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4코스 - 2021,0505

씨가 꽃이 됐다

by 강물처럼


1학기 중간시험이 끝나면 출발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날짜를 꼽아가며 지내던 참이다. 코로나19라는 말이 참 뜬금없었는데 지금은 코로나 소식을 제일 먼저 듣고 가장 많이 경계한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코로나 시국에 다들 고생이 많다. 정말이지, 우리의 일상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속도가 역대급이었다. 유럽을 뒤흔든 몽골 제국의 기마병들도 코로나의 기세는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외출도 삼가는 분위기라 우리도 무엇인가를 무릅쓰고 둘레길에 나섰다. 아이들은 집에 돌아오면 외출하지 않는 일상에 길들여지고 있다. 학교도 가지 않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며 어른이나 아이, 둘 다 무기력하게 대꾸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식구를 끌고 산에 왔다. 산에 간다는 말도 일부러 하지 않고 나섰다. 시험을 끝낸 산이는 몸과 마음이 5월 하늘에 떠있는 흰 구름처럼 가벼워 보였다. 더구나 어린이날, 그야말로 산은 푸르고 푸른 산 너머에는 구름도 많은 날이다.

작년, 2020년 4월, 부처님 오신 날에 우리는 둘레길 3코스를 이틀 동안 걸었다. 그리고 1년 만이다. 산이는 중학교 2학년, 강이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생이 된 산이는 어린이날을 벗어 놓고 중학교 교복을 입은 모습이다. 따로 선물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렇지, 어린이날에 둘레길이라. 나는 꽤 무모한 모험을 감행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든 밖으로 나가고 싶었는데 유원지나 사람들이 모일 만한 장소는 모두 제한하는 터라 마땅한 곳이 없었다. 아이들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따로 설명도 필요 없다.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서해안을 걸었다. 숨죽이며 걸었다. 식구끼리만 다녀야 하고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어디서든 조심하면서 걸었다. 때로는 눈치도 보면서 때로는 서로 감격해하면서, 그리고 늘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고맙다고 걸었다. 작지만 보람 있었던 시도였다, 부안 마실길은 우리 네 사람이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지혜를 선물해 줬다. 그 길을 걸으면서 아이들이 표정이며 생각이 자연스러워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바로 길 위에서였다.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떠들면서 웃었던 것이 작년 1년 동안 우리에게 있었던 가장 큰 축복이었다. 웅연조대, 마실길 끝에서 모처럼 들뜬 가슴을 느낄 수 있었다. 소박했지만 알찬 매듭 하나가 정성스레 매어진 것 같았다. 그 힘으로 우리는 오늘 지리산 둘레길 4코스, 금계에서 동강까지 걸었다.

금계. 여기 휴게소, 기억나?

나는 저기를 내려오면서 맡았던 장미철쭉향이 떠올랐다. 어두워질 무렵 어디선가 풍기는 꽃향기에 지쳤던 몸이 활짝 깨던 순간이 시간을 거슬러 맡아졌다. 아직도 나는 거 같아.

지난 시간을 기억하고 거기에서 시작하는 일, 길에서 경험하는 만남 그리고 이별 이야기는 기억과 추억을 동시에 촬영하는 성장 스토리를 담는다. 하나를 마치고 잠시 잊었다가 다시 찾아와 거기를 다른 길과 잇는 작업, 그렇게 맞춰가는 그림을 우리는 좋아하기 시작했다. 반갑네, 그러네. 그 기분으로 의탄교를 지났다. 다리 아래에 임천이 흘렀다. 이 물은 흘러서 저쪽 산청에 경호강이 된다. 물과 땅이 산을 두르며 지나는 곳이 지리산이다. 그래서 어머니, 지리산 그랬던가 싶다. 줄 것이 많은 산, 기댈 곳이 많은 산, 지리산 그 웅숭깊은 기슭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만두, 고추, 국수, 생강.

지금 우리는 문제를 내면서 걷는다. 제시된 낱말이 갖는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우리, 국민, 하나, 기업, 그러면 '은행!'이다.

길에서 다섯 고개 문제나 퀴즈 올림픽을 하다 보면 어느새 10리 정도는 다 와 간다. 더 이상 낼 문제가 없는데 더 하자고 아이들이 입맛을 다시면 기다란 싸리 이파리를 하나씩 손에 쥐여주고 가위바위보를 한다. 둘씩 짝지어서 앞뒤로 가며 열심히 가위, 바위, 보를 외친다. 먼저 잎을 다 떨구는 사람이 이기는 고전 중에 고전 게임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것도 재미있어라 한다. 옛날에 연애할 때 사람들이 이러고 놀았다면 정말, 그랬냐며 반신반의한다.

그건 그렇고 공통점을 찾았는지?

맞다. 나무다. 고추나무 - 밭에 심는 그 고추가 아니라 산 아래나 물가에서 자라는 고추나무가 따로 있다- 도 생강나무처럼 봄에 꽃을 피운다. 5월에는 그 꽃향기를 심심찮게 맡을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누구나 좋아하는 라일락이 간혹 보이면 횡재다. 향기 나는 곳에서 눈 감고 있으면 갈 길도 잊고 세월도 다 잊을 것 같이 아련해진다. 찔레꽃도 있고 별 모양으로 노란 점이 가운데 콕 찍힌 봄맞이꽃들도 길 따라 졸졸졸 피었다.

4코스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강을 따라 걷는 길은 11km, 산을 따라서 고개를 넘어오는 길은 13km 정도 된다. 산으로 가면 서암정사도 볼 수 있어서 사람들은 그 코스를 선호한다. 의중 마을에서 갈라진 길이 용유담을 지난 지점에서 서로 만난다. 산길에 볼 게 많아서 더 돌아오는 셈이다. 당연히 우리는 가깝고 쉬운 길로 들어선다! 시원하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도로를 따라 걸었다. 나중에 저 강이 진주에 가서 그 유명한 남강이 된다. 우리 아이들은 진주도 남강도 촉석루도 논개도 관심이 없다. 아직 어린 탓이다. 어린아이들이 우리와 같이 걸어준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울 뿐이다. 길에서는 늘 이렇게 낮아지는 나를 마주한다. 길을 가다가 마주친 둘레길 이용 수칙마저 정이 솟는다. 나를 점검하며 순해지는 것이 가장 좋은 충고, 조언, 격려다. 나는 얼마쯤 저 말들을 새기면서 이 길을 걷는가. 묻고 답하고 묻고, 또 물었다.

* 스스로 준비하고 책임지는 여행

* 동절기 5시, 하절기 6시 이후에는 안전을 위해 걷지 않습니다.

* 뭇 생명과 마을 주민,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길을 걷습니다.

감나무들이 자주 보였다. 함양, 지나서 산청은 곶감으로 유명한 곳이다. 여기서부터 한동안 감나무가 길게 펼쳐질 것이다. 다음에 언제 또 여기에 올 수 있을까. 사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한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5년을 빌려 쓰는 마음으로 일기를 쓰고 있다. 5년, 1825일을 한 마디로 내가 연주하는 나날을 기록하고 있다. 끝에서부터 거꾸로 쓰는 까닭은 내가 '정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든 재발이나 전이 그런 말들이 나에게 선고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때는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더 당당하게 서 있고 싶어서다. 침착하고 태연한 척 괜찮다고 웃어 보이고 싶어서다. 나, 그동안 해온 것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은 까닭이다.

1134 - 2021년 5월 5일 새벽, 출발 전에 쓴 일기에는 - 잠을 자면서 자세도 좋지 않았던지 허리 상태가 평소보다 별로다. 걱정이 되어 거실 바닥에 반듯하게 누워서 허리가 펴질 때까지 기다렸다. 오늘은 비도 그치고 어린이날이라서 둘레길 4코스를 걷기로 했는데 이런 상태라면 곤란하다. 산이하고 강이도 콧바람을 쐬고 싶은 눈치다. 실내에서 지내는 일상에 물릴 때가 됐다. 작년 일기를 들춰보니 4월 중순부터 우리가 움직였는데 올해는 아이들 중간시험으로 얼마간 일정이 늦춰졌다. 나도 엊그제 20킬로 이상을 걷고 온 터라 발이 편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회는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챙겨야 한다. 산티아고를 다녀올 사람인데 각오를 하고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나.

출발했다. 출발하면 사람 마음이 단정해진다. 한 점을 응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출발은 좋다.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우리는 출발한다.

아이들과 모처럼 길을 걸었다. '길'이란 말이 순해졌는지 묻고 싶다. 10대, 청소년이라고 하는 너희는 길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우리와 함께 길을 나서는 것이냐. 그것은 더운 햇살이지 않았더냐, 지루한 계속은 아니었는가.

산이는 왼쪽 발을 땅에 딛기 전에 오른쪽 뒷굽이 기울어진다. 그것은 오래 걷기에 좋아 보이지 않는 걸음이었다. 그동안에도 아이의 걸음을 수없이 많이 봤을 텐데····. 아무래도 4코스는 성찰 省察이란 바람이 골짜기로 불어오는 지형인 듯싶다. 그게 아니면 저 회색 돌들을 품고 흐르는 강물이 오랜 세월 쌓아놓은 내공 탓이었을까.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수고로움이 저며온다. 모든 걸음이 수고롭구나. 우리는 될수록 순하게 찔레꽃 향기를 맡았다. 그 밑에는 뱀이 지나간단다, 얘들아.

저 안내표지를 벅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벅수, 장승을 달리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장승 닮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인지 벅수라는 말이 입에 잘 안 붙는다. 이쪽으로는 용유담, 저쪽으로는 벽송사, 또 여기 이쪽은 세동마을을 가리키느라 벅수 하나가 바쁘게 서 있다. 곧 세동마을이다. 산이와 강이도 걸음이 느려졌다. 심심한 것을 즐기는 것이 어디 쉽겠냐. 그래, 거기에서 좀 쉬었다 가자. 마을 정자에서 챙겨 온 것들을 먹고 일어서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동안 우리와 동행하느라 고생했던 스틱 하나를 그만 깜박 잊고 챙기지 못했다. 산이는 어쩔 줄 몰라하는데 엄마가 돌아가서 가져오겠다는 것을 말렸다. 오르막을 오르던 참이라 서로들 힘든데 거기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도 그렇고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도 보통은 아닐 것 같았다. 인도의 간디가 그랬다지, 기차를 타다가 그만 신던 신발 한 짝이 벗겨진 것을 보고 나머지 한 짝도 그 옆에 던져놨다는 이야기, 신발 한 짝은 누구에게도 쓸모없지만 저렇게 두 짝이 다 있으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던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반응, 그런 마음은 생각하고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 것이다. 즉각 반응, 어떤 일들은 사람에게 그와 같은 자세를 요구하기도 한다. 나는 반응속도가 좋은 편인가, 아닌가.

오르막이 끝나자마자 오빠한테 몽정이 뭔지 아냐고 사정없이 턱 하니 물어오는 딸내미다. 요즘은 학교에서 자세히도 가르치는가 본데 나도 어쩌나 싶어 들어보고 싶었다. 산이가 제대로 답을 못하는 것이 오히려 재미있다. 5학년이라서 대담했을 것이다. 너도 좀 크면 그게 그렇게 쉬운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대답을 곤란해하는 산이 대신에 알고 싶은 게 뭐냐며 서둘러 내가 나섰다.

그러니까 이 산 같은 거다. 사람이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아. 둘레를 재는 것이지, 나무마다 둘레가 다르고 마을도 그렇고 여기 지리산도 그렇잖아. 사람도 그럴 거야, 누군가의 둘레를 구경하고 걸어보고 손으로 발로 재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오늘 우리는 어느 지점을 걷고 있는 걸까. 바로 우리가 걷고 있는 이쯤은 우리가 삶이라고 하는 무대에서 어떤 장면을 보여줄까. 길에서는 길이 보이지 않더라고, 그것을 알면 사람들 사는 모습이 잘 보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도 슬픈 것도 잘 보일 것이다. 다 걷고 나서야 돌아봐지는 것이 사람이고 길이고 시간이더라. 몽정으로 바로 이야기를 끌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지금 듣는 이야기가 줄곧 어떤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들을 때마다 이야기는 모습을 바꾼다고 그래서 나중에는 영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고. 그러니까 이야기든 길이든 거기가 전부는 아니니까 재미있게 지내야 한다고. 사랑 이야기를 할 때는 조바심이 난다. 이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되면 그때는 더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질 것이다. 커다란 바위도 지나고 건너편 산 중턱에 있는 마을도 구경하면서 잘 걷는다.

여자애들은 7년을 주기로 몸꼴이 변한다. 칠에 이, 그래서 열넷에 생리가 들고 그러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 어머니 대지大地라고 그러는 거 들어봤지? 여기 땅처럼 고운 상태가 되는 거야. 그래야 씨를 품고 그 씨앗이 잘 자랄 수 있거든. 칠에 일곱, 마흔아홉 그쯤에서 땅이 푸석거리는 거야, 그것 보고 오춘기가 되었다고도 하는데 아기는 이제 더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걸 폐경이라고 한다. 엄마는 칠에 여덟, 그때가 되면 여자들은 마음도 몸도 힘들어서 갱년기를 겪는 것이지. 사람마다 그리고 지내온 환경에 따라 서너 해는 서로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고 그래. 여기서 앞으로 1시간 더 걸어가면 길은 더 깊어지고 너는 힘들어서 쉬어가자는 말이 아무렇게나 나올 것인데 그것이 그거야. 열심히 걷고 나면 누구나 피곤해지잖아. 몸이란 것도 그래.

남자의 몽정을 알기 전에 여자에 대해서 먼저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에서 좋은 질문 하나를 다루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쭙잖게 내가 아는 것들을 짚신을 엮듯이 꾸며대며 모양을 만들어 갔다. 산 때문이다. 지리산 때문이었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알아야 하니 더 짚어간다. 남자는, 그러니까 오빠 같은 사람들은 여덟을 주기로 몸이 좋아진다. 16살이면 몸에 양이라는 따뜻한 기운이 차올라 그것으로 정精을 만든다. 여자가 만든 방에 저 정이란 것이 초대받으면서 아기는 만들어지게 되는데 그것을 잉태라고 하고 몸 안에 두고 마음으로 먼저 그 아기를 키우는 것이 임신이다. 그래서 임신하면 배도 불러오고 조심하고 그러는 것, 너도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니까 웃는다. 저도 여자인 것이다. 입덧이란 말이 떠올랐던가 보다. 그거 토하는 것, 밥도 못 먹잖아, 그러면서 묻는다. 그것은 왜 그러냐고 엄마한테 물으라니 엄마는 딴 데를 쳐다본다. 여자의 선생은 여자가 아니다. 구경꾼처럼 나만 떠들고 다들 듣기만 한다. 산 골짜기가 점점 깊어가면서도 힐끗힐끗 물줄기가 보이는 지점이다. 길이 아름답다는 말을 주섬주섬 주우면서 걸었다. 우리보다 앞에 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감탄사들이 반짝이는 오후, 신록 그 푸르름이여, 길이 멀어도 매일 오늘만 같기를 바란다.

그것은 하나의 신비야. 뱃속의 아기는 엄마가 주는 대로 받고 먹는 대로 먹는데 가끔씩 아기가 먹지 못하는 것,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어서 말 못 하는 아기가 적극적으로 못 먹겠다고 받아치는 것이 입덧이래. 입덧은 경건한 신호이며 거룩한 암시니까 꼭꼭 잘 받아내야 하지, 12살 딸한테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까지 주절댄 것도 이 길 탓이다. 지리산 탓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지나면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일하는 아주머니 한 분을 본 것이 전부다. 이 산골짜기에서 '마스크'를 끼고 있다니. 뻐꾸기도 울지 않는 고요 속에서 혼자 밭을 매다가 훌쩍 우리를 돌아보셨다. 시집올 때 해왔던 양단 이불은 아까워서 꺼내놓지도 못하고 오래 장롱 속에 모셔진 채로 남았을 것 같은 산골,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미안한 생각에 서둘러 밭을 지났다. 정말이지, 이제 그만 코로나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자, 오른쪽이다. 저기 가서 쉬면서 마지막 남은 것들로 목을 축이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마지막 오르막이 오후 4시 반의 햇살을 받으며 하얗게 눈부셨다. 아이들 걸음을 고쳐주고 우리 몸에 대해 생각하면서 길을 걸었다. 내가 얻은 일용할 양식은 평화다. 그야말로 융숭한 대접이었다. 그 평화를 길에게 다시 건넨다. 고수레!

동강이다.

금계에서 동강까지 잘 걸었다.

바람처럼 사뿐했고 구름처럼 천천히 걸었다. 날씨는 하늘이 낳는 씨, 그 씨앗들이 공중으로 높다랗고 커다랗게 자라고 있었다. 미루나무 한 그루가 손가락 끝에 서 있던 길을 우리는 걸었다. 꽃을 보듯이 너희를 구경했던 날이었다.

다만 좋았다는 말만 복바위에 남겼다. 아빠가 써놓은 인사가 그 바위에서 꽃으로 피거든 씨가 꽃이 됐다고 그때 우리 한 번 또 놀러 가자.

겨우 5월 초, 연한 감잎들이 더욱 인상 깊었던 지리산 둘레길 4코스에는 오페라의 유령같이 멋진 감나무가 살고 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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