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슨 이야기로 밥을 또 맛있게 먹을까?"
방학 중이다. 겨울 방학인데 평범하다. 우리도 뮤지컬 한 번 보러 갈까, 공연히 그런 생각도 든다. 맨날 지리산으로 데리고 다니는 것이 어쩐지 짠하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침에도 먹었던 미역국을 끓이다가 말고 볶음밥을 했다. 돼지고기가 없어서 햄을 썰고, 파를 가늘고 작게 그리고 당근을 다다다닥 썰었다. 볶음밥은 파향과 소금이 승부처다. 거기에 계란을 어느 정도 간지럽게 데쳐서 올리느냐, 파랗고 주홍이 떠있는 속에 윤기 나는 쌀알을 뽐내는 것이 중요하다. 강이는 케첩을 냅다 뿌린다. 한 숟가락 먹어 보고 뿌리는 것이 맞다고 몇 번 알려줬지만 아이에게는 볶음밥에는 케첩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에게도 많은 습관이 있고 사회에도 관습이란 것이 엄연히 존재한다. 생각 이전에 반응하는 것, 본능처럼 내게 붙어서 나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우리에게는 제법 많다. 볶음밥 옆에 미역국이 아침에 먹었을 때와 다르게 보인다. 먹던 것 그대로 다시 나왔다는 느낌보다 볶음밥에 딸린 세트처럼 어울렸다. 주의가 미역국에서 볶음밥으로 옮겨진 것이다. 같은데 다른, 다른데 같은 점심을 먹는다.
내일은 최고로 따뜻한 겨울날이 될 거라고 그런다. 눈이 내리긴 했지만 한꺼번에 쏟아지듯 내렸고 그 뒤로는 잠잠했던 겨울이었다. 지난해 12월을 포근하게 보내면서 내심 1월 한 달만 버티면 되는 건가? 싶었다. 아무리 추워도 한 달 정도는 고생하겠다는 각오였었다. 그래도 봄은 올 테니까, 2월에는 바람이 바뀔 것이니까. 그때 내가 떠올렸던 것은 매화였다. 모르고 지나쳤다가도 뒤돌아 보게 만드는 그 향기가 이마와 눈썹 한 중간에서 감돌았다. 홍매와 백매는 추위와 온기가 이루는 콜라보의 절정이다. 낮고 평평한 내 감각으로는 그 꽃이 감당이 안 된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아무렇지 않은 적이 없다. 코가 벌름거리는 것이 창피하고 눈이 커지는 것도 제 마음대로다. 날이 따뜻하면 매화가 필 텐데.
¶ 잘 늙었다는 것은 비바람 속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꼿꼿하다는 뜻이며, 그 스스로 역사이거나 문화의 일부로서 지금도 당당하게 늙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화암사가 그러하다. 어지간한 지도에는 그 존재를 드러내고 밝히기를 꺼리는, 그래서 나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다. 십여 년 전쯤에 우연히 누군가 내게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화암사 한번 가보라고. 숨어 있는 절이라고. 가보면 틀림없이 반하게 될 것이라고. - 안도현
바위에 핀 꽃 같았던 불명산 화암사花岩寺 거기를 찾아가던 길에 보았던 매梅. 꽃이 비처럼 내린다던, 비가 꽃처럼 내릴 것 같았던 우화루雨花樓에서 보았던 산벚나무 그늘. 밥상에서 꽃을 본다. 볶음밥이 달달하니 입안에서 구른다. 봄 같은 아이가 웃음을 참는다. 나는 그것을 '싱긋'이라고 포착하고 저 눈빛에 선물을 안겨줄 작정이다. 그래, 너는 어떤 이야기를 했으면 하냐.
일기를 쓰도록 안내한다. 하지만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도 그런다. 두 달쯤 지났다 싶으면 그때 한 번 물어보는 식이다. 일기는 잘 쓰고 있냐 하면서, 지금 생각난 김에 하루치 써보라고 타이르는 정도다. 아이가 글에 소질이 있는 편이다. 우선 재미를 안다는 것이 그 소질의 첫 번째 신호라고 본다. 강이는 자기가 쓴 것을 엄마에게 열심히 보여준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사람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공감받고 싶어 하는 존재가 맞다. 나는 강이가 쓴 것들을 수집해 둔다. 아이가 쓴 노트며 종이쪽지를 모았다가 볕 좋은 날에 건네줄 상상을 한다. 글은 이 서랍 안에서도 빛나고 있었다며 어른이 된 아이에게 돌려줄 꿈을 꾼다.
淸水出芙蓉 天然去雕飾 청수출부용 천연거조식 - 이백
맑은 물에서 연꽃이 솟으니 천연스레 꾸밈이 없다.
"운명이 뭐야, 아빠?"
거기로 가는구나. 여기까지 왔구나. 내가 모르는 것을 너는 묻는구나. 음악이 흘렀으면 했다. 잠깐 멈추고 편안한 G 선상의 아리아를 켠다. 나는 왜 '튼다' 그러지 않고 '켠다' 그랬을까. 휴대폰을 바르게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거실 중앙에서 분수처럼 바흐가 흩어진다. 구슬이 빛난다. 저 눈빛은 나를 무대로 이끄는 조명이다. 오늘도 밥이 밥이 아니구나.
우선 글자를······. 멈췄다. 이렇게 가면 재미없잖아. 글자는 내려놓고 상형象形으로만 말해보고 싶었다. 너는 운명이 어떤 거라고 생각해? 운명은 미래 같은 거잖아. 그리고 정해졌잖아. 물음이 아니고 단정을 짓는 온점을 찍고 말한다. 나에게 선언하겠다는 것인가? 내 운명, 상관하지 마? 그런 큰 그림이 혹시 숨은 거 아냐······ 싶었다. 너한테는 운명이 그런 모습으로 다가왔구나. 하긴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으니까, 얼마든지 오케이!
운명은 힘이 세잖아. 운명이 미래면, 나 〈 미래, 이렇잖아. 그지? 홀딱 넘어갈 수 있겠다. 정신 차리고 들어야지, 어느 순간 강이가 하는 말에 정신을 다 뺏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잊지 않고 끄덕거렸다. 그래야 더 잘하니까. 나도 그것은 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맹랑하고 재밌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할 것도 많지 않고.
AI와 컴퓨터, 무한 증식하는 자본, 그에 비례해서 소멸해 가는 인간적 가치들을 보호하려는 사회적 연대 또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는 요즘이다. 직업이 없어지더라도 새로운 직업의 탄생을 예고하는 매체, 위기가 없었던 시대는 없었다고 독려하는 기사들, 그러면서도 핵전쟁이 심심찮게 거론되는 그야말로 패러다임의 전면적인 전환 시대에 우리 아이는 운명을 꺼내놓고 떠든다.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우는소리로 들리는 것은 무슨 탓일까. 김정은은 정말 전쟁이라도 할 생각인가. 누군가에게는 명분이 되고 누군가는 그 명분에 희생되는 시대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우리에게 정해진 것들이란 무엇일까. 그렇다면 나도 미래가 무섭다.
강이야,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데 나도 너처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모든 것들이 다 정해져 있다고. 그런 것을 운명론이라고 그러더라.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에게는 분명히 있더라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하늘을 원망하지. 운명이라고 그러면서. 내 눈빛은 아이에게 읽혔을까. 나도 운명을 잘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아이가 이 커다란 세계에서 길을 잃을 것 같다. 시작도 하기 전에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못 하고 무대 위에서 꼼짝없이 얼어붙으면 모두가 낭패다. 내가 너 만할 때, 영어 참고서에 리처드 바크 그러면서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말이 한 줄 쓰여있었다.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 나는 운명을 현재라고 보거든. 그러니까 가장 멀리 본다는 말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우선 가장 높이 날아야 한다는 사실이 있어야 해. 거기에서 멀리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지.
너는 운명이 정해진 거 아니냐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운명은 정해지지 않아서 불편하고 동시에 편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나이가 됐어. 바꿀 수 없으면 운명이 아니야, 바꿀 수 있어야 운명이지. 봐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서로 달라, 하늘이 있고 땅이 있는데 서로 다르잖아. 그런데 여기서 잠깐 안으로 더 들어가 보면 좋을 거 같아. 그 둘은 정말 완전히 다를까. 우리가 생각이 꼬리를 문다고 그럴 때 있잖아.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개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기니까 기차, 그러는 것처럼 말이야.
엄마하고 아빠는 분명 다르지, 그런데 엄마하고 아빠는 또 같아.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서로 맡은 일이 정해졌지만 서로 같은 목적을 가졌어. 그렇게 움직이고 있어, 운명은 그런 모습을 간직한 동그라미 같거든, 나는.
다만 사람이 정하는 거 아닐까 싶어. 그렇다고, 단정 짓는 것이지. 그게 쉽고 그게 편하니까. 봐라, 하느님이 위대하다고 그러더라도 모두가 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아니잖아. 그렇다고 하느님이 실망하지는 않을 거야. 물론 이것도 내 생각일 뿐이지만 말이야. 우리는 정말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여기 식탁 위에 있는 것을 밥이라고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이것은 밥이 될 수 있을까? 운명이 저기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꽃으로 보고, 겨울로 보고, 어떤 사람은 자동차나 연인, 그런 것들로 보는 것은 아닌가 싶어. 또 누구에게는 학교 같은 것이 되고 탄생이나 죽음 같은 것들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지. 아이가 웃는 것은 언제든 초록색 신호등을 닮았다. 어려울 텐데 잘 견디고 있다. 아빠는 사실 운명을 잘 몰라. 그것은 운명運命이라고 쓴다. 여기 명命은 모든 생명이야. 살아있는 것들이지. 이 글자 운運이 중요해. 너, 운이 좋다 그럴 때 있지, 그것도 바로 이 운運이야. 이것은 운전이야. 뭐든지 운전하면 위치가 바뀌잖아. 자리도 바뀌고 장소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그것이 운행이거든. 잘 돌아가는 일, 비밀 하나 알려줄게, 기억해 뒀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꺼내 봐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그러잖아. 더 이상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바로 죽음이야. 그렇다고 그렇게 끝나지는 않아. 에너지는 계속 돌고 돈다고 그러거든. 영혼을 믿는 종교에서는 더 차원이 다르지. 끊임없이 우리는 다른 우리가 되어 순환하는 거야. 일단 나는 여기까지는 말할 수 있어.
"밥이 어땠어?"
웃음이 났다. 저도, 나도.
싱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