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고등학교 2학년 덩치들 넷이 자고 있다. 한 친구는 그때까지 방문을 열어놓고 산이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산이 친구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은 넷인데 아는 이름은 성현이, 윤성이 두 개다. 중학교 다닐 때에도 이렇게 네 명이 어울렸다고 하니까 제법 친한 친구들인 것이다. 방학하면 1박 2일로 서울에 놀러 갔다 오는 사이.
거실 테이블에는 먹다 남은 음료수며 컵, 편의점에서 사 갖고 와서 먹은 인스턴트 제품들과 그 제품들이 남긴 비닐 쓰레기가 널려 있고 싱크대에는 어젯밤 뭘 먹었는지 알려주는 그릇들이 빨갛게 말라 있었다. 10시 반에 배달시킨 치킨도 한몫했던 듯하다. 깔끔하게 발라먹은 뼈들이 그 옆에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친구들이라, 산이 친구들이 자고 있다.
아버지는 내 친구들을 흐뭇하게 여기셨다. 아버지가 대부분 어려웠는데 그 부분은 잘 기억한다. 아버지, 그러면서 다정한 마음으로 불러본 적이 없다. 아버지를 부를 때면 침을 삼키고 망설이는 내가 있었다. 부를까 말까, 할까 말까. 망설임이 길어지면 결국 없던 일로 돌아갈 때가 많다. 부르는 것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것이다. 그 순간은 아쉬워도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도 알기에 포기가 잘 됐다. 말을 걸고 싶지 않은 상대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인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상대가 나는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색하게 느낄 정도로 아버지는 내 친구들을 좋아하셨다. 쉰 살이 넘은 친구들에게 다시 물어봐도 우리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지 다 상상이 된다.
도로변에 식당을 차려서 먹고살다가 골목 안에 기와집을 한 채 사서 지냈었다. 그 기와집을 다 허물고 2층 양옥 -그때는 한옥, 양옥이란 말이 더 많이 쓰였다. 콘크리트 슬라브라고 하는 것 말이다. -으로 집을 지었을 때다. 집을 다 짓고 그날 하필이면 '그날' 아버지는 그 집에서 처음으로 잠을 주무시다가 깨셨다. 밤늦은 시간에 나와 내 친구들이 밖에 나가서 어울리다가 - 군대 막 제대했을 무렵 - 집에 들이닥치는 것을 보고 일어나셨던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늦은 시간에 불쑥 찾아온 우리가 조심했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그대로 도로변에 있는 가게로 피신하셨다. 얘들끼리 편하게 놀라고 그러고 우리는 가자고, 어머니한테 그렇게 말씀하시던 것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그 뒤로도 새로 진 집에서 자본 적이 없다. 명절에나 겨우 하루 장사를 쉬는 분이라서 늘 어머니와 함께 가게에 머무르셨다. 거기서 자고 먹고 일하고, 새로 지은 집에는 가끔 들르기만 할 뿐 거기서 한 시간도 앉아 있은 적이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아버지는 두 가지 표정이었다. '너는 네 친구들하고 입장이 달라', '친구가 제일 중요하다' 두 가지 기술로만 던지는 투피치 투수처럼 아버지도 그렇게 공을 던졌다. 어떤 공은 잘 쳤고 어떤 공은 그대로 스트라이크가 됐다. 하지만 아버지가 던질 줄 아는 두 가지는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구질이어서 언제나 헷갈렸다. 잘 쳐낼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가 흐뭇하게 바라봤던 친구들은 잘 살고 있다. 그만하면 나쁘지 않다.
산이 친구들을 9시에 깨웠다. 밤새 틀어놓은 에어컨도 너덜너덜한 느낌이 들었다. 창문을 열고 더운 공기라도 새로 바꿔주고 싶었다. 산이가 가장 비몽사몽이었다. 5시에 잤다고 그러니까 정신없었을 것이다. 간단히 씻고 그 아이들이 씻는 동안 이불을 갰다. 옛날에는 그러면 안 되었지만 지금은 이래도 된다. 아이들 눈에는 이불, 베개, 양말, 짝 없는 젓가락,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자기 휴대폰 하나 챙기면 그것으로 다 된 줄 아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다. 어제 아이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도 지갑이며 칫솔, 에어팟이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서 콩나물 해장국집까지 걸어갔다. 벌써 볕이 뜨끔뜨끔하게 사람을 쪼았다. 구레나룻 아래로 땀방울이 흐르는 것을 보니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던데 아침부터 차가운 냉면을 시켜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콩나물국밥을 의외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그제야 나도 마음이 놓였다. 잠깐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꿈이 있었는데 꿈이 없어졌어요,라고 시작하는 아이의 고백이 사람을 연하게 했다. 국밥 한 그릇 먹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깊이 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잠깐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 근처 마트에 가서 카페오레 마일드를 사 갖고 왔다. 이거 괜찮지? 그러니까 다들 좋다고 그런다. 목소리가 좀 더 커진 듯했다.
'내가 마음을 읽잖아!'
농담이었는데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머쓱해졌다. 그럴 것 없는데, 오~ 그러니까 창피하기도 했다. 나 먼저 갈 테니까 너희는 더 있다가 일어나라며 혼자 걸어왔다. 아마 그랬던 거 같다. 같이 걸어와서 같이 국밥을 먹고 같이 이야기를 10분 나눴던 것, 그것이 전부였는데 그게 전부가 되었던 듯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테이블에 앉은 산이가 그런다. 얘들이 아빠 재미있다던데, 윤성이는 사실 허리 디스크가 파열되어서 그때 공부를 못했거든 그래서 꿈이 없어졌다고 한 거야. 윤성이가 자기도 지리산 가면 좋겠다고 그러더라고.
그래? 그래! 그래·····
그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