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등굣길에는 비가 내렸다. 봄꽃이 피고 나서 내리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며 비를 바라봤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상황을 살폈다. 바람이 부는 편이다. 비가 멎었지만 길도 좋지 않고 날씨가 차가웠다. 미륵산에 가지 않기로 하고 강이 문제집을 사다 놨다.
혼자 점심을 챙겨 먹다가 화장실에 가서 토해냈다. 계란을 풀어서 끓인 북엇국에 밥을 말아먹던 참이었는데 명치께에서 얹혔다. 거기에서 얹히면 그다음은 뻔하다. 입으로 삼킨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한순간 가슴이 답답해지면 곧바로 화장실로 찾아간다. 모르는 사람들은 꽥꽥거리며 토하는 나를 안타까워하겠지만 - 나도 그랬다. 거울 속으로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서 있는 사람이 안 돼 보였다. - 사실 토하는 것이야말로 내 몸이 나를 보호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도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단 한 번의 기회 같은 것이다. 만약 그렇게 쌓인 것이 한꺼번에 소장으로 흘러들어 간다면 심각한 정체가 일어나고 말 것이다. 늘 말했듯이 소장이며 대장은 8시간 넘게 위에서 곱게 삭혀낸 것들만 받아내는 부드럽고 섬세한 소화기관이다. 입안에서 아무리 오래 오물거린다고 해도 절대 위가 넘겨주는 죽과 같은 상태를 따라갈 수 없다. 밥을 먹을 때마다 내가 따로 하는 기도는 미안함이다. 거칠고 입자가 굵은 것들이 들어간다. 입이 삼키기만 해서 미안하다.
한바탕 토를 하고 나면 당분간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물도 어딘가에 걸리는 느낌이 든다. 배고파지면 그때 뭐라도 찾아 먹는다.
샤워를 하다가 머리를 깎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날이 개고 하늘도 좋았다. 느슨한 것과 빈둥거리는 것은 다른 생활 방식이다. 나는 불안 위에 지어진 평온에 세 들어 산다. 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8년 만에 머리를 짧게 잘랐다. 거울 속에 있는 사람이 낯설 정도였다. 그렇지만 잘했다 싶다. 더군다나 신호등까지 건너서 찾아갔으니 몇 배 더 잘한 것이다. 농담으로 삼손처럼 머리카락에서 글 쓰는 힘이 나온다고 그랬었는데, 오늘부터는 그런 것도 없이 쓰기로 한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고 그러던데 그 말이 맞다. 다시 돌아왔어도 분명히 달라진 무엇인가가 있다. 사실은 그 힘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학생들이 모두 놀랐다. 신기해하기도 하고 재미있어하기도 하고 다행인 것은 내가 더 똑똑해 보인다고 그런다. 그래? 그런데 우리 식구들은 모두 반응이 좋지 않다. 다시 머리 길렀으면 좋겠다고 그러고 강이는 눈물이 날 뻔했다고도 그런다. 그렇지, 강이가 8살 먹었을 때부터 줄곧 나는 머리를 길렀으니까, 어린 강이에게는 그 모습이 내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내도 딴 사람이 앉아 있는 것 같다고 소/스/라/친/다. 언제는 머리 긴 남자들 싫다고 그러더니, 세월 앞에서 사람은 보잘것없다. 점점, 그 말은 정말 오묘한 말이었구나. 점점漸漸, 물이 스미고 번져가는 순간을 두 개 연속 붙여서 만든 말. 그렇게 물든 것들은 사람도 변화시키기 마련이다. 자연이 위대한 것이 바로 거기 아닐까. 멈춘 듯이 흐르는 시간으로 모든 것을 품에 안는다. 삶도 죽음도 그 안에서 평화롭다. 충격적이지 않게 놀라지 않게 슬프지 않게 먼지처럼 날리지 않게 나무에 물이 오르고 땅이 몸을 푸는 것보다 더 천천히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옮겨가는 그것을 나는 점점이라고 불러본다.
이용원은 정기 휴일, 바로 옆에 미장원으로 들어갔다. 어디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나온 사람인 줄 알았다며 나를 가운데 놓고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글쎄, 얼마나 오래 길렀냐며 별 걸 다 물어본다. 왜 길렀으며, 뭐 하는 사람이며, 무슨 일 있었냐고도 그런다. 나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영 어색한데 아주머니들은 심심하던 참에 잘됐다 싶은 분위기다. 사람들이 너무 똑같이 하고 다니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싫었다고 그러면서 머리를 길렀다고 했더니, 할머니 한 분이 나선다. 그래도 그게 편하잖아? 따라서 하는 것이.
고개를 들어 거울에 비친 할머니를 바라봤다. 아, 내가 할머니라고 부르면 안 될 분이셨다. 나는 정말이지, 내 나이를 자주 잊어버린다. 예순은 넘었고 일흔은 안 되어 보였다. 눈이 마주쳤던가 싶은 순간에 머리를 자르던 미용사가 앞을 가로막았다. 눈을 감고 대답했다.
"편하긴 한데 그게 영 싫은 경우도 있던데요."
아마 아주머니들이 뒤에서 내 머리가 다 깎이는 것을 끝까지 지켜봤을 것이다. 머리를 감고 일어서는데 머리 깎는 것도 예술이라고 누군가 거들었다. 나는 졸지에 '예술품'이 되었다. 봄볕이 부드럽게 내리고 바람도 시원했다. 나는 그동안 어디에 다녀왔던 것일까. 오래 길을 걷고 돌아온 기분이다. 8년이면 어디에서 어디쯤 될까.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6천2백 개,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썼던 것들이 모였다. 원점으로, 처음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마음은 이런 것이구나. 잃을 것이 없다는 마음, 거기가 어디든 그때보다는 더 잘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든다. 해봤으니까, 한 번 해봤으니까, 그래서 어려운 줄도 알고 이겨낼 줄도 안다. 겨우 머리 하나 길러본 것이 살아본 적 없는 어떤 삶을 살아본 것인 양 나를 든든하게 해 준다. 어디로 갈까. 바람이 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