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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n 21. 2024

다만 나를 돌아볼 뿐

오래 쓰는 육아일기


두 개의 기사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하나는 골프 선수의 기자 회견이었고 다른 하나는 2011년에 있었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존속 살해 사건이었다. 전자는 돈, 후자는 공부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골프 선수의 기자 회견은 딸이 아버지를 고소한 내용이었으며 2011년에 있었던 사건은 아들이 어쩌다가 어머니를 살해하기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쪽은 피해자가 자식이고 다른 한쪽은 어머니가 피해자였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두 경우 모두 자식이 감당해야 할 상처가 커 보였다. 골프 선수는 기자 회견 도중 "그동안 아버지의 채무를 여러 차례 변제해 드렸지만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더 이상 어떤 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라며 눈물을 보였고 이제 서른한 살이 된 아들은 "엄마는 대단한 사람, 귀한 사람,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위로해 드리지 못한 게 후회된다"라고 눈물을 흘렸다. 한 칸짜리 기사로 어떻게 그간의 사정을 다 알 수 있으며 당사자들 사이에 있었을 수많은 애증의 편린들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다만 나를 돌아볼 뿐이다.

내남직없이 출세와 성공을 기원하고 바라는 세상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보기에 따라 장관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 무리 속 어딘가에서 달리고 있는 것을 안다. 달리는 것은 좋다. 하지만 '달리게' 하는 것은 별로다. 달릴 수 있는 것은 환희다. 그러나 '달려야만 하는' 것은 애처롭다. 모두가 달릴 때 근사하지만 누군가는 초조하고 숨이 막히고 괴롭다. 30년 전 군대 시절이 떠올랐다. 유격 훈련장에서 중대 별로 아침 구보를 하고 또 소대 별로 악을 쓰며 오르막도 오른다. '모두' 그 말에는 평화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경쟁도 들어있다. 둘 이상, '모두'가 되면 늘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등장하는 것들이 있다.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되면 왜 긴장하게 되는 걸까. 어째서 달리기 시작하는 걸까. 달리고 달리고 달려, 달려!

사람은 평화적인지 경쟁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얼마나 경쟁적이며 얼마나 평화적인가. 혼자서 달리는 사람은 경쟁하지 않는다. 자신과의 경쟁은 아무리 필사적이라더라도 거기에서는 감정이 상하지 않는다. 두려운 것도 없다. 그것이 견뎌낸다는 것이다. 견뎌낸다는 말은 이겨낸다는 말이 가지지 못한 안식, 편안함이 있다. '이겨내야 한다'라는 말이 '너는 살아라'는 말처럼 꿀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믿음이 가지는 않는다. 이겨내라는 말은 수술실에 들어가는 나를 배웅하는 인사 같고 지지 않는다는 말은 나와 같이 수술을 받고 있겠다는 말 같아서 의지가 된다. 그렇게 힘내라고 잡아주는 손은 굳고 단단하다. 그 손은 크고 야무지다. 지치지 말라고 당부하는 손은 할머니  손처럼 끝까지 다정해서 보드랍다. 아픈 데를 살살 만져주는  손이다.

우리는 이기고 말 것이라고 무수히 다짐하고 약속한다. 그 약속은 강렬하지만 오래도록 남아 향기가 되지 못하고 추억이 되지 못한다. 내가 견뎌온 것들로 내가 살아가는 것인데 내가 이긴 것들만 남아있다. 저들은 패잔병들이지 않는가. 나에게 진 것들에게서 아무런 평화를 느낄 수 없다. 그래서 내게 순응하지 않는다. 언제든 나를 역전시킬 기회를 노린다. 내가 방심하고 약해지기를 기다린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언젠가 꼭 나를 이기고 말겠다고 으르는 저 원초적 경쟁심을 내 편으로 만들 방법이 없다.

그래서 견디는, 계속 견디는 일이 삶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이기지 않고 견디기로 선언하며 태어나는 일이 삶이 아닐까. 견디려는 사람은 이기려 들지 않는다. 그것은 무참히 참을 수밖에 없는 상태로 추락할 수도 있지만 그때에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그 마음이 된다. 죽자고 덤비지 않는다. 그것은 이기려는 것이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이기기로 한다. 그것이 차라리 쉽다. 그냥 이기기로 한다. 누가 이기라고 가르쳐 주던가.

박경리 선생이 마지막에 쓴 말, '어머니는 다 비우고 다 주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삶을 견뎌낸 사람이 남긴 말이다. 어떤 사람은 다 주고 가고 어떤 사람은 다 갖고 간다. 어디에서나 부자로 살고 싶은 사람들은 자꾸 이겨야 한다.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이겨야 한다. 그래도 부자가 좋다면 어쩔 수 없다. 다만 나를 돌아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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