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17코스 마지막 이야기

그냥 물처럼

by 강물처럼



올레길 17코스는 천변과 해변을 걷는다. 줄곧 광령천이다. 한라산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어리목계곡을 흘러 벌판으로 내려선다. 길을 시작한 애월읍 광령리, 시야가 툭 터지고 너른 도평동을 지나 외도동이 다 끝나는 외도교까지 흐른다. 무수천, 바로 그 이름이다. 민(民)은 무수천, 관(官)에서는 광령천이라고 부른다. 산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바다에 닿는다. 그 길을 동무 삼아 올레 17코스 초반이 이루어진다. 천변의 풍경은 어디나 정이 간다. 서울 청계천 일대를 무대로 하층민들의 가난과 애환을 그렸던 박태환의 천변풍경을 보고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점을 자유롭게 옮겨가며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 기법이 젊은 나에게는 하나의 천변(川邊)이었다. 사람을 이렇듯 살필 줄 알려면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깊어야 한다. 황석영 대 이문열 그러고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술자리가 고조되어 갈 때 내가 생각했던 소설은 박태환의 천변풍경이나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였다. 어디로 흘러야 하는지 알고는 있어도 마땅히 흐를 데가 없던 물이었다. 그래서 물처럼인지도 모른다. 그냥 물처럼, 강 물처럼.

외도동에 들어서면서 무수천, 광령천은 제법 물이 많아지고 자세를 갖춘다. 골격도 드러내고 이게 나야, 그러면서 몸을 일으켜 세운다. 거기 외도 8경이라고 소개하는 글귀 중에 하나가 병풍바위에서 고기집 불 구경하는 대목이 있다. 병암어화 - 해변에 겹겹 바위 평풍을 두른 듯하고 漁燈 불은 가물거리는데 해조음 소리만. - 한 구절만 인용한다. 밀물이 들고 썰물이 빠지는 소리, 해변에 밀려드는 파도 소리가 海潮音이다. 사찰에도 해조음이 있다. 고통 속에 사는 중생을 위해 끝없이 법을 설하는 부처님과 일체중생의 소리, 세상의 소리를 들여다보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마음이 해조음이다. 길은 기도처가 되고 길이 기도가 된다. 물은 자비롭게 출렁거렸다. 그 물이 바다에 이르는 곳에서 헤어진 지 얼마쯤 지났을까. 바다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제주를 찾아오는 그 물은 무수천을 따라서 흐르던 때를 기억할까.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바다를 바라봤다.

쉬었으면 일어나야지, 반듯하게 정비된 도두항이 나온다. 그러니까 그 유명한 용두암과 이호테우 사이에 있는 항이다. 무지개색으로 도로 연석을 칠했다. 어릴 적 우리가 놀던 장면들이 삶을 찬미하듯 작품으로 도로에 세워져 있다. 고무줄 치기, 자치기, 말뚝박기, 아이들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기영이, 기철이, 남수, 남두, 남숙이, 명자, 일용이 ···가 뛰어논다.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왔다. 섬으로 가는 낚싯배들이 여기에서 떠난다고 한다. 길 위에만 나그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 위에도 나그네가 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나그네다. 자꾸 떠나고 자꾸 돌아오는 우리는 객(客)이다.

도두동에는 도두항도 있고 도두공원도 있다. 그러니까 17코스에 있는 유일한 산그늘이 거기에 있다. 맞다, 제주에는 오름이란 말이 있구나. 도두공원은 오름이다. 어지간한 전망대보다 높고 면적이 웬만한 학교 이상이다. 거기 오르다가 재미도 하나 발견했다. 절로 가는 길 →. 도두공원에는 아마 절도 한 채 깃들어 있는 듯하다. 거기로 가는 길이라고 알려주는 팻말이 나한테는 '저절로' 가는 길로 보였다. 가만있어도 굴러가는 동그라미처럼 여기는 그렇게 가는 길이라고 들렸다. 오르막이라 힘이 들 법도 했는데 그 말 덕분이었는지 휘파람을 불면서 올랐다. 정상은 평평했다. 평온, 평안, 평화, 모두 평평平平한 토대 위에 뛰노는 양들이다. 평평한 곳에서 높은 한라산과 파도치는 남해를 관람하는 나는 왕이로소이다.* 도두봉에서는 제주 공항이 내려다보인다. 제주 비행기밭, 겨울에도 비행기가 쑥쑥 자라고 있는 것이 보리 같아서 예쁘다. 멋지다. 근사하다.

용두암 3.5km. 돌비석에 거리가 새겨져 있었다. 도두봉을 내려와서 제주의 서쪽 해안을 따라 걸었다. 사수항을 지나 어영 공원이 나왔다. 노래를 들어야 한다. 쉬운데도 싫은 것이 있는 것처럼 힘든데 싫지 않은 것이 있다. 기운이 없어서 힘이 들지만 계속 가고 싶은 이것을 병(病)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무엇이라고 할까. 이 노래를 한동안 곁에 두고서 살았던 적이 있다. 용두암까지 듣고 또 듣는다. 그래야 한다. 적어도 이 길에서는 그래야 한다고 끄덕였다. 용두암에 간다. 오늘에야 거기 간다. 서른 해 전에 봤던 용두암을 보러, 지금 가고 있다.

If you miss the train I'm on. 첫 음만 들어도 통으로 내다보이는 바깥 풍경이 정지하는 노래다. 날아가던 새도, 새들의 지저귐마저 백색 처리되는 그 노래, 500 Miles.

내가 탄 기차를 놓친다면 내가 떠난 줄 알 것이다. You will know that I am gone. 너는 100 마일 떨어진 곳에서 울리는 기적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 You can hear the whistle blow a hundred miles. 그다음은 100 마일을 반복할 뿐인데 늘 거기부터 느낌이 온다. 백 번을 들어도, 천 번을 들어도.

This away, this away, this away, this away. 이렇게나 멀리, 이렇게나 멀리, 이렇게나 멀리 ··· 간신히 따라 부르는 가사다. 그리고 아예 노래를 멈추고 듣고만 있다. Lord I can't go home this away. 주님, 너무 멀리 와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해 겨울, 제주 공항에 내렸다. 둘이서 탑동을 향해 걸었다. 그 하루 전에도 제주에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국에 가는 그 친구에게 선물을 하나 하고 싶었을 뿐이다. 제주도에 가본 적 없다고 그랬을 것이다. 누가 먼저 제주도를 꺼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 번 가보자. 그것이 전부였다. 탑동에는 포장마차가 밤을 지키고 있었다. 거기 밤바다가 배경으로 울리는 포장마차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더 이상 손님이 들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주인아주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도 들어가며 소주를 마셨다. 용두암은 어느 쪽으로 가면 되냐고 내가 물었다. 용두암까지 멀지 않고 걷다 보면 날이 샐 거라고 아주머니가 방향을 가리켰다. 12월인데도 따뜻한 밤이었다. 용두암까지 어떻게 다 걸었을까. 이야기가 끝이 없이 흐르는 긴 계곡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녀는 이야기로 남았다. 용두암이 그때는 훨씬 컸었는데 ···.

그 친구를 떠올리는 것도 나에게는 기도가 된다. 이름을 부르는 것도, 그 이름에 대고 슬퍼하는 것도 다 기도가 되기를 기도한다. 용두암에 이렇게 찾아왔다. 그렇게 찾아갔다. 하늘이 좋은 것은 어디에서나 하늘이어서, 바다가 존경스러운 까닭은 끊어지지 않아서, 어떻게든 하나여서. 제주를 걷는 이유를 어슴푸레 알 듯하다. 삶이 나를 부르고 있다. 여기서 시작하라고, 출발하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내 출발을 계획하고 어디에 어디를 바느질할 것인지, 오래된 원고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적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다.

용두암을 뒤로하고 시내로 들어섰다. 용연 구름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주택가와 건물들이다. 골목을 잘 찾아다녀야 한다. 저 파란색과 주황색 리본을 놓치면 안 된다. 골목 몇 개를 통과했더니 버스가 다니는 큰 도로가 됐다. 관덕정이다. 조선의 관덕정, 정면 5칸, 옆면 4칸의 보물 제322호로 지정된 단일 건물 앞에 섰다. 올레길 17코스는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가 바로 이 앞에 멈춘다. 내일 여기서부터 걷기로 약속, 하루가 한 편의 영화였다. 엔딩 크레디트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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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그냥 물처럼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