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序文

오래 쓰는 육아일기

by 강물처럼


월요일 저녁 일기를 적을까 하다가 책을 펼쳤다. 뜻밖에도 이제 더 볼 것 같지 않았던 책, EBS 60분 부모 - 언제였던가, 벌써 15년은 지난 것 같다. 산이가 아기였을 때 샀던 책 - 그 책이 낮부터 손에 잡혔다. 다 잊었는데 군데군데 연필로 줄을 그었던 흔적이 반가웠다. 그중에 몇 줄을 따라 읽다가 아예 처음부터 다시 읽기로 했던 것이다. 읽은 것들, 배운 것들을 삶에 적용시킬 줄 알고 그래서 잘 써먹을 수 있다면 인생은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말은 쉽지요.' 아니면 '말이 쉽지.' 그 말들 뒤에는 언제나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그림자가 보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림자를 키운다. 어떤 사람은 밝고 환한 그림자가 따라다니고 어떤 사람은 보기에도 숨 막히는 어두운 그림자를 끌고 다닌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내 그림자가 가볍기를 원한다.

"실제로 발달지연이 가장 늦게 발견되는 아이는 대부분 기질이 매우 순하다. 따라서 아이가 순하면 발달을 더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 89p.

세월에 바랜 오렌지색 표지를 바라보면서 '이제 와서, 무슨'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 마음이 들었다. 맞다, 그것은 생각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생각은 가능한 정확히 판단하려고 하고 마음은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하는 족속이다. 생각과 마음 서로가 균형을 잡고 있으면 보기 좋고 안전하지만 꼭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날들을 평화로웠다고 기록하지 않는 것처럼.

시간과 공간에 따라 어느 쪽이든 다른 쪽을 위해 조금 힘을 빼줄 필요가 있다. 기울어져야 비로소 일이 생기는 것이다. 평지가 걷기에 좋은 이유는 언덕과 고개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평지가 균형을 이룬 상태라면 산고개는 많이 기울어진 곳에 있다. 힘은 산고개에서 쓰고 평지에서는 숨을 고른다. 때마침 어제는 우수雨水였고 전국 대부분 지역에 비가 내렸다고 한다. 북쪽에 있는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것은 우리나라 산천에 봄이 와도 좋다는 뜻이다. 이렇듯 계절과 절기가 생기고 낮과 밤이 있는 것도 모두 천지가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모든 일들이 기울어진 '사이'에서 생겨나는 이치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야 구르고 오르며 자리가 바뀌는 것이다. 잠시 멈출 수는 있어도 아주 멈출 수는 없는 것이 기울어진 세계가 가진 미덕이며 거기서 벌어지는 운명 같은 거 아닌가 싶다.

생각과 마음 그 둘을 지렛대처럼 연결하고 있는 것이 애정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애정이 있다. 애정 없이는 생각도 마음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애정 결핍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생각과 마음을 조율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데 아예 생각과 마음을 달아놓을 바 bar 자체가 없다면 생각과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는 바로 '마음이 결핍된' 그 결과,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애정을 먼저 살펴야 한다.

"아이와의 애착은 아이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게 형성되지 않는다. 아이에게 위로와 지지, 자극이 필요할 때 이를 재빨리 알아채 반응하는 부모의 민감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따뜻한 접촉, 안정감을 주는 양육태도도 필요하다. 그리고 놀아주는 행동, 자극해 주는 행동도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더 큰 세상에 나가서 새로운 세상을 탐색하고 배울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자극하는 부모가 될 수 있다." - 137p.

애정은 물 같아서 차별도 두지 않고 분별도 없이 흐른다. 나도 늘 고백한다. 나 자신에게 묻고 그 물음에 고개 숙이면서 당황하기도 창피해하기도 한다. 부끄러워서 머리를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있다. 고백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오늘 아침에도 아내가 한 번, 산이가 한 번 - 두 사람은 어쩌면 나를 수리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사람 만들기 시범 사업 같은 것을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했다는 것을 우리는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 날씨를 물었다. 창밖에 안개 낀 하늘이며 비가 내린 거리가 다 보이는데 묻는다.

"여보, 오늘 추울까요?"

"아빠, 오늘 비 안 오지?"

처음 물음에 나는 '응' 그랬다가 어제 읽은 대목이 생각나서 곧바로 말을 바꿨다.

"어제보다는 추울 거 같아, 옷을 따뜻하게 챙겨 입는 것이 좋을 거 같아."

이건 누가 봐도 내가 아니다. 나도 나 아니다 그러면서 말을 하고, 아내도 나 아닌 줄 알면서 말을 받는다. 그저 웃는다.

산이 물음에는 "비 안 올 거 같어." 그랬다.

짧게 '응' 그랬을 것을 6배나 길게 늘여서 말했다.

최백호가 불렀던 노래가 이 순간 떠오른다.

-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이 노래 제목은 멋지다. 제목이 멋지면 일단 관심이 간다. 낭만에 대하여, 나는 육아가 낭만이기를 바랐던 사람이었다.

글을 쓰면서 - 정말 이러자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 내가 샀던 책들을 꺼내봤다. 어딘가 몇 권 더 있을 텐데 다 찾지는 못하겠다. 나는 이 책들을 어떤 마음에 한 권씩 샀는지 안다. 어떤 생각이었는지도 기억한다. 아빠를 잘하고 싶었다.

EBS 60분 부모 2권 (경향미디어와 지식채널에서 각각 간행된 책이다, 물론 다루는 내용이 다르다), 듣고 있니, 아가야?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어보기, 아이의 사생활, 아이의 스트레스,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 아이를 변화시키는 비결, 하루 10분 자존감을 높이는 기적의 대화. 나는 이 책들을 보면서 무엇을 배웠고 어떤 것들이 새로 생겨났을까. 내가 바꾸기로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결국 후회와 아쉬움, 회한 같은 것들 앞에 선다. 어설플까, 그때에도 나는 어설프게 변명을 할 것 같다. 하지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는 그런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그것이 내가 치러야 할 대가라고 여길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 일기도 쓰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표현이 서툴다. 말은 불편하고 글이 편하다.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느낀다. 가끔 옛날이야기를 꺼내면 아내는 호기심을 보인다. 내가 어렸을 적에 만났던 사람들은 나를 기억하는 방식이 두 가지다. 하나는 말도 못 하는 아이, 하나는 적극적이었던 아이. 나는 그 차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잘 알고 있다. 내가 그 당사자여서 그리고 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선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아이가 미끄럼틀을 타지 못하거나 계단을 내려오지 못해도 겁이 많은 아이라고 오해한다. 그런데 이것은 운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 89p.

누가 나에게 겁이 많다고 그러면 겁이 많은 아이가 되고, 누가 나에게 순하다고 그러면 순해졌다. 누가 나한테 말도 못 한다고 그러면 금방 말도 못 하는 답답이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수녀님이 네가 복사 대장을 해야지! 그랬을 때, 교장실 앞 복도에 동시가 걸렸을 때, 친구들하고 주먹 야구를 하면서 늘 홈런을 쳤다. 나도 나를 잘 몰라서 내 소개를 할 줄 몰랐다. 어떤 내가 나인지 알고 싶어서 헤매고 돌아다녔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다가 산이와 강이를 만난 것이다. 그래서 신중했을 것이다. 나와 같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다른 아저씨들은 첫사랑쯤은 잊은 지 오래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그 말을 되새기고 있다. 이상하게 나른하고 기분 좋았던 말, 가을 햇살 같았던 말이 운동화 끈을 비추던 날이 떠오른다.

"잘하는 것이 많네요, 학교 신문에 난 글, 저도 봤어요."

나는 무엇을 잘하고 싶었던가. 어느 날은 당장 소설을 쓸 것 같다가도 멈춘다. 나를 머뭇거리게 하는 것은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던 무수한 시선들인 것을 안다. 나이가 이렇게 됐는데도 아직도 그 말을 필요로 한다.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 먼 곳을 돌아다녔는데도 여전히 나약하고 용기가 없는 것을...

일기를 쓰려다가 어떤 이야기의 서문을 쓴 듯하다. 연암 선생이 자주 그랬던 거 같은데 나도 그의 호방함을 지금이라도 흉내 내볼까 싶다. 산이가 스물이 되면 산이 일기를 엮어서 건네주자. 오늘 일기는 거기 책머리에 넣기로 하자.

아빠도 잘하고 싶었는데 처음이라서 이 모양이었다,라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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