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 리
올레 18코스 : 김만덕 박물관 - 조천 만세동산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 길은/ 칠팔십 리(七八十里)/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김소월, 산
지도 앱에 나오는 거리는 19.7km, 김만덕 박물관에서 조천까지 화면을 확대해 가면서 눈으로 따라가 본다. 집게손가락으로 몇 번이나 화면을 내려가며 길을 확인한다. 멀다, 좋다 ···. 토요일 밤이었다. 17코스를 걷고 숙소에 들어와 일단 움직이지 않았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밥 생각도,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5층 창밖에 바람 소리만 휘영청 눈부셨다. 감사합니다. 해풍을 맞고 건조해진 입술 사이로 다섯 글자가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마지막 숨처럼 차분한 숨결이 오선지에 그 말을 옮겼다. 사람이 가끔 노래 같은 말을 할 때가 있구나, 그 생각과 함께 잠이 들었다. 아마도 1mm도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숨도 쉬지 않았는지 모른다. 눈을 감았다가 눈을 떴다는 자각뿐이었다.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눈을 뜬 첫 순간에 김소월이 생각났다. 10리는 4km, 6에 4, 24 ···. 그때는 길도 좋지 않고 더구나 저 북쪽 함경도인데 얼마나 산이 험했냐고 스스로 묻고 신발은 또 얼마나 믿을 게 못 되었겠냐고 생각했다. 24km는 그냥 가보는 거리가 아니라오. 나도 나도 알지요, 잘 알고 있지요. 내 생각을 듣는 그와 그의 대답을 생각하는 나는 같은 세상을 걸어본 적은 있었을까. 살아본 적은 결코 없었을까.
17코스는 기존의 종점에서 새로 바뀐 김만덕 박물관까지 거리가 19.5km라고 뜬다. 관덕정에서 김만덕 박물관까지 960미터, 1501걸음을 남겨두고 멈췄다. 시간이 늦은 것도 아니었고 한 걸음도 더 못 걸을 상태도 아니었다. 거기까지 갔다가 버스 타러 관덕정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보 같아서, 욕심 같아서 그랬다. 내일도 걸을 텐데, 이 앞에서 버스를 내리고 이 길을 따라 내내 걸을 거니까.
··· 육십 리를 ···
꿈에서 내가 다녀온 곳이 정주 곽산(定州郭山)*은 아니었을까. 소월은 젊었고 나는 지쳐 있었다. 등잔불만 환했다. 말이 없는 것이 꿈이었다. 필담(筆談)으로라도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어봤을 것을 눈을 감은 채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
일요일 아침에도 바람이 불었다. 대신 구름 속에 하늘이 비쳤다. 파란 하늘은 늘 그대로인 것을 새삼 깨닫는 아침이다. 비가 내리고 눈이 내려도 하늘의 바탕은 맑음이다. 저 맑음을 오늘은 내가 빌려 간다. 수 틀리면 어디 꼭꼭 숨어서 영 밖에 나오지 않으리라.
제주를 걷기 시작하면서 제주에 있는 성당을 찾아보는 여행도 같이 시작했다. 우도에 있는 성당까지 포함해 총 31개의 성당이 제주에 있다. 바닷가 마을 언덕 위에 있는 조천 성당에 처음 발을 디뎠던 날이 생생하다. 작년 5월에 아내와 강이, 셋이서 들렀던 표선 성당의 정갈했던 조경도 인상적이었다. 신제주 성당에 들러 오전 9시 미사에 참석했다. 산티아고에 가서도 길에 있는 모든 성당에 찾아가 경배하는 것이 내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가 됐다. 길을 가는 나그네에게 신의 축복만큼 용기가 되는 것이 없다. 한라산에도 다녀오고 17코스를 걷고 난 뒤라 피로가 쌓였다. 거기다 뱃속이 불안정해서 기운이 더 떨어졌다. 하지만 월요일에는 제주를 떠나야 한다. 떠나고 나면 당분간 여기에 올 수도 없다. 일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바쁘지 않더라도 사흘 연속 자리를 비우게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미사를 드리면 충만해진다. 325번 버스를 타고 관덕정 앞에 다시 섰다. 아직 17코스가 끝나지 않았다. 천오백 한 걸음을 걸어서 그 길을 마쳤다.
김만덕 박물관을 몇 걸음 지나쳤다가 되돌아섰다. 김만덕이 누구길래?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남자인 줄 알았다. 건물에 들어서자 희미하게 생각이 났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탓에 아예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맞아, 그 김만덕이었다. TV 드라마로도 나왔던 제주 사람, 정조 시대에 객주로 큰돈을 모았던 여인,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내어 수많은 사람을 살렸던 제주 여인. 임금이 계신 한양을 한번 보고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구경하면 여한이 없겠다던 소원을 이루었던 조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깨끗한 물에 기억을 씻은 듯했다. 새로워진 것이 기억인지 나인지, 출발부터 말끔하다. 길을 따라 건입동을 걸었다. 지난해 봄에 우리가 내렸던 곳이 여기였구나. 도로 건너편에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이 보였다. 한쪽 구석에 내린 것을 모르고 한참을 걸었으니, 나도 참 무지막지한 가장이다. 여기서 민속자연사박물관 있는 데까지 걸었던 것이다. 말 나온 김에 거리를 검색했더니 1.7km. 그때 미안했다, 식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