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끓는다

오래 쓰는 육아일기

by 강물처럼


자, 물을 끓여야겠다.

오늘 일기 예보는 100% 비다. 최고 온도는 12도. 혹시 지금 밖에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모든 가능성이 한 점으로 모여드는 100%라는 표시가 휴대폰에 뜬다. 눈으로 보면서 과연 그럴까 싶은 것은 내 어떤 성향이 꼬리를 흔들기 때문일까. 그것은 단순히 반발 같은 것일까, 아니면 믿지 못하거나 믿고 싶지 않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100%라는 말이 주는 불안함일까. 99는 애써서 노력하는 사람이 보인다. 사람이 가장 멋있게 보이는 장면은 99 옆에서 자세를 취할 때다. 100은 완성도가 좋지만 정지된 모습이다. 말 그대로 다 왔다. 끝에서 부는 적막감이 있다. 그리고 그 적막감은 이제 덜 인간적이다. 우러러는 보는데 기다리고 싶은 마음까지는 생겨나지 않는다. 새벽이 오고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는 막연함이 없다. 그래서 편하지만 그 자리는 앉아 있고 싶지 않고 다시 어딘가, 튀어나와서 두드려야 할 데, 정과 끌로 깨고 쪼아야 할 데를 찾는다. 장인의 손은 희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손을 조각하는 투박함이 생명이다. 완성으로 가는 여정일 뿐인 여정, 시지프의 신화 같은 이야기가 99에는 깃들어 있다. 사람이 그리워지는 지점, 글이 써지는 온도, 우리는 사랑일까 묻지 않고 속에 묻어두는 순간이 지금 지나고 있다. 물이 끓는다.

희귀난치병, 그 말은 얼마나 두려운가.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숨이 막히는 인상들이다. 그 말들이 한 데 어울려 있으니 몸서리가 절로 쳐지는 듯하다. 그런 무거운 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원인을 모르겠다는 말은 반항인가, 체념인가? 반항도 체념도 사람의 영역에 꽂혀 있는 두 깃발 같아서 거기 따뜻한 물 한 잔 떠 놓고 싶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 CRPS라고 하는 병명을 손으로는 처음 써본다. 누군가 실제로 앓고 있는 병이다. 어떤 진단이 나에게 떨어지면 그다음부터 나는 그 사람이 된다. 주둔군과 친하게 지내는 무리가 있고 그 반대의 무리가 생겨나기도 한다. 나는 나와 잘 지냈던가. 내 몸이 주둔군이었다면 내 마음은 그와 친했던가 아니면 사이가 멀었던가. 내 마음이 주인일 때 나는 그에 따랐던가 반대했던가. 생각이 많아졌다. 그가 권했다. 따뜻한 물을 먼저 마시라고.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물을 끓여 따뜻하게 마셨다고. 그 가벼운 동작이 자기의 통증을 섬세하게 달래준다고. 그가 전하는 내용보다 그의 마음이 크고 선명해서 놓칠 수가 없었다. 나도 배가 아파서 잠을 깨는 사람이니까.

열흘이나 됐을까. 아침이 빠른 나는 거실에 불을 켜고 전날 일기를 쓰고 시간이 남으면 아이들 일기를 이어서 쓴다. 물론 영화가 좋았을 때는 영화 이야기, 흔히들 말하는 에세이 같은 것을 쓸 때도 있고 시가 떠오르면 시를 쓰려고도 하지만 아침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 편이라서 시를 쓰기에 적합한 편은 아니다. 따뜻한 물을 마신 지 열흘, 내가 거실에서 글을 쓴 것은 8년, 아이들 일기는 17년. 물을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마셔야겠다고 다짐 비슷하게 적는다. 그가 나를 도왔다. 아침 공복에 따뜻한 물 한 잔은 사람을 살릴지도 모른다. 나도 물을 마셔왔는데 좀처럼 뱃속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 속에 든 것들은 이렇게 다스리기가 어렵다. 무엇이든 속에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문제는 고난도다. 사람에게 주어진 서른 개의 문제 중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지 않는 몇 개의 그 문제들이 상위권으로 가는 길에 심어져 있다.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며 미학적인 것들, 미세한 것들, 심오한 것들이 피우는 꽃들과 열매는 눈으로 감상이 안 된다. 키보드를 치다가 아랫배를 한 번씩 살살 만져주는 내 왼손에게 오늘 아침 특별히 고맙다는 인사를 보낸다.

산이는 엄마하고 어젯밤에는 1시간 반이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가 10시 조금 넘어서 집에 왔다는데 나는 벌써 잠이 든 상태였다. 거실 큰 탁자에 산이에게 이번 겨울에 권할 영어 교재를 몇 권 꺼내놓고 잠들었던 것이다. 나는 밤을 버티지 못하고 아이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한 바다에 살면서 서로 마주치지 못하는 것이 밀물과 썰물 같다. 내가 못한 이야기를 아내가 아이하고 나눴다고 하니까 안심이 됐다. 산이는 기말시험공부를 성실히 했지만 성과가 좋지 못했다. 처음으로 아이가 의기소침해하는 것을 본다. 수학 학원에 수강료를 내러 갔던 아내가 그 말을 듣고 아이가 애잔할 정도였다고 한다.

"산이에게는 무슨 말을 못 하겠어요, 어머니."

"우리도 기대했거든요. 산이는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시간을 뒀다가 금요일쯤 이야기할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어요."

그 이야기를 건네 건네 듣는 나도 일렁거렸다. 새벽까지 공부하고 돌아와 씻지도 못하고 쓰러져 잠이 드는 아이를 나도 거실에 앉아서 걱정했었다. 감기 환자가 많아지는데 혹시라도 저번처럼 아프지 않을까, 피곤해서 면역력이라도 떨어지면 안 되는데......

그러면서도 나는 기대를 키웠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저렇게 해야 마땅하지 않냐 싶었던 것이 내 속에도 있었다. 나는 그때 내 속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하며 지냈다. 욕심이 속을 점령할 때 나는 그에 동조하고 침묵했다.

그래서 속이 상했다. 속이 상했는데도 아이가 노력한 것을 아니까 탓을 할 수가 없었다.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고민이 되기도 하고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푸념도 널어놓았다. 그때마다 배가 아팠다. 설사가 났고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내가 불효했다는 생각이 콕콕 뱃속을 찔렀다. 아버지는 공부가 뭔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책값을 말하면 척척 주기만 했지, 한 번도 그 책이 무엇인지. 어떻게 됐는지 묻지 않으셨다. 나는 아버지한테 책값을 몰래 빼먹은 자식이다. 내가 차마 할 수 없었던 것은 중고서점에 사전을 갖다 파는 일이었다. 친구가 그러자고 앞서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어쩌면 거기가 내가 닿을 수 있었던 종점 같은 곳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버지는 나를 믿었던가.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을 끓여서 내가 먼저 한 잔 마신다. 아내가 나와서 마시고 아이들이 깨어 씻고 나와 마신다. 물을 끓이기로 한다. 기껏 물이다. 영양가도 없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수고해야 하는 것도 없다. 겨우 물 한 잔이다. 나는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의 말을 듣는다. 나보다 더 공부한 사람의 말을 듣고 나보다 더 살아온 사람이 말할 때 듣는다. 나를 돕는 말들을 듣는다. 물을 끓이는 것처럼 기본이 되는 것을 하나 갖게 된 것이 좋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서 편하다. 물이 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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