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 박경리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자투리 시간
특히 잠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도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 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바느질이라도 배워뒀으면 여기를 지나는 일이 손쉬웠을 것을.
언젠가 담배라도 피울 줄 알면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괴롭지 않을 것 같다고 했던 말이 오버랩된다.
그동안 그러니까 스물네 시간씩 삼백예순 다섯 날에 그걸 오십 번이나 살아왔으면서 바느질 하나 못하다니.
잘못됐다.
세상에 어디 바느질할 것이 한둘이던가.
더 이상 양말은 꿰어 신지 않는다 해도, 햇빛 좋은 날 단추 하나씩 달아가면서 익어가던 옛날은 분명 맛있었다.
뚫린 것을, 창피한 것을 때우는 손길과 눈길과 마음이 가던 길.
바느질도 할 줄 아는 사람과 바느질도 할 줄 모르는 사람 사이에는
설악산 토왕성 폭포처럼 높은 곳에서 물이 하얗게 쏟아진다.
비산飛散하는 물방울들이 무지개를 이루어 이쪽과 저쪽을 아름답게 가르는 그런 것이.
사는 것이 다 사는 것 같아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 어떤 것이잖아.
열심히 별것도 아닌 것을 마치 하늘의 별처럼 무한한 것들을 오래 바라보다가 어느 날 그 뜻을 접는 일.
별것이라고 믿었던 것이 하찮은 것으로 그러니까 바느질 같은 것으로도 살아지는 세상은 묘하기도 하잖아.
한 땀 한 땀을 꿸 줄 안다는 것은 밤이 무겁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고 낮이어도 팍팍한 것만은 아니어서 좋다는 뜻이고.
마르지 않고 생생하게 떠올릴 사람이 있다는 말은 바느질한다는 말과 같은 뿌리로 먹고 산다.
그대가 헤지고 닳아서 내 몸에 걸치지 못하게 됐을 때 내가 할 수 있어야 하는 일이 기도가 아니고, 이별이 아니고, 바느질 같은 거 하나 되지 않을까...싶다.
엄마가 많이 늙었어도 나를 위해 김치를 담그는 바느질,
걸어도 걸어도 속을 다 보일 일은 없을 것 같은 일몰 앞에서 목 타게 그리워하는 바느질,
뜯어지고 재봉선 위로 내 삶이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는 오후 다섯 시쯤에 하는 바느질.
'바느질하며 살 줄 압니다.'
그러면 되지 않겠나, 그게 뭐든지 Ma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