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건망증 1 / 정양
창문을 닫았던가
출입문을 잠그고 나왔던가
계단을 내려오면서 자꾸만 미심쩍다
다시 올라가 보면 번번이
잘 닫고 잠가놓은 것을
퇴근길 괜한 헛걸음이 벌써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도 미심쩍은 계단을
그냥 내려왔다 누구는
마스크를 쓴 채로 깜박 잊고
가래침도 뱉는다지만 나는
그런 축에 낄 위인도 못된다
아마 잘 닫고 잘 잠갔을 것이다
혼자 남은 주막에서
술값을 치르다가 다시 미심쩍다
창문을 잠근 기억이 전혀 없다
전기코드도 꽂아둔 채로
그냥 나온 것만 같다
다들 가고 없지만 누구와도
헤어진 기억이 없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보통 일이냐
매일같이 닫고 잠그고 뽑는 것이
보통 일이냐, 그래 보통 일이다
헤어진 기억도 없이
보고 싶은 사람 오래오래
못 만나는 것도 보통 일이다
망할 것들이 여간해서 안 망하는 것쯤은
못된 짓 못된 짓 끝도 없는 것쯤은
열어놓고 꽂아놓고 사는 것쯤은
얼마든지 보통 일이다.
닫고잠그고가고보고싶고
다 보통 일이다 술기운만 믿고
그냥 집으로 간다 집에서도 다시
닫고잠그고뽑고열고마시고끄고 그리고
깜박깜박 그대 보고 싶다
- 정양, 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
사람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새벽 두 시에 일어나 식탁에 놓여있는 밤을 까먹는 일이다. 배가 고파서 먹는 것도 아니고 어디 일찍 일하러 나가야 해서 먹는 것도 아니다. 다만 누군가 밤을 키웠고 그 밤이 여길 찾아왔고 또 누군가 밤을 쪄냈기에 나는 굳이 새벽 두 시든 세 시든 아무런 상관없이 밤을 까먹는다. 사람이 보고 싶은 것은 내가 알아서 아는 것이 아니라 네가 네 맘대로 정한 일 같은 일이다. 그럴 줄이야 알았겠느냐마는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은 왜 알지 못했던지.
스무 살 적에 몰랐던 것을 가만 적어두기라도 했다면
그때 슬펐던 까닭일랑 지금 가져와서 펼쳐놓기만 하더라도
사람이 새벽부터 보고 싶지는 않았을 거고
새벽까지 혼자 남지도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아깝고 억울하고 원통해서 이렇게 밤을 까먹는다.
아깝고 억울하고 원통한 것을 잘 벗겨서 알맹이만 골라 먹는다.
12월인데도 끝나지 않는 연극은 어디에 가야 볼 수 있을지
12월이나 해서 만나는 풍경에는 네가 멀리서 오고 있겠지, 그러겠지.
새벽처럼 무게 있게 그리고 가벼웁게, 그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