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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n 02. 2024

마실길 4, 5 코스 - 2020.1004

우리가 걸으면서 나눈



인후가 좋아했다는 말에 흐뭇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것은 과연 몇 킬로미터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바람 따라 우리가 걸었던가, 바람이 우리를 따라 날았던가. 어제 길에서 우리는 하나의 팀이었다. 바람도 인후도 '우리'였다.

우리가 쏟아놓고 반짝거렸던 것들 -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밖에 나오면 다들 만담가漫談家다. 재주꾼이다. 누가 말만 하면 다들 귀를 기울이니까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다. 모든 말이며 표정들이 찌개에 넣고 끓이면 감칠맛 나는 우렁 같고 바지락 같았다. 듣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즐거웠다. 가끔 쑥갓을 넣어서 끓이는 내 이야기도 아이들이 받아주니까 놀이공원에라도 놀러 온 기분이었다. T 익스프레스만큼 굉장하거나 짜릿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회전목마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어지럽지도 않고 그저 평화로웠다. -이 자연이라는 한 바구니에 담겨 그네를 탔다. 파도에 철썩이고 바람에 흔들리고 아이들이 지저귀고 더 이상 마실길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걷는 내내 파도와 파도가 짓는 파랑과, 거기에 등장하는 달이며 지구의 중력이라든지 그런 이야기와, 모래 한 줌을 손에 쥐고 여기 원래 바위가 몇 개였으며 그 바위들은 얼마나 컸을까 싶은 상상이 버무려져 반죽이 된다. 강력분 250g, 박력분 50g, 오늘 빵 한 번 만들어 보자, 바다 맛이 나는 소금빵 만들자, 그래!

그림 같은 솔섬. 소나무 몇 그루가 전부였는데, 그래서였을까. 어디에 있는 무슨 섬이든 배경이 된다. 무엇이 섬에게 그 독특한 운명을 부여했을까. 떨어져 있다는 것, 떨어져 산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불안일 텐데···· 불안을 외면하고 피하려는 지금은 불안을 모르는 시대, 불안하지 않아서 평화를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나는 저기와 몇 걸음 떨어져 있을까. 여기서 저기까지는 마음먹고 헤엄치면 닿을 것 같은데···· 회색 하늘 아래로 바다도 어두워지는 시간에 가만히 눈 감고 있는 저 능청스러움에 애상愛想, 마음이 들붙는다. 서귀포가 아니라, 오늘 밤은 솔섬에 들어가 나 혼자 밤을 꼬박 지새우고 싶은 생각, 생각, 생각. 삶에 소금이 되어주는 그 알토란 같은 생각들 6g을 얻었다.

남자아이 둘, 여자아이 하나가 흰건반과 검은건반 사이를 번갈아 가며 뛰어놀았던 하루를 내 마음속에 걸어두고 보고 싶다. 너희가 만들어준 어제라는 펜던트는 사시사철 나를 보여주는 작은 거울도 되고 그 거울 속으로 다른 많은 것들도 흘러갈 것이다. 빵 굽는 냄새가 번지는 이른 아침을 거기에 마련해 볼까, 그럴까, 어쩔까. 또 무엇을 더 넣어야 하지? 더 넣고 싶은 것이 없을 때 자유로워진다. 아마 세상을 하나씩 지워나간다면 - 내게 남은 세상은 -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나는 사라지는 꿈을 계시처럼 바라본다. 창작은 인간에게, 소멸은 신에게. 파도 소리가 다 사라졌어도 어디에서 이렇게 퍼지는 것일까. 내가 부른 파도의 첫음, 내가 들었던 파도의 마지막 울림, 모두 piece, piece, piece, PEACE.

늘 우물 하나 거기 있다. 기억인지 동경인지 모르는 풍경에는 피아노 소리를 샘물처럼 퍼올리는 장면이 있다. 향기와 소리가 자기를 완성하는 데 있으면 늘 노을이 진다. 향기를 퍼담는 장면이 있다. 우물은 저기 아래에 있고 내 머리 위로는 구름이 떠가고 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닐 때 삶이 위대해 보인다. 나는 물을 떠올리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는 향기를 맡아서 키우고 소리를 모아서 그것으로 우물가를 청소하고 우물을 지키고 우물과 함께 늙어간다. 거기 물이 찰랑거린다.

맑고 차가운 물을 한 두레박 쏟아 손을 담고 12살, 14살 너희를 기억하기로 한다. 하늘처럼 오래 바라보기로 한다. 손이 좋아한다. 삶이 숨 쉰다. 때맞춰 바람이 와서 우리를 밀어준다. 높이 그네가 뜬다. 머릿속에 지끈거리던 것들도 날아가고 커피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 제대로구나. 짐노페디 1번 느리고 비통하게. 설탕, 버터, 우유, 거기다가 드라이이스트를 살짝 넣어서 손으로 치대며 몇 번이고 뭉치고 늘렸다가 접고 다시 편다. 매끈해질 때까지, 예뻐질 때까지 그것이 신호다. 달콤한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몸짓과 손짓, 눈짓. 바닷가 마을에서는 평소 잊었던 그 신호들을 꺼내 불어 보고 날려 본다. "Roger."그러면 "알았다, 오버." 그런다.

고기도 술도 감식초도 그리고 인생도 달콤해지려면 발효되고 숙성되어야 한다. 잘 기다려 준 것들이 넉넉해지고 넉넉한 것들이 제 몸을 내어준다. 그것이,

그것이 부풀면 빵이다. 마음이 풍선처럼 부푸는 빵, 세상이 달달해지는 빵, 빵이 만들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빵 하고 터지는 순간이 있다. '뻥'은 놀라게 하지만 '빵'은 행복하게 한다. 예수님도 빵이 되고서 웃으셨다. 우리 빵을 좀 먹어볼까, 이 꼬맹꼬맹꼬맹꼬맹이들아.

나이가 오십이라고 해도 상관없이 덤비고 웃고 까불고 재잘거리던 너희야말로 웃음꽃이었다. 제비꽃이 바닷가에 피었다고 그러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너희가 걸었던 자리마다 제비꽃이었다는데 누가 시비를 걸까. 소금기 머금은 짠 내가 맡으며 발밑으로 집개 달린 개가 숨어드는 마실길 4코스와 5코스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빵이 되었다. 그것도 세상에 하나 남은 빵을 용케 찾아 나눴다. 그 빵 이름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10월 초 서해 격포항. 바다에도 곧 가을이 들 것이다. 그때 파란 바탕에 빨갛게 물든 단풍은 얼마나 예쁠까.

어쩌다가 우리가 길을 걷는 동행으로 만났을까요.

인후는 산이보다 한 살 어리고 강이 보다는 한 살 많은, 그러니까 아는 동생이면서 성당 오빠다. 그 유명한 교회 오빠 같은 존재는 아닌 듯하다. 대충 그런 관계로 우리 아이들과 친하다. 보기 좋은 '대충'이다. 서로가 서로를 편안해한다. 꼼지락거리면서 옆을 떠나지 않는 저 친근함을 어른이 되어가면서 잊어먹다니, 나는 벌써 그것이 아까웠다. 더 걸어라, 더 웃어라, 오래 기억해라. 인후는 얼마 지나지 않으면 부산 근처로 이사를 간다. 헤어짐을 아는 나는 서러운데 꼬맹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까분다. 바람 같다.

물 한 모금 건네고 얻어 마시는 사이가 따로 기쁘거나 슬프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한 맛이 있어 좋구나. 저희끼리는 진지한 것도 있겠지만 내가 보는 저희는 얼마큼은 이기적이고 얼마큼은 동화적이면서 또 어느 정도는 모양을 이루는 면이나 꼭짓점 역할을 부지런히 해댄다.

이런 것을 올망졸망이라고 불러야겠다. 알콩 달콩은 신혼에게, 올망졸망은 꼬맹이들에게.

아웅다웅 이별 여행, 그것도 좋다. 어른들은 내일 걱정 때문에 오늘을 무겁게 지내는데 아이들은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옆 사람한테 충실하다. 티격태격, 쫑알쫑알, 그 많던 의태어들을 오늘 다 목격한다. 영상이라도 찍어놓아야 할까. 나는 이런 날이 사랑스럽고 좋아서 흐물거린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은 시간들, 어쩌면 좋으냐.

다시 보기 어렵다는 말이 이분들 사이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화폐 같다. 전혀 아쉬움이 없는 표정으로 대신 조금 힘든 얼굴로 5시간을 걸었다. 함께 있어야 하나의 모양이 갖춰지는 트랜스포머 스타일의 인간관계론을 열 페이지쯤 읽은 느낌이다.

아빠는 무슨 생각인 줄도 모르면서 생각하느라 더 웃지도 못하고 어른이 되었는데 너희는 생각 따위는 던져놓고 바람보다 먼저 웃고 바람보다 훨씬 더 많이 까불거린다.

나 그리고 우리라는 말을 만지작거리면서 걸었던 마실길이었다.

강이는 나선형 계단을 오르던 전망대에서 본 바다가 좋았다고 그런다. 거기가 꼭 중간이었구나.

격포항은 무질서했고 배들은 어지러웠다. 아무 데나 쓰레기를 쌓아놓고 강태공 닮은 낚시꾼은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벗어나고 싶었지만 길도 헷갈려서 헤맸다. 어수선한 것은 피곤하다. 간신히 격포항을 빠져나와 한적한 산길로 들어섰다. 안심이 되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격포항에서 해넘이 공원으로 빠져 산 하나를 넘어오는 듯하더니 드라마 세트장이 나왔다. 전라좌수영 세트장이라고 하기에는 삐거덕대고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일부러 여길 보러 왔더라면 골탕을 먹었다고 그랬을 것이다.

궁항 앞바다에 있는 자그마한 등대를 바라보면서 아쉬움은 떨치고 다시 여행자가 되었다. 마실길은 걸을수록 기대하게 만들던데 많이 말고 대충, 가볍게만 다뤄도 좋을 것을 어쩌다가 손을 놓고 말았는지, 공사를 멈춘 건물들을 지나면서 여기는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코스모스가 빨갛고 하얗게, 그리고 분홍으로 흔들어 주는 가을이다.

이탈리아의 나폴리나 스위스의 몽블랑이 아니더라도 마실길을 응원하기로 한다. 나와 같은 길 아닐까, 마실길?

모항으로 간다. 모항까지 간다.

5시 50분 격포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려고 우리 부지런히 걸었다. 4시 20분에 오늘 장사를 마칠까 했었는데 그러고도 한 시간을 더 걸었으니까 우리도 대단하다. 길은 차분해졌고 우리는 지쳤다. 모항에 다 왔다. 마실길 5코스 끝났다.

인후야, 오늘 어땠냐.

항상 건강해라.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란다. 네가 무엇을 고를 것인지 아무도 모르지.'

내가 젊었을 적에 들었던 그 좋은 말을 인후에게 선물로 건넨다.

추신 - 2020년 10월 멋스러운 가을날이었다. 우리 다섯은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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