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에게는 고등어조림을 한 토막 접시에 담아줬다. 나는 갈치를 담았다. 누가 봐도 갈치가 고등어보다 맛있는데 중학교 2학년 강이는 고등어를 더 좋아한다. 물론 나도 고등어를 좋아한다. 바다에서 나는 것들 중에 내가 싫어하는 것이 과연 있을까, 국거리에 넣어주는 미더덕도 -일부러 씹어 먹지는 않지만 - 싫어하지 않는다. 요즈음은 우리나라 김이 미국 시장에서 꽤 인기가 높다는 소식도 자주 들린다. 김이며 미역으로 대표되는 해조류를 따져봐도 싫은 것이 없다. 다시마는 거의 매일, 톳이며 우뭇가사리, 파래 같은 것도 나에게는 계절의 별미가 된다. 얼래, 군침이 돈다.
맞은편에 앉아서 밥을 먹던 딸아이가 먼저 입을 뗀다. 혹시나 왜 저는 고등어 주고 나는 갈치 먹느냐고 물을까 봐 슬쩍 국그릇으로 생선 접시를 가려놓던 참이었다. 갈치 가시를 일렬로 떼어내고 막 하얀 갈치 살을 발라내려고 할 때였다.
"아빠, 영어는 참 말이 많아. 우리는 장미에도 가시가 달렸다고 하고 생선에도 가시라고 그러잖아."
재즈 기타리스트 Jesse Cook, 내가 좋아하는 'Cancion Triste'가 마침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등어 vs 갈치는 내 안에서만 잠시 흥얼거리다가 사라졌다. 사람은 쓸데없이 감각이나 신경을 쓰느라 피곤한 존재다. 항상 적절하고 적당한 거기가 우리에게는 이상향으로 남아 있다. 벌써 지나와버린 거기 말이다! 어쩐지 이 음악은 나를 위한 행진곡 같다. 남미의 모래 언덕이 떠오르고 거기 간간이 서 있는 키 큰 선인장이 보인다. 때로는 스페인 어디 항구에서 해가 지고 아직 저녁을 먹지 못한 내가 아무 걱정 없이 그대로 밤을 지새울 것 같이 서 있는 모습도 떠오른다. 무심히 강이가 하는 말을 다 듣고 있었다.
"영어는 그게 다르잖아. 꽃에 난 가시는 thorn이라고 하고 생선 가시는 또 뼈 bone이라고 하잖아."
또 컸구나. 우선 둘밖에 없어도 우리 집에서는 막내다. 막내는 무엇을 하든 그것이 '성장'으로 여겨지는 오묘한 구석이 있다. 나는 살짝 오지랖을 떤다. 잘난 체는 가능한 자연스럽게, 그래야 살아남는다. 이런 정글 같은 곳에서는.
"내가 지금 생선 가시를 뭐 하고 있어? 이거 가시를 바른다고 그러잖아? 이거 굉장히 어려울 것 같지 않냐, 영어로 하면?"
산이하고 대화할 때는 내가 먼저 묻고 기다리는데 강이는 먼저 물어온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인지, 사람의 차이인지 아니면 두 아이에게 나는 다르게 존재하는지... 세상은 정글이면서도 숲이며 사막이면서도 오아시스를 간직한 곳이 맞다. 늘 경이롭다.
"봐, bone a fish, 이렇게 하면 가시를 바르다가 되는데, 말 나온 김에 '바르다' 그거 어디에서 많이 쓰는 말이잖아. 여기!"
왼쪽에 있는 벽을 손바닥으로 탁탁 쳐대며 이거 뭐야, 벽지를 뭐 한다고 그래? 벽지를 바'르'다' 그러잖아."
저 표정은 뭘까. 당했다. 아니면 재미있다? 아니면 뭘까, 접시 위에 담긴 고등어가 벌써 식어가는 눈치다. 나는 서둘러 상황을 정리하고 싶다. 모국어 때문에 외국어 배우는 것이 방해받는 상황이 생겨난 것이다. 그 처음이 강이와 같은 호기심 어린 질문들이다. 당연히 그 바르다와 이 바르다가 서로 다른 바'르'다'인 것을 확인시켜준다. 물론 친절하게(절대 무시하거나 우쭐거리지 않도록 신경 써가면서, 또래들이 하는 것처럼 설레설레 머리도 흔들어 준다. 정말이지, 꼬마들에게는 신경 쓸 것이 많다.) 그러면서 방점을 찍는다.
"너, 가렵거나 어디 아프면 뭐 해? 약을.... 약을 바'르'다. 그러지?"
"그게 영어는 다 달라, 우리는 모두 똑같이 쓰는데."
마침 식탁에 먹다 남은 사과 조각이 보였다.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이것도!
무수히 많은 같은 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류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 한글의 매력이지, 가끔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데.... 여기는 혼잣말이었다. 다음은 강이에게 들려준 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굉장히 빠르잖아. 뭐든지 빨리한다고 그러잖아. 너, 임기응변 알아? 임기웅변 아니다. 그래, 맞아, 하나로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고 그러는 거잖아. 우리는 그런 재주가 있는 것 같아.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해 내는 능력이 있단 말이지. 아, 갈치도 식었다.
- 회상 SCENE
(여전히 Cancion Triste가 흘러나온다고 가정)
내 삶을 크게 둘로 나누면 수술을 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7월 한 달은 그야말로 경이적이었다. 아마 거짓말하지 말라고 누구나 그럴 것이다. 86kg 나가던 사람이 64kg이 됐다. 아주 딴사람이었다. 지금 그 반응이 궁금하다. 혹시 부러워하는지? 솔직히 나도 영 나쁘지는 않았다. 이런 숫자가 나에게도 쏟아지다니, 한동안 매일 저울에 올라서며 감탄했다. 그런데 정말이지, 공짜는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저울에 올라가면 70kg 정도 나올 것이다. 건강 검진하러 가면 몇 년째 내 몸무게가 그 근방에 머물러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온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살이 빠져서 좋았다는 것이 아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몸무게가 줄었으니까 턱걸이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이참에 달리기도 시도해 볼까 싶었다. 그런데 나처럼 몸무게가 줄면 다른 것도 다 줄어든다. 몸은 가벼워졌지만 그 가벼운 몸을 지탱할 힘도 약해져서 여전히 턱걸이는 힘들고 달리기는커녕 걷는 것도 힘들어서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달라진 나에 맞춰서 지내야 했다는 것이다. 먹는 것, 자는 것이 바뀌니까 생활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생활이 바뀌면 사람도 달라진다. 이제 내 몸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다. 누가 악수라도 할라치면 미안한 마음이 불쑥 든다. 손이 차가워요, 그 말이 내 인사말이 됐다. 여름에도 양말을 챙겨 신었다. 수술받고 몇 해 지나서 운전도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정선을 찾았었다. 여름이 다 끝나갈 무렵, 동강에서 리프팅을 했었다. 이런 것도 못해볼 뻔했다고 얼마나 감사했던가. 그때도 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견디기 힘들었다. 가슴에서는 고마워하고 발은 물에 닿는 것조차 힘들어서 자꾸 움츠러들었다. 내 앞에 놓인 시간은 그렇게 이상한 모습을 하고 나를 맞았다. 이상할수록 내가 외웠던 주문은 그것이 아니었던가. 'Thanks God, it's my life.'
TGI'm.
살아본 적 없는 삶을 사는 재미를 샀다. 그것을 임기응변이라고 해도 좋고 넉살이라도 좋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들, 자기 위안이라도 좋고 연민 같은 거라고 불러도 좋다. 모험은 언제나 신나는 일이니까. 불편하다고 글을 쓰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해보니까 일 년 열두 달, 365일 전부 글을 쓸 수 있다.
- 현실, 식탁 앞에 두 사람
(Besame mucho가 흐른다.)
"강이야, 나또가 나또 맛이 난다. 그지?"
마트에서 나또 2 봉지를 샀다.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거나, 아니면 신제품 홍보 행사하느라 그랬던가, 하나 가격에 두 개를 샀으니까 그만큼 이득인데 대신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순전히 네 느낌으로 이 노래는 어떤 느낌이야, 만약 영화에 사용한다면 어떤 장면이 좋을까?"
노래가 마침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Besame, besame mucho, Que tengo miedo a perderte~
어느 나라 말이냐고 묻는 아이에게 스페인!이라고 알려주고 기다렸다. 배가 있는데 - 여기서 웃겼다 -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것 같은 분위기? 이것을 웃어야 하나, 놀라야 하나.
"이게 무슨 뜻일 거 같냐, 베사메무쵸?"
"배가... 배가.. "
"키스해 달라는 뜻이야, 무쵸는 많이, much 있지? 그거야."
강이에게 '키스'라는 단어를 직접 이야기한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다. 여태까지는 뽀뽀나 입맞춤 같은 단어를 사용했었는데 아마 어제를 경계로 또 하나의 세상으로 우리는 들어섰음에 틀림없다. 중2, 괜찮나? 괜찮겠지! 그렇지 않아도 엄마하고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귀 기울여 듣는다는 딸이다. 흠흠,
"그러면 베사메가 나에게야?"
"그렇지, 그런데 나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키스하라는 말도 거기 있겠지."
"바로 메me가 나에게, 이건 영어하고 완전히 같잖아, 그러면 베사besa가 동사가 되는 거야. 거기서부터는 따로 공부해야 알 수 있어."
아이가 반가워한다. 영어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 고등어며 갈치를 다시 데워야 할 것 같다. 그냥 먹겠단다. 음식이 식었지만 강이와 나는 다른 열감을 느꼈다. 밥을 먹는 것인지 찬을 먹는 것인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순간이구나. 아이가 혼자서 끄덕거리면서 밥알을 삼킨다.
"우리나라 말이나 일본 말, 중국 말도 이런 식이야. 그러니까 언어는 대충 서로 사촌 간이 되는 셈이지."
방학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그때까지 히라가나를 알려달라고 그런다. 나야, 뭐,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