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풍'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은

by 강물처럼


내가 파도를 믿는 이유는·····.

영화표 4장을 부채처럼 펼쳤다. 파란 잉크 냄새가 날 것 같이 싱싱해 보이는 것이 바다로 가는 표라고 해도 좋을 것 같고 하늘이라고 해도 상관없어 보인다. 1주일 내내 비가 내린 탓에 세상이 다 젖어있다. 마치 조그만 장마를 한차례 겪은 듯 집안에 있는 책도 무거워 보인다. 영화를 보자. 나는 그 영화가 보고 싶었구나. 바로 제목 하나가 떠올랐다.

"이렇게 티켓을 챙겨주니까 또 고맙네, 영화 좋은 줄 알면서도 비싸다고 영화관에 잘 안 가지잖아."

우리도 남들처럼 얘들 학원비 챙기고 용돈 주느라 바쁘다. 행여 날짜라도 지날까 달력에 표시해 가며 나가야 할 돈을 챙기며 산다. 주말에 한 번씩 넷이 둘러앉아 보는 영화도 시절이 지난 것들이다. 그래도 좋다고 다들 영화가 끝나면 후끈해져서 자기들 방으로 돌아간다. 추억이 되라고,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들이 아이들 삶에 양분이 되기를 바라면서 TV 화면에 비치는 식구들 모습을 영화 속 장면과 장면 사이에 끼워놓고 바라본다. 모든 순간이 영화 같기를 또한 바라면서.

산이는 외출 중이다. 강이에게 '소풍' 보자고 그랬더니 자기는 '소풍' 가고 싶다며 사양한다. 아이들 취향은 아닌가.

또 한 사람, 아내에게 여쭤보라고 권했다.

"엄마, 영화 보려고 하는데."

영화관은 우선 주차하기 불편할 정도로 붐볐다. 일요일 오후에 날씨까지 좋지 않아서 영화관은 만원이었다. 우리가 볼 영화는 4시 50분, 하루에 단 한 번만 상영한다. 소풍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다. 남해가 배경으로 나오고 나문희, 김영옥 그리고 박근형이 찍은 화보 하나가 전부다. 요새는 작은 글씨는 건너뛴다. 글씨를 읽지 않으면 세세해질 수 없는 현실에 익숙해지고 있다. 대신 감각을 키울 것, 상상할 수 있을 것! 내가 내게 내미는 주문서에는 그렇게 부탁한다.

좋은 곳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는 말은 누가 처음 했을까. 그 말에 손톱만큼도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그대도 알 것이다. 행복한 항복, 두 손 들고 항복하는 일이 그처럼 평화로울 수 있는 순간이 역사에는 몇이나 있을까. 보고 싶다는 말은 그래서 힘이 세다. 하믄 억수로 힘이 세다 아이가!

나는 늘 바람 앞에서 항복하고 바다 앞에서, 하늘 앞에서 그리고 이제는 사람 앞에서 항복할지도 모른다.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영화는 물음 하나를 꼬리표처럼 달아준다. 나도 모르게 내 뒤에 붙여놓고 히히거린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으면 좋겠다.

'태호는 은심이를 좋아한대요.'

'바다를 그리워하는 해당화래요.'

적지 않은 세월을 은심(나문희), 금순(김영옥) 그리고 태호(박근형)는 친구로 지내고 있다. 이 세 배우들의 연기 경력은 도합 195년이나 된다. 연기를 보고 있는 것인지 실제를 보는 것인지 까맣게 잊은 채 영화 속에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공이 깊은 사람들은 멈춤으로 동작을 이루고 동작 가운데에서 멈춤을 실현하지 않던가. 그 흔한 바닷가를 걷는 장면마저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아스라이 걷고 있는 모습이었다. 바닷가 장면에서 들려오던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은 연기와 삶이 다른 것이 아니더라는 가르침 같은 것은 아닐까.

60년 만에 고향을 찾아 16살 적 시절을 회상하는 영화다. 그때 나를 좋아하던 누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있다. 친구도 있고 마을도 있고 엄마도 있다. 영화 속 태호네 집에는 큰 나무 하나가 나오는데 그 나무 앞에서 아버지 장례도 다 치렀다며 여기가 없어지는 것이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쓸쓸하다는 대사는, 사람을 울린다.

흔한 이야기다. 자주 다루어지는 소재들이 등장한다. 조용한 섬마을에 리조트가 들어서는 이야기는 단물이 다 빠진 지 이미 오래다. 흔한 이야기다. 돈을 갖고 자식과 부모가 갈등하고 반목하는 이야기도 쓴 물이 날 정도다. 흔한 이야기다. 첫사랑을 만나는 로맨스, 다시 태어나도 네 친구 하겠다는 뭉클한 대사도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그런데 그 흔해빠진 이야기로 버무린 이 비빔밥은 왜 달고 쓰고 맵고 시고 짜기까지 하냐. 어떻게 사람 손이 그렇게 맛난 맛을 낼 수 있는지 어이가 없었다. 말문이 막혔다. 가슴이 얼얼했다. 태호네 막걸리를 한 사발 얻어 마셔야지, 정신이 들 것 같았다. 그는 뇌종양을 오래 앓았고 외로웠고 당당했다. 그리고 로맨티시스트였다. 좋은 영화는 보여주고 싶어 진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자랑하고 싶은 것이 좋은 영화의 증거다. 나는 소풍을 본 것이 좋고 자랑스럽다. 영화를 보면서 엉엉 울지 못하고 겨우 훌쩍거렸던 것이 아쉽다. 잘 울 수 있었는데.

내가 바람을 믿는 이유는·····.

'소풍'은 그 소풍이다.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 시 한 줄이 영화가 됐다. 내가 그리는 소풍에는 어떤 시어詩語가 창공으로 튀어 오를까. 장모님은 오지 못했다. 파킨슨을 앓는 우리 장모님이 은심이처럼 손을 흔든다. 아니, 손이 흔들린다. 그래ㅡ 흔든다와 흔들린다는 너무 다른 말이다. 내 의지가 들어 먹히지 않는 내 육신은 누구의 손이며 발이며 심장인가. 영화는 보고 싶지만 힘들어, 휴대폰 너머로 아마 그 말이 전해졌을 것이다. 몸이 힘들면 아무것도 못하지, 나도 모르게 대답하고 있었다. 아내는 통화를 끊고 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가 많이 떠올랐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뇌졸중으로 정신이 맑지 못하다. 어머니한테 어머니라고 아직 제대로 부르지도 못했는데 엄마가 정신을 먼저 놓으셨다. 추석에 뵌 얼굴에는 엄마가 아닌 엄마가 어른거렸다. 입으로는 반갑다 하시는데 표정은 묵묵부답이다. 영화 속 금순이는 허리뼈가 다 녹을 지경이어서 제대로 거동도 못한다. 결국 누워서 오줌을 지리고 만다. 울다가 웃다가 두 할머니가 엉망이다. 집을 내주고 소풍을 떠난다. 떠난다는 말은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누가 떠나든 누구 차례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우리 어머니, 장모님, 우리 아이들 산이와 강이를 데리고 다녔던 10년 간이 소풍이었다.

2010.01.03

2010년 새해가 시작됐다.

우리는 거제도에 다녀왔다. 거제도, 어쩐지 한 번은 가봐야 할 것 같았던 그곳에 아무런 계획 없이 식구들 모두 동행했다. 장모님, 우리 엄마, 산이 엄마, 나, 산이.

우리들 모임의 이름이 정해졌다. 산이 외삼촌이 정했는데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 '아사모'다.

지난해부터 전국에 이름난 사찰과 명산을 찾아다니던 것이 그런대로 재미가 있으셨던가 보다. 모두가 적극적이고 좋아한다. 물론 산이도 좋아한다.

거제도에서 멋진 해변도로를 구경했다. 말로만 듣던 해금강 일대가 절경이었다.

언제든지 다시 가 보고 싶은 '풍경'이 되었다.

거제도를 일주하면서 그곳의 따뜻한 바람과 햇볕 속에서 가족들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새해를 맞았다.

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잠을 청했고 파도 소리를 계속 들었다.

따뜻하다, 따뜻하다, 모두들 그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통영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고집처럼 통영 시내를 관통했다.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박경리 선생의 묘.

특히 산이는 선생의 묘지공원에 들렀을 때, 흥겨움에 어쩔 줄 몰라했다. 혼자서 앞장서 달리다가 엄마를 부르고 또 달리고.... 그런 식으로 줄달음쳐 꽤 높은 언덕배기까지 올랐다.

거기 조용한 언덕이 선생의 시비詩碑로 잘 가꾸어져 있다.

짧은 글 하나를 옮겨 적는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은 다 아름답습니다.

생명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물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피동적인 것은 물질의 속성이요, 능동적인 것은 생명의 속성입니다.


- "마지막 산문" 중에서

글을 쓴다는 것도 삶에 대한 애착 때문었다는데...

조그만 아이가 노란 옷을 입고 따뜻한 공간을 뛰어놀고 나이 먹은 어머니가 훌쩍 마른 모습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는 공간, 아내는 편안한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나는 그들 모두를 또 바라본다.

이런 거....

삶이 적어가는 글 아닐까.

드라마가 내 이야기 같을 때 우리는 거기에 빠진다. '소풍'을 보고 나오는 모든 관객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할 것이다. 누구 닮았어, 누구 이야기 같아. 그게 다 우리라는 것을 무릎을 쳐가며 알게 될 것이다.

농담을 하면 웃는 것이 친구다.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표 나지 않게 돌봐주는 것이 친구다. 어제 본 듯 반가운 것이 친구다. 누가 뭐라고 하면 내가 나서서 편들어 주는 것이 내 친구다. 정말이지, 종합선물세트처럼 많은 이야깃거리를 영화는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머리 복잡하지 않게 옛날 동화처럼 술술 풀어간다. 늙음의 미학이겠지. 선물이면서 지혜 같은 거겠지.

파도와 바람은 그곳으로 흘러가고 불어오며 나를 데려가 준다. 상처 내지 않고 부드럽게, 안은 듯 그것도 꿈인 듯, 따뜻하고 따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