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여인숙 / 잘라루딘 루미
인간은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짧은 순간의 깨달음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무리여서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 가 버리고
가구들을 모두 다 가져가도
그래도 저마다의 손님을 존중하라.
그들은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일지도 모르니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히 여겨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여인숙이란 말 앞에 서면 부끄럽다.
지금도 다 지워지지 않은 얼룩이 진 옷을 입고 거리를 거니는 기분이다.
여인숙이란 말을 언제 처음 봤을까.
기억에도 없는 그 순간에 나는 도대체 몇 살이었을까.
많이 어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자'를 생각했겠지. 여인은 여자니까.
그런데 내가 생각해 낸 '여자'는 엄마 같고 누나 같고 친구 같은 그런 여자가 아니었으니까 부끄러웠던 것이다.
어디에서 배웠을까.
음침하고 컴컴하고 습한 데에서 피어나는 여자를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아니면 어떻게 알았을까.
그래서 여자들이 있는 곳, 여인숙은 오랫동안 '그런' 여자들이 떠오르는 말이었다.
내가 스물이 되어서도 여인숙의 여인은 여인旅人이 되지 못하고 그대로 여인女人으로만 남았다.
그 빨간 간판들을 보면서 세상을 두루 돌아다녀볼 마음을 다 잃어버리고 싸구려 향수 냄새가 배어있는 좁은 방구석으로 저를 몰아넣고 말았다.
여인旅人의 마음도 못 배우고 여인女人을 사랑할 줄도 모르고 여인숙에 머무는 사람,
스무 살에는 천변 가에 늘어선 허술한 여인숙을 기웃거리더니 쉰이 다 되어서도 거기서 서성거리느라 세상에는 나가본 적이 없는 가볍고 옅은 사람아,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그만 날아가 봐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