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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n 01. 2024

마실길 3코스 - 2020.0927

우리가 걸으면서 나눈


마실길 3코스 - 2020.0927

저 하늘을 그리고 저 바다를 코발트블루라고 부를 것이다. 블루는 푸르고 맑다. 건너편이 사라진 것처럼 투명한 것이 물이 가진 맑음이라면 하늘과 바다는 거기에 무엇을 더 넣었을까. 고흐가 그린 그림에도 수백 종류의 노랑이 있다던데 맑음도 그럴까. 이 맑음은 저 맑음과 출신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것일까. 하늘이 맑으니까 바다도 맑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즐거워하는 모양이 보는 사람까지도 가볍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래, 우리는 거기 마실길에 있었다.

러브가 들리는 해변, 러브가 파란색 잉크에 찍힌다. 콕, 만년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파란 물이 출렁거릴 줄이야, 나한테서 먼 하늘은 더 옅고 나한테서 먼바다는 더 짙다. 나에게서 가까운 하늘은 청靑하고 나에게서 가까운 바다는 백白하다. 그러데이션, 층층대 - 계단을 층층대라고 불렀던 꼬맹이들은 다들 어떻게 자랐을까. - 지평선이 보고 싶을 때가 있고 수평선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땅이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바다가 하늘에 맞닿은 곳으로 걸어가는 상상 속에 모든 것들이 희미해지고 번져가고 물들고 어두워지고 밝아진다. 물빛이란 말을 처음 들었던 날에 눈이 아플 때까지 강가에 앉아있었다. 불빛을 보면 어디서든 반가웠다. 별빛은 그중에서도 친근하고 잊지 못하는 눈빛이 있고 잊지 못하는 달빛도 있다. 빛은 점점, 점에서 점으로 살아간다. 빛이야말로 순간 속에 영원을 간직한 보석이다. 빛을 잃으면 다이아몬드도 별도 사랑도 그리고 사람도 폐허가 되어갈 것이다. 수평선이 선善하다. 선한 것들은 사람을 물큰하게 적시거나 울린다. 아프리카 꼬맹이들도 층층대 그러면서 놀러 다닐까. 내가 어렸을 때보다 더 가난하게 자라는 아이들을 TV로 보면서 천사가 굶는 세상을 어쩌면 좋을지 몰라, ······ 점점 그러고 말았다.

"모국어에서 흰색을 말할 때, '하얀'과 '흰 '이라는 두 형용사가 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 '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흰 '책이었다." - 한강, 흰

빛나는 것들을 눈에 넣고 하얗게 내리는 것들을 떠올린다. 하얗고 하얗다가 더 희어진 것들, 더 희어질 것이 없어서 가물거리며 남아 있는 무수한 점들, 수평선은 그래서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수평선 앞에 서면 가만있는 것이 최선이다. 저기 수평선이 보인다, 얘들아.

이 가을에 우리는 걷고 있다. 존 레넌의 oh my love가 빛나고 있다. 러브, 러브, 러브, love를 만져야 할 것 같았다. 그것으로 숨 쉬고 그것으로 머리도 감고 그것을 신고 오늘은 러브가 되어야겠다.

여기,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있다. 수잔은 아내가, 루시는 11살 강이, 당연히 에드먼드는 강산이가 어울린다. 나는 흔쾌히 피터가 되고, 우리는 옷장 안으로 들어간다.

나니아로 가자!

산이가 길동무를 만났다.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에서 계란처럼 생긴 거울을 들여다보듯 후박나무 이파리 하나하나를 살피고 있었다. 러브는 잠시 잊고 후박나무에 어울리는 집을 하나 짓는다면 어떨까 상상하던 참이었다.

그때 길을 가던 아저씨가 저기서부터 봤는데 싸드락싸드락 걷고 있던 산이가 기특하다며 말을 걸어왔다. 처음으로 산이를 모르는 사람에게 맡겼다. 두 사람이 저만치 뒤에서 발을 맞춰 걸어오는 모습이 다정해 보였다. 길에서 누군가와 동행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색다른 경험을 하는구나, 산이야.

걸음이 경쾌하다. 가벼울 줄 알아야 물에 뜨는 것처럼, 그러나 가볍기만 하면 물속을 모른다. 걸음은 끈기가 있어야 한다. 동시에 부드러워야 멀리 갈 수 있다. 적어도 가고자 하는 데까지 가려면 걸음이 매끄럽고 편안해야 한다. 아저씨의 걸음이 보기 좋다. 오래 걸어온 걸음이다. 그러면서도 수줍은 걸음. 속삭일 줄 아는 걸음을 걷는다. 나그네를 여기에서 만났구나. 보폭에도 관심이 간다. 보폭은 하나의 단계다. 상투를 올리고 성인식을 치르는 것처럼 걷는 사람은 보폭과 걷는 속도로 어른이 된다. 자유롭게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풍경에 따라, 마음에 따라 자율 주행을 하는 걸음, 무공해 걸음을 봤다.

'걸음을 보고 아이를 맡기다.'

하늘이 물을 것만 같은 선문답에 바람의 문장으로 답했다. 산이와 아저씨가 어울린다. 그 맑은 공간에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어울리면 다 시원해 보인다. 막혀 있지 않으면 통하고 통하면 어울린다. 우리는 서로 통해야 한다. 마음이 통하면 유쾌하고 바람이 통하면 상쾌하다. 쾌快는 뻥 뚫리는 것이다.

봄날에 새만금 방조제가 시작되는 마실길에 첫발을 떼고 나서 우리는 굽이굽이 잘 다니고 있다. 산이와 강이는 학교에 가고 아내는 회사에서 바빴으며 나는 병원에도 다녀와야 했다. 지리산에 갔다가 하루를 다 걸으면서 우리가 누렸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게 다 나니아 연대기가 사람들에게 말하려던 가치 아니었을까. 우리가 길을 걸으면서 하나씩 주워 담은 것들, 거기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 있을까. 무엇이 우리를 튼튼하게 해주고 있을까. 이제 먼 것을 멀다고 싫어하지 않는다. 뜨거운 날씨라고 겁먹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도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부는 날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침대에 누워 꿈을 꾸면서 나니아에 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거기에도 상사화가 피어 있고 대나무숲을 지나는 길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마실길을 걸었을 뿐인데 나니아에 도착한 것처럼 설렌다. 강이는 오늘 걸었던 길이 힘들었지만 예뻤다고 그런다. 길이 예쁠 수도 있다고 저 조그만 입이 쫑알거린다.

나그네 아저씨는 지금쯤 어디를 걷고 있을까. 아저씨한테 수업을 받은 산이가 옆에서 걷는다. 너는 오늘을 어디에 넣어두고 나이를 먹어갈까. 네가 잊어버릴 것들을 내가 보관해 두기로 하자. 너 혼자 길을 갔던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네 길을 함께했다는 사실을 내가 사진처럼 간직해 둘게. 언젠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 찾아가라. 모두 네 것이다. 네가 걸은 그 걸음들 하나하나는 모두 네 것이다.

믿음이 없다면 빈 껍데기와 같다. 내 믿음은 푸르러서 좋다. 거기 바람이 불어서 심심하지 않다. 내가 믿는 것은 하늘, 모든 색들이 시작한 곳, 흰 곳에서부터 깜깜한 곳까지 점점이 박혀 있는 곳, 하늘만 믿어도 너그러워지는 마음을 믿는다. 길에서는 하늘이 보인다. 하늘을 보고 사는 것이 길이다. 하늘과 길 사이에 우리가 서 있다. 우리는 땅이 전하는 말을 하늘로 보내고 하늘에서 내리는 말들을 땅으로 전달한다. 그것이 도리道理 같은 거 아닐까 싶다. 사람이 간직하고 살아야 할 도리 같은 거.

"아빠가 잘 걷는 거래, 아빠처럼 걸어야 오래 걸을 수 있대."

우스운 녀석이다. 그동안 걸으면서 내가 했던 말들은 다 어디 두고 30분 같이 걸었던 아저씨의 말을 새긴 것을 보면 하여간 재미있는 인생이다. 나그네 아저씨 덕분에 내가 돋보였다. 누가 나를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칭찬해 주는 거, 기분 좋은 일이다. 더군다나 잘 걷는다니, 그 이상 멋진 말이 어디 있나.

우리는 서로에게 삶이 되어 가고 있다. 어느덧 세월이 이만큼 흘렀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 얼마쯤 닮아 있을까. 오늘 가장 수고로웠던 11살 강이, 걸음걸이가 안쪽으로 모이는 것이 더 불편하게 보였다. 아이가 잘 걸어준다. 강이에게 무슨 말을 할까. 11살짜리가 지은 밥으로 우리 세 사람이 시간을 살찌울 수 있는 것이다. 그 밥이 목에 맨다. 걷지 못하겠다고 그러면 우리도 거기서 멈춰야 하는 것이 운명 공동체 아니겠는가. 늘 너에게 감사한다.

캐스피언 왕자가 아슬란에게 나니아의 왕으로서 자기는 자격이 안 된다는 말을 할 때, 아슬란이 했던 말이다.

'그 겸손이 자격이다.'

강이는 무엇이 되든 항상 문장을 품는다. 강이의 문장은 아이 같으면서도 어른 같아서 애틋함이 있다.

'내가 잘 걸으면 다들 좋으니까, 나도 좋고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으니까.'

혹시라도 내 바람이 너를 힘들게 하지 않기를, 그러지 않도록. 나니아의 주인공들에게 유혹에 강해지라고 부탁하는 아슬란의 그 마음을 우리 서로 잊지 않기로 하자.

어디가 좋았었냐. 무엇이 사라지지 않고 남았느냐.

어둠이 내리면 빛은 사라진다. 빛이 사라진 바다는 무엇을 비출까. 우리가 걸으면서 나눈 이야기들이 거기 남아서 소곤거리고 있을 것이다. 파도 소리를 들어가면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하늘에는 별이 흐르고 러브, 러브, 러브 그러는 줄도 모른다. 낮에 반짝이던 것들이 쉬고 낮에 쉬었던 것들이 반짝이는 밤, 세상은 쉬지 않고 돌고 있다는 말을 이제 믿어도 될 것 같다. 점점 우리는 나그네가 되어 가고 빛은 광활하고 물큰하고 애틋하다. 믿음은 그렇게 오래 계속될 것이다.

하룻길을 마치고 버스에 앉아 바라보는 시골 경치를 러브 한다.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마음을 숨길 수 없는 길을 걸었다. 모든 것들이 러브하고 있었다. 잘 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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