보조연구자료를 활용하여 Pontes&Kiraly가 DSM-5 진단기준을 반영하여 IGD를 선별하기 위해 만든 IGD-20을 번안하고 타당화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2019년 이전에도 이미 한국에서 진단평가 척도가 제출된 바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연구현황


그렇다면 한국에서 구체적인 게임 이용 실태는 어떠한가? 한국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신뢰로운 대규모 횡단연구는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2년마다 진행하는 『게임 과몰입 종합 실태조사』(2020, 링크)이다. N=140,000 이고 익명조사이며 초등학교, 중학교, 일반고, 자율고, 특성화고, 특수목적고에 대한 층화비율군집표집을 실시하였다. 도서벽지 지역의 학교, 신설교, 휴교, 분교, 대안교육 특성화고는 표집에서 제외하였다. 


척도의 경우, 주된 척도는 게임선용척도와 문제적 게임이용척도의 두 가지 하위 척도로 구성되어 있는 게임행동종합진단척도(CSG-β : 한국콘텐츠진흥원, 2018)를 사용하였다.기타특성에 대하여서는 삶의 만족도 · 자존감 · 부모의 감독 · 또래 애착-신뢰 측정에서 한국아동청소년패널조사(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16) 수정본을, 부모의 정서적 지원 · 학업스트레스 측정에서 한국교육종단연구 2013(김양분 외, 2014) 수정본을, 불안, 우울, 충동성, 부주의 측정에서 관련 연구 문항(교육부, 2016; 김숙희, 김정규, 2014) 수정본을 사용하였다. 

설문 문항의 측정구인(construct) 구성은 다음과 같다.


<표 Ⅰ-4> 2019년 게임 과몰입 종합 실태조사 내용 - 게임행동유형


분류 기준은 다음과 같다


게임행동유형의 특성별 분류 유형은 다음과 같다.


연구결과 요약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청소년 게임행동유형 비율은 과몰입군 0.3%, 과몰입위험군 1.6%, 게임선용군 20.6%, 일반사용자군 57.4%, 비사용자군 20.1%로 나타났다. (Page. 14)

둘째. 과몰입군 비율은 지역규모와 상관없이 전반적으로 유사한 비율(0.3%)을 보였다. 과몰입위험군의 비율은 읍면지역(2.0%)이 다른 지역(1.0~1.6%)보다 다소 높았다. (ibid.) 

셋째. 청소년의 게임행동유형별 게임 이용 빈도를 살펴본 결과, 모든 게임행동유형에서 ‘거의 매일한다(1주일에 6~7일)’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다. 과몰입위험군 79.7%, 과몰입군 75.5%, 게임선용군 58.9%, 일반사용자군 35.6%에서 거의 매일 게임을 한다고 응답하였다. (ibid.) 

넷째(COVID-19 관련).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인 2019년에 비하면 비사용자군의 비율이 다소 줄어들었다(22.9%→20.1%). 또한 2019년에 비해 게임을 ‘거의 매일한다’의 응답 비율은 과몰입군(53.8%→75.5%), 과몰입위험군(63.2%→79.7%), 게임선용군(46.1%→58.9%), 일반사용자군(25.8%→35.6%)으로  모든 유형에서 증가하였다. (Page. 15)


정리하면, 140,000명의 표본집단 횡단조사 결과 과몰입군 0.3%와 과몰입위험군 1.6% 등 총 1.9%에 달하는 게임과몰입(게임중독) 비율이 확인되었다. 140,000case에 달하는 표본의 절대적 크기와, 각급별 학교의 비율에 맞게 층화된 표집법을 고려할 때 해당 비율은 별다른 왜곡 없이 모집단(즉, 한국 청소년 전체)에 대하여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토대로 추정하면, 2019년 KOSIS 인구구조통계 기준 만7(초1)~만18세(고3) 7,147,973명 가운데 약 1.9%에 해당하는 대략 114,000명 정도가 과몰입 혹은 과몰입위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방의 문제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인가? 김동일 · 금창민 · 박알뜨리 · 이승호가 집필한 『청소년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예방 교육 프로그램 효과성 검증』(2017, 링크)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던 2000년대에 들어 아동‧청소년 인터넷 중독 예방 및 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면서 아동‧청소년 인터넷 중독 예방 및 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가운데 집단상담, 심리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여 효과성을 확인하는 연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익수, 김철(2009)은 인터넷 중독 프로그램의 메타분석을 통해 이러한 인터넷 중독 예방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음을 밝혔으며, 이준기&강근모(2015) 역시 인터넷 중독 집단상담 프로그램이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지,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지에 관계없이 유의한 효과가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김현실, 양지훈(2016)은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 예방 프로그램과 관련된 연구물을 바탕으로 메타분석을 실시한 결과, 높은 수준의 효과크기가 있음을 밝혔다.(Page. 297) (…) 인터넷을 사용하는 연령이 점차 저연령화되고 있으므로, 아동기 때부터 예방적인 차원에서의 교육이 필요하며, 습관이 형성될 무렵인 초등학교나 그 이전부터도 예방 교육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점차 제기되고 있다”(양미경, 오원옥, 2007; 안차수, 2005)(Page. 298)


한편, 임창우&정구철은 논문 『청소년 스마트폰 게임중독 예방프로그램 개발 및 효과 검증』(2016, 링크)에서 우리 세대에 요구되는 청소년 게임중독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스마트폰은 고성능 시스템을 갖춘 단말기로서 여러 가지 기능들이 탑재되어있어 청소년들의 중독 문제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중독 예방 프로그램이 다수 보고되고 있는데(김희진, 2014; 성미애, 2015; 정서림, 2014), 이러한 스마트폰 중독 예방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SNS중독이나 스마트폰을 통한 인터넷중독 혹은 스마트폰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청소년들의스마트폰 이용용도나 스트레스 해소 방안으로써 게임을 선택한다는 것을 고려해볼 때, 스마트폰 게임 중독 예방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보인다.”(Page. 69)


우리가 앞서 살펴본 논의들을 종합하면, 오늘날 (적어도 한국의) 청소년들은 인구통계학적으로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수의 인구가 게임중독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뿐만 아니라 게임중독 자체의 객관적인 위험 역시 여타의 행위중독과 비교해서 낮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검사규준상 위험군에 속하지 않는 일반그룹일지라도 35.6%에 달하는 사람들이 ‘거의 매일’ 게임을 할 뿐만 아니라, 게임 자체가 인간의 보상체계에 작용하는 행위중독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김양중, 2019-09-24, KISO저널 제36호링크) 오늘날 사회 전체가 상식적으로 술 · 담배 · 도박 등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잠재적인 위험물로 간주하는 것과 같이 게임 역시도 꾸준한 추적 관리의 대상으로 취급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요약한다 : 게임은 질병인가? 모든 것은 질병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질병과 깊은 관계를 맺는 어떤 것들이 있다. 게임이 그 범주에 들어감을 분개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취약성에 노출된 그 범주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분개하고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해서 ‘인간이 어떻게 하면 중독적인 어떤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지’ 부지런히 연구해야 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2021-06-06 과제로 제출된 것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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