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하는 곳이다.
집에서 보낸 주말이 느리게 흘렀다.
첼로의 선율을 닮았다고 하면 그럴듯하겠다.
느리고 완만하고 깊게 현을 늘어뜨리듯이 시간과 동작과 말과 마음이 바닥에 가 닿는다.
안정감을 느낀다.
산이와 캐치볼을 하고 시험공부를 같이 했지만 그것마저도 가벼운 터치로 깊은 음을 선사하는 피아노 소리 같았다.
땀 흘려 일한 뒤에 갖는 휴식이 달콤한 것처럼 이번 주말이 좋은 것은 벌써 지난 주말부터 정해진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부지런히 주말을 걸었으니까,
집에서 천천히 시간을 걸어보라며 특별히 배려해준 하루를 보낸 기분이다.
우리는 심심할 때를 기다려 라면을 끓였다.
라면은 하나의 종교다.
집에서 멀어질수록 라면 맛은 특별해진다.
멀리 가서 끓여 먹는 라면이 더 맛있는 이유를 누가 좀 알아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라면은 철없던 어린 시절이나 무엇을 하든 깨지기만 했던 이십 대를 떠올리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사랑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을 라면을 보면서 깨닫곤 한다.
다시 태어나면 라면하고 결혼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면발 좋은 라면으로 태어날지도.
나는 라면을 잘 끓인다.
한쪽 눈을 감고 끓여도 두 눈 뜨고 끓이는 어떤 사람들보다 맛있게 끓일 자신이 있다.
행복해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가장 짧은 순간이 라면이 앞에 놓이는 찰나, 그 몇 분의 일 초 아닌가.
가끔은 다른 사람이 끓여주는 라면으로 행복해지고 싶을 때가 있다.
이렇게 평화로운 주말 오후에는 그 욕구가 무럭무럭 자라난다.
"라면 끓여먹을까?"
각자의 방에서 쓸데 있는 게으름을 피우던 산이와 강이가 일제히 큰소리로 대답했다.
"오케이!"
"좋지!"
가을이 맛있어지는 지금이다.
날이 밝으면 사람들에게 보낼 초대장을 썼다.
오늘부터 한 달은 설레는 시간입니다.
만추 晩秋로 가는 길입니다.
그 길 한 걸음마다 색 色 있는 것들은 마치 조화를 부리듯 빛과 어울리며 향연을 즐길 것입니다.
모양 있는 것들은 요술에 걸린 것처럼 너그러워지고 말라지며 가벼워지는 비행 飛行을 준비할 것입니다.
절정으로 흐르는 공간에서는 모든 것들이 한 번 더 축제처럼 용오름 할 것입니다.
미련 없이, 그렇게 말입니다.
마치 불 들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단풍 丹楓이 낙엽이 되어 흐르는 '벼랑 같은 시간들'이 오늘부터 공연 시작입니다.
어디쯤 앉아서 이 공연을 관람할지 즐거운 상상에 빠집니다.
가을밤 야외 공연은 바람이 차기도 하니까 무릎 담요 정도는 준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일시 : 2020년 10월 19일부터 11월 끄트머리까지
장소 : 시선이 닿고 마음이 닿고 걸음이 닿는 곳
준비물 : ´나는 누구인가´ - 열 줄 내외로 된 자기소개서 (단, 직업과 나이, 이름은 생략)
제공 : 커피 어떨까요?
일요일 오후 3시 48분, 창밖에서 가을 햇살과 바람이 섞여서 들어온다.
라면이 맛있는 시간.
기분이 좋으면 주문서를 넣는다.
-콩나물 넣어서 김칫국 끓이듯 국물을 내면 좋겠습니다.
멸치는 3마리가 적당합니다.-
주문도 분위기를 봐가면서 낼 줄 알아야 대접받는다.
오늘은 그래도 되는 날이다.
라면이 되는 시간, 10분은 침대에 누워 '너튜브'로 '짤'을 보면 최고다.
나는 '상산 조자룡'을 선택했다.
"자, 라면 다 됐다."
당연히 내가 먼저 자리에 앉았다.
예쁜 것은 언제나 유혹적이지, 라면 한 그릇이 모양도 예쁘게 기다리고 있었다.
강이를 부르고, 산이를 불렀다.
먼저 한 젓가락 뜨고 싶었지만 명랑한 분위기에 어울리게 기다려주기로 한다.
다음에 나올 대사도 이미 정해졌다.
라면 끓여본 사람들은 다 안다.
"라면 퍼진다, 빨리 나와라."
아, 내 라면의 청춘이 지나가고 있다.
아이들은 뜬금없이 재빠르고 어김없이 굼뜬다.
같이 먹고 싶었던 내 바람을 옆에 앉혀두고 먼저 먹기로 했다.
조금 퍼졌다. 그런데 맛있다. 역시다.
강이가 나왔고 산이는 한번 더 불러야 했다.
내 인사는 어떻게 들리는지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라면이 엄청 맛있어, 다 퍼졌어!"
웃으면 일단 어느 쪽으로든 해결이 된다.
더욱이 밥 먹으면서 웃으면 기다림도, 초조함도, 안타까움도 심지어 장례를 치르면서도 마음이 즐거워진다.
눈치 없는 것이 된다.
그렇게 떠든다.
이번에는 뭐 넣은 거야?
국물이 맛있네 어쩌네 하는 것이다.
누구 라면에 계란이 더 들어갔다는 말은 이제 사라졌다.
옛날 나 어렸을 때나 들을 수 있었던 말이 되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규칙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야 하는 규칙, 하루에 글자를 얼마큼 쓰기로 하는 규칙, 맡은 곳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규칙.
그런 규칙들을 지켜야 '할 일' 이라며 일러줬다.
나도 내 규칙들을 적어놓고 지켰다.
그렇게 적어놓고 지내면 아무래도 충고가 줄어든다.
산이가 중학교 들어가면서 그 규칙들을 적는 것도 그만두었다.
알아서 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알아서 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다.
모처럼 그 마음이 들어서 말을 꺼냈다.
사람을 돕는 것들은 많다.
사람이 사람을 돕고 책이며 지식이 사람을 돕고 또 무엇이 사람을 돕지?
모든 것이 거기에 해당됐다.
아이들이 말한 자동차, 건물, 돈,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 뿐만 아니라 하늘이며 공기, 하느님까지 다 나왔다.
거기에서 내가 물었다.
지금 우리가 맛있게 먹는 라면은?
당연하다는 표정과 놓쳤다는 표정 사이에 펼쳐지는 망설임, 우주 같은 넓은 공간과 멍하고 뚱한 그림자가 있었다.
사람을 돕는 것들은 소중하다.
우리가 입으로 먹는 것들은 우리를 살린다.
나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규칙들, 그럼으로 의미가 되게 하는 내 살림살이들, 밥이 되기도 하는 그것!
라면을 라면이라고 라면 대접하면 될까?
곧 우리 아이들은 열다섯이 되고 그러고 더 나이를 먹으면서 나를 해체시킬 것이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반갑게 늦은 가을 햇살이라도 따뜻하게 받으면서 많이 고마워할 것이다.
하던 게임을 마저 하고 식탁에 앉았던 산이는 라면 국물 남았냐고 묻는다.
생각보다 적게 남았던지 아쉬워하며 묻는다.
'죽' 먹을 사람?
칼질하는 데 재미를 붙인 요즘이다.
우리는 벌써 배부르게 다 먹었다.
찬밥을 덜고 파를 잘게 썰어서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린다.
계란 하나를 열심히 풀어서 죽을 만들어 먹는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은 우리를 살리는 것들이다.
물이든 밥이든 라면이든 공기든 다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기분 좋게, 배부르게 라면을 먹고 산이가 외친다.
"아빠, 캐치볼 한 판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