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이 토요일 새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분명히 잠을 자고 있었지만 어딘가에서 깨어 있었던 듯하다. 꿈은 아니고 열대야 같은 것도 아니고 - 까닭도 없이 말도 줄었다 - 불일암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자도 아닌데,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절을 정성으로 해서 그랬을까...
아침 시간을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점심을 먹고 1시에 간단히 챙겨서 집을 나섰다. 2시간 거리를 달렸다. 오랜만에 고창을 지났다. 송광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불일암을 올랐다. 볕은 쨍쨍하고 산속의 공기도 미지근하고 텁텁했다. 무소유의 길이라는 푯말이 걸리적거린다는 느낌을 줄 뿐이었다. 불일암 사립문도 더 좋아졌다. 거기 후박나무와 법정 스님이 만든 나무 의자를 보고 비로소 여기 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옆으로 낸 문 아래 털신 한 짝, 그야말로 한여름에 댓돌에 -아니다, 여기는 돌이 아니라 통나무를 쪼개서 땅 위에 눕혀놓고 그 위에- 반듯이 놓인 털신을 보고서야 알았다. 법정이란 이름도 불일암도 송광사도 채전도 불볕더위도 다 아니었다. 처음에는 스님이 묻힌 후박나무를 안아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깊은 적막이라도 마주치면 낯설어하지 않고 가만히 응시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기에 들른 다른 모든 사람들이 했던 것이었다. 스님에게 인사하고 스님에게 안부를 전하고 스님 생각을 하며 산새 소리에 오래된 것들과 불일암 마당을 거니는 자신을 돌아보는 일, 그 과정을 통째로 생략했다. 백 년 후, 삼백 년 지나서 아무도 없는 여기를 떠올렸다. 그때 대숲에 부는 바람은 마당 같은 채마밭을 한 바퀴 돌고 나처럼 돌계단을 올라 저 털신 앞에서 멈출 것이다. 누구였던가, 불을 밝히고 저녁을 지키던 바지런한 손과 나란히 달빛을 향해 서성였을 저 발을 알아볼 것이다.
메시지가 된 듯했다. 내가 전달하러 간 것이 아니라 내가 거기 가서 읽힌 듯했다. 나는 읽히러 왔구나. 불일암의 뜨거운 하오夏午가 나를 읽어주는 순간 납작 엎드리고 싶었다. 거기 더 얹을 것이 없었다. 문장이나 말이 없이도 마음이 없이도 살고 죽은 것들이 돌고 돌아서 공空을 이루면 그 덕으로 내가 빌 수 있다. 빈다는 것은 가볍고도 맑은 소임이다. 비로소 빌虛 줄 알기를 흐르는 땀을 닦으며 빈다.
불일암 마당을 열 걸음쯤 벗어나면 자정 국사 부도탑이 있다. 1300년이면 7백 년 전에 만든 부도다. 그것도 인연이었겠다. 한 번도 여기 와서 이쪽을 기웃거린 적이 없었는데 어제는 내 나이도 그 나이가 되었던 듯싶다. 7백 년 전 스님에게 안부 인사를 올리는 시절이 꽤 봐줄 만했다. 인사드립니다, 어쩌면 여기 이 아랫돌을 제가 들어다 여기 담담하게 내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마다 풀이 자라는 것도 보고 돌이끼가 늘어가는 것도 다 세었던가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스님.
한 세월을 살아온 듯한 굴참나무가 잘 자랐다 싶었는데 거기 매미였던 것이 바짝 엎드려 있었다. 한때는 숨이었던 것, 한때는 전부였던 것이 거기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게 가볍게 멈춰 있었다. 탈피하고 신선이 되었구나, 羽化而登仙. 투명하게 마른 매미의 기억에게도, 그 매미가 달라붙어 살았던 굴참나무에도, 거기 서서 그 둘을 맺어주고 바라보는 나한테도 정이 갔다. 공연히 말이 없어지면 손을 모으는 수밖에, 두 손을 모으고 어디선가 들리는 꾀꼬리 소리에 내 낡은 혼침昏沈*을 깨웠다. 맵게 여름이 짙어지는 속에서 고즈넉하게 떨어지는 것들을 바라봤다.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면, 낙엽이 지면 낙엽이 지면, 사람이 앉았던 자리가 그리워집니다. 그리워집니다. 사람은 사람이 늘 보고 싶고 사람은 사람이 늘 저만치 있습니다. 고즈넉하지 말자고 때때로 찾아가서 그냥 돌아왔다는 일기를 써보자고, 그러자고 돌아서면서 길을 내려오면서 두 번, 마음먹었다. 다만 그리운 것들이 미망*처럼 졸졸졸 따랐다. 내버리지도 못하고 떨어지지도 못하는 강아지 새끼 같은 것들이 하냥 좋아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 혼침 : 정신이 아주 흐려지는 것. 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수마(睡魔)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