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 박남준
그리움도 오래된 골목 끝 외딴 감나무처럼
낡아질 수 있을까
흘러온 길이 끝나는 곳 세상의 모든 바다가
시작되는 그곳
밤새 불빛 끄지 않고 뒤척이며 깜박이는 등대 같은 것
고백하자면 아니 아직도 다 고백은 못하겠지만 박남준 시인은 나를 몰라도 나는 그에 대해서 벌써 오래전에 들었다.
책에서 본 것도 아니고 만난 일이 있던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를 만나러 갈 수도 있었다. 다만 전주, 모악산이라고 해서 나서지 않았을 뿐, 만약 거기가 지리산 어느 골짜기였거나 멀리 강원도 어디쯤이었다면 길 따라 친구 따라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가까이 머문다는 사실이 때로는 이유가 되어 볼 일 없게 만드는 인연을 만들고 만다. 그러니 실컷 어리석은 만큼 그만큼 꼭 살아내는 것이다. 그만큼 숨기면서 또는 숨으면서 하늘에서 멀어질 궁리만 하는 것이다. 저 죽어가는 것은 모르고 말이다. 새파란 것이 본받을 것이 없어서 그저 보는 눈이 없어서 쭉정이 같은 것들과 시름하던 젊은 날에 그를 만나러 가기만 했어도 내일모레 쉰이 되는 나는, 나는 낡아질 수 있었을 것을.
물을 건너는 나그네가 아니라, 배를 저어 가는 사공은 더욱 아니고서도 나는 낡아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나룻배가 되어서도 밤새 불빛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꺼지지 않는 것들을 솎아내고 달달 볶아내면서 혼자서라도 후후 불어가며 깜박였을 것을.
곧 쉬운,
쉰에 다다른 나는 그만 물속에 잠겨 향香이라도 되어볼 심산이다.
오래오래 잠겨서 다 없애고 가느다란 줄기 하나로 피어나는 불 아닌 불로 살아야겠다.
죽는 날에는 그 향으로 앞에 꽂아두고서 사람들 기분 좋게 휘, 불어주면서 혼자 가봐야겠다.
바다가 시작되는 날에 돛 하나 달고 설렁설렁 미끄러져야겠다.
좋다.
들어와라.
불이든 물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