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믐밤의 공포

-먹빛 밤의 고갯길

by 차민기 minki

시골로 전학을 하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등하굣길이었다. 부산에선 큰길이든 샛길이든 학교까지 10분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오가는 길엔 항상 또래 친구들이 함께였기에 그 10분은 학교를 다니는 충분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골에서의 등하굣길은 거의 한 시간을 걸어야 했다. 중학교로 오가는 길엔 더 높은 고개 하나가 추가되었기에 등하굣길은 다시 40분 정도가 더 늘어났다. 하루 꼬박 세 시간 이상을 학교 오가는 일에 바쳐야 했다. 게다가 우리 동네에는 내 또래가 없었기에 늘 고갯길 하나에는 나 혼자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1. 고갯길 느티나무...


고갯길 초입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어 한여름이면 아이들이든 어른들이든 그 고갯길을 오르기 전엔 그 짙은 그늘에 앉아 숨을 고르기가 예사였다. 느티나무의 그늘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가파른 고갯길이 한참을 구부러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 그늘은 숨고르기에 적절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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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금세 선선해지는 가을서부터는 주변보다 너무 짙게 어두워지는 그 나무의 그늘은 어릴 때 보았던 어느 만화영화의 괴물 아가리처럼 멀리서도 공포스러웠다. 먼저 고갯길을 오른 사람들을 멀찌감치 뒤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 하나씩, 하나씩, 그 거대한 아가리가 사람들을 삼키는 것처럼 보이곤 했다. 그들을 따라 나도 고개 초입에 들어서면 괴물의 식도 어디쯤을 구불거리며 꾸역꾸역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방학은 그런 공포를 벗어나는 시간이어서 마냥 좋았다. 그 길고 막막했던 등하굣길에 오르지 않아 좋았고, 그 시커먼 느티나무의 아가리 속을 걸어들지 않아서 좋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래 친구가 없는 동네에서 혼자 버텨야 하는 그 긴 방학은 또 다르게 막막해야만 했다.


20220212_162801.jpg 산자락의 해는 금세 자취를 감춘다. 숲이 우거질수록 햇살이 비집고 들어설 자리는 없다.


#-2. 한밤의 고갯길...


그렇게 막막함이 끊이지 않던 어느 해 가을밤...열 다섯, 혹은 열 여섯...그 즈음이었던가.

그때만 해도 중학교에는 야간자율학습이 있던 때라 밤기온이 선선해지면 날은 금세 저물어 혼자 고갯길을 넘는 일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 날엔 야자를 마치고도 한두 시간 정도를 학교 근처에서 배회하며 막차를 기다리곤 했다. 중학교에서 집까지는 두 개의 고갯길을 넘어야 했는데, 막차를 타면 높은 고개 하나는 편하게 돌아갈 수 있어 동네 누나들이 종종 그 버스에 오르곤 했다. 가끔은 도시로 일 보러 갔다 오시는 동네 어른이 타기도 했는데, 그런 날엔 나머지 고갯길을 넘기가 한결 마음이 놓이곤 했다.

그날 밤은 동네 누나들 셋, 큰 대야를 인 아랫집 아주머니 한 분, 그리고 나...불빛 하나 없는 먹빛 어둠길이었지만 어른도 낀 다섯 명이면 그깟 공포 따위야 별게냐,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달빛 하나 없는, 그래서 한낮이면 고갯마루에서 제일 먼저 환하게 우리를 맞이하던 그 훤한 강줄기조차 가늠이 되지 않던 밤. 먹먹한 밤하늘 별빛따라 우리 걸음들만 총총거리기 바빴던 그 밤,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한 사건은 그날 밤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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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삿장을 봐온다던 아랫집 아주머니는 대야에 이것저것 장거리를 담아 이고 고갯마루를 올랐고, 누나들은 그 아줌마의 한 발쯤 뒤에서 나란한 걸음을 걸었다. 나는 다시 그 한 발쯤 뒤에서 묵묵히 누나들의 뒤꿈치만 보며 걸었다. 부끄러움보다는 고개를 들어 그 먹먹한 어둠 속을 함부로 쳐다 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구불거리며 오르는 고갯길에는 아주머니의 가쁜 숨소리와 가방 안 빈 도시락들의 덜걱거리는 소리들, 그리고 겁에 질린 10대들의 총총한 발자국 소리들이 적막한 밤의 고요를 조심스레 건드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고갯마루를 막 넘어섰을 때 갑자기 고갯길 한쪽 곁으로 이어지는 언덕숲에서 후두둑, 잔돌들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옴마야~”를 동시에 외치며 뛰었다. 제법 무거웠을 그 대야를 인 아주머니도 “어구어구~”하는 신음인지 비명인지 구분되지 않는 소리를 연신 내뱉으며 뛰었다. 그 구불구불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그렇게 한참 내달리고서야 우리는 안도했다. 숨은 턱까지 차올랐고 모두의 입에선 연신 뿌연 입김이 뿜어졌다. 그제서야 서로가 서로의 안위를 물으며 위로했다. 그 와중에 아주머니는 대야를 끝까지 놓치지 않았고, 제사에 쓸 물건을 손대중으로 가늠하며 또 한 번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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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마루에서 이어지는 비탈길을 다 내려서면 벌판 저 너머에 마을의 불빛 두어 점이 보인다. 그중 하나는 벌판 방향으로 마루를 내고 있는 우리집의 불빛이다. 30촉 백열등의 그 무딘 불빛이 그리 큰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날 나는 처음 깨달았다. 그 아득한 불빛에 눈을 떼지 않은 채 걸으며 그제서야 우리는 그 잔돌들의 정체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여시가 사람들을 홀릴라꼬 뒷발로 돌을 날린다카두마 그건갑다.”

아주머니는 예로부터 전해 들은 민간의 이야기들을 옮기며 남은 공포심을 끌어올렸다. 그땐 세상일에 경험이 없던 우리로서는 그 말에 반박할 만한 다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게 돌이 굴러내리는 소리였는지, 진짜 돌이 날아온 건지조차 지금은 기억이 분명치 않다. 단순히 돌이 굴러내린 거라면 근처 숲에 서식하던 야행성 동물이 인기척에 놀라 내빼던 통에 비탈의 돌들이 흘러내렸던 것일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어렴풋한 기억엔 그 돌들이 단순히 흘러내린 게 아니라 우박처럼 후두둑, 길쪽으로 떨어진 것같기도 하다. 그랬다면? 그랬다면 정말 ‘여시가 우리를 홀리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그 서사를 특별한 것으로 기억하고싶은 기억의 왜곡일까?

이제, 그날의 아주머니는 자식들이 차린 제사상 앞에 일 년에 두어 번 소리도 없이 왔다 가고, 그때의 누이들은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되었다. 그들의 기억 속에 그날 밤은 어떻게 남았을까. 그 먹먹하고도 소란스러웠던 그 밤의 공포를 기억하고는 있을까? 그리고, 정말 그날의 그 돌멩이들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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