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보러 간다고 오늘 수업 못 온다고 그런다. 목소리가 벌써 들떠있다. 모르는 척하며, 너 되게 좋아한다? 그랬더니, 좋지요. 그러면서 거의 노래처럼 말끝이 높아졌다. 옆에서 속닥거리는 친구들 목소리도 끼어들었다. 뭐래, 뭐래? 가만있어 봐, 밀지 마, 등등.
엄마한테는 허락받았어? 네. 이쯤 되면 내 자세를 가다듬고 태세를 전환하는 것이 좋다. 잘 다녀와, ㅇㅇ야. 사람들 많은 데에서 장난치지 말고. 네.
이런 전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더구나 중학교 2학년쯤 되는 아이들이 이렇게 연락해 주면 안심되는 구석이 있다. 그러면 아까 문자 보냈던 ㅇㅇㅇ도 여기 간 거 아니야? 생각이 들려는 찰나 또 휴대폰이 울린다. 이번에는 여학생 ㅇㅇㅇ. 처음부터 다르다. 선생니이임.
어제 원광대 축제가 시작했고 첫날 행사로 가수들이 왔었나 보다. 좀처럼 산이에게 전화하는 일이 없는데 혹시나 해서 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전화를 받는 아이, 서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는 눈치가 그 짧은 시간에 느껴졌다. 어? 어, 왜요, 아빠? 어, 너 지금 어디냐? 친구 머리 깎는데 같이 있어요.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봤다. 5시 5분. 사실대로 말하자면 산이의 대답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잘못된 것은 아니라서 지금 거기서 뭐 하는데 그럴 수도 없었다. 다만 아침에 밥을 먹다가 영어 성적이 좋지 않다고 푸념하던 것을 상기시켰다. 목소리에 우선 힘을 빼고, 그리로 이거 경험상 발견인데 아주 중요하고 효과 있다. 말 첫머리를 '너'로 시작하면 문제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체로 말이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너, 지금 그게 말이냐, 혹은 너,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 같이 뒷말이 뭐랄까, 깎인다고 할까. 급하게 떨어진다. 너, 그럴 것 같을 때 차라리 이름을 부르는 편이 몇 배 낫다. 이름도 잘 알다시피 부르는 방법이 크게 다르다. 성을 함께 부르면, 강산! 이렇게 되고, 성을 빼고 부르면 산이야~가 된다. 저 물결 표시 같은 감정과 분위기가 사람 사이를 돕는 것을 누구나 다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똑같다. 풀네임으로 상대를 호칭하면 바로 부동자세가 된다. 무슨 일 있구나, 자동적으로 직감한다. 긴장하고 쳐다보면서 다음 말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각오를 먼저 한다. 올 것이 왔다 싶어지는 것이다.
요즘 좀 느슨해진 구석이 있긴 한데 아내와 오랫동안 존댓말을 써왔다. 아내는 갈수록 더 존대가 자연스러워지고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가끔 '어, 이게 아닌데' 싶을 정도로 무안할 때가 있다. 나는 60점짜리 말을 건넸는데 대답이 100점으로 돌아오면 그 경험을 하게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상황을 그대로 옮긴다.
#1. (장례식에 다녀온 지 며칠 지났다.)
나 : 그때 입었던 옷 맡겼어?
아내 : 아, 깜박했어요. 오늘 꼭 맡길게요.
#2. (아침에 일어나 방에서 나오며)
아내 : 여보, 잘 잤어요?
나 : 어, 어····.
누구야, 연예인, 정우성하고 이정재는 25년이 넘는 절친이라고 그런다. 언젠가 방송에서 왜 서로 존댓말로 대화하느냐 그랬더니, 둘이 하는 말이 일품이었다. 다들 신기해한다 그러니까, 정우성이 오히려 '신기해하는 게 신기하다"라며 섞어 쓰는 존칭, 이른바 설레는 존칭으로 서로에게 충실하다고 웃는다. 이정재의 대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자들끼리도 격 있게 대화할 수 있어서 좋다고.
10년 이상 된 사회 친구(?) 가운데 내가 존대를 하는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 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다. 심지어 영희 씨는 몇 살이나 아래인지 정확하지도 않다. 한 사람은 300번 버스 기사 아저씨, 한 사람은 제주도 영희 씨. 이런 식이다.
#1. (휴대폰을 들고)
나 : 영희 씨, 잘 있었어요. 식사는 했어요?
영희 씨 : 네, 형. 형이 이렇게 연락 주시고 고마워요.
#2. (함라산을 나란히 걸으면서)
아저씨 : 그러니까요, 그때 함포고복이라고 쓰는 것이 맞나요?
나 : 맞긴 하는데, 그런 데서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지 않지요. 맞아요.
두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다. 친구와는 다른 감정, 그렇다고 이상야릇한 그런(?)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브로맨스? 브라더와 로맨스를 섞어서 만든 그 재미있는 말, 브로맨스! 아마 그 어디쯤일 것이다. 두 사람이 보고 싶어질 때가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그 감정이 나는 존대에서 시작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정재와 정우성이 말한 것처럼.
산이야, 오늘 원대에 싸이가 왔다고 그러더라.
처음 듣는 것 마냥 이야기를 꺼냈다. 저도 알고 있었는데 벌써 짐작이 가는 눈치다. 그래, 아빠가 무엇 때문에 전화를 걸었는지 알 것 같은 것을 겨우 감추는지/ 참는지 거기까지는 감지하지 못했다. 과학 문명이 더 발전할 여지가 충분하다. 곧 마음을 투시하는 그런 휴대폰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학원 수학 선생님이 그래도 좋다고 먼저 말씀하셨단다. 그래? 이거 뜻밖인데. 거기에 대한 준비된 말이 없었다. 그랬구나, 그래. 다음 말을 하지 못하고, 알았어~ 그랬다. 뭘 알았다는 것인지, 그리고 왜 말끝을 그렇게 물결쳤는지.
아들이 크니까 통화하는 것도 생각하고 하게 된다. 어쩌면 아들한테도 존대를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더 낯선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으려거든. 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