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언밸런스다
사라봉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오름 하나를 만났다. 이게 18코스의 매력 포인트인 것을 그 길 끝에서야 알게 된다. 사라봉을 내려가는 내 종아리와 허벅지는 자못 아쉬웠을 것이다. 이런 오름 두 개 정도 더 오른다면 이틀 동안 아스팔트를 걷느라 토라져버린 발바닥을 얼마쯤은 달랠 수 있을 텐데. 지리산에 길들여진 야성은 인대와 힘줄을 팽팽하게 당기는 고개를 만나야 혈색이 돈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요동치는 소리가 들려야 몸이 풀린다며 거드름을 떤다. 사냥감이 지칠 쓰러질 때까지 쫓아가는 스라소니를 닮은 그 야성을 힘껏 보듬는다. 털을 골라주고 엉덩이를 토닥인다.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며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속삭인다. 가라, 떠나라. 늙을 줄 모르는 저 친구를 달랠 방법이 없다. 같이 달릴 수도, 어디를 오를 수도 없다. 겨우 미륵산이나 따라다니는 그가 처량하다. 오랫동안 함께여서 좋았다는 말만 우리 사이에 남겨 놓고 어느 세상에서도 다시는 만나지 않기로 한다. 나의 용기였고 멋이었던 그에게, 무엇을 따라 건배를 할까.
아내에게는 중국 문학을 공부하러 중국에 간다고 하지만 나는 대륙 안의 또 다른 대륙을 찾아다닐지도 모른다. 문명 세계에 길들여지지 않은 천연덕스러운 얼굴들을 보러 다닐 것이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소수 민족을 만나서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밥을 얻어먹으면서 신나게 젓가락질을 해 보일 것이다. 전혀 먹지 못할 것 같은 찬은 뜨거운 물을 말아서 훌훌 마셔버릴 것이다.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못 알아듣는 척 다 알아들을 것이다. 사막이든 우리나라보다 큰 호수든 건너가 보리라. 거기 있는 동안은 나이를 열 살쯤 댕강 베어버리고 머리도 박박 깨끗하게 없애버리고. 춤을 추면서 다니리라. 삼보일배를 실컷 하다가 설산 앞에 닿으면 실컷 울어버릴 것이다. 그동안 배운 중국 말로 긴 시를 써서 그 하늘에 띄워 보내고 돌아오리라. 싹 다 태우리라.
상념이 자유로운 나를 증언하는 길에서 화살표 하나가 별도봉으로, 바랐던 또 하나의 오름으로 나를 인도한다. 별도봉 오르는 길은 왜 그렇게 예쁘던지, 제주도민이 사랑하는 산책로라는 말이 허언(虛言)은 아니었다. 성산의 일출, 사라봉에서의 사봉 낙조가 있다면 별도봉에는 아닌 게 아니라 '장수 산책로'가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언제 걸어도 빼어난 풍광에 황홀해하는 몸뚱어리를 그대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 삶을 사랑하는 이라면 그 길을 권한다. 거기 동백나무가 빼곡하다. 겹동백이라서 애기동백 같지 않단다. 어디서 쉽게 보는 동백이 아니란다. 나도 한 송이 따보려다가 자꾸 놓쳤다. 더 예쁜 것, 더 예쁜 꽃이 있을 것만 같아서 지나쳤더니 ··· 결국 한 송이도 따지 못했다. 동백은 그렇게 놓치는 꽃인가 싶었다. 사방이 멀리 보이는 곳을 두 곳이나 지나와서 그런지 사람이 홀가분했다. 그렇게 오름을 벗어났다. 아내에게는 중국 이야기는 빼고 바다가 보이는 장수 산책로 사진만 보냈다. 동백이 예쁘다고 전했다. 별도봉은 곤을서길로 이어진다. 좁은 해안 길을 따라오다가 물 건너 마을이 보이는 곳에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한 곳이 있었다. 거기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이 있다. 제주시 화북동 4440번지 일대, 돌담만 빈 집터를 지키고 있다.
-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미 군정기에 발생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 제주시 화북 1동 서쪽 바닷가에 있던 마을로, 별도봉 동쪽 끝자락에 '안고을 22 가구', 화북천 두 지류의 가운데 '가운데 곤을 17 가구', '밧고을 28 가구' 등 약 70여 호로 이루어졌던 마을이지만, 1940년 1월 4일-5일 이틀 사이에 군인들에 의해 초토화된 잃어버린 마을이다. - <마을 소개 자료 등 일부>
거기서 사람을 만난다. 자세히 보니 어두운 계통의 겨울 롱 코트였다. 롱 다운 패딩에 배낭을 양쪽으로 메고 사진기를 든 모습의 한국 사람인 줄 알았다. 작은 돌다리를 두고 서로 건너편에서 마주쳤다. 당연히 안녕하세요, 그러고 인사를 했다. 수줍어하며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정리하며 웃을 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이! 그녀에게서 나온 말은 뜻밖에도 하이였다. 내심 반가웠다. 올레길에 외국인, 게다가 너무 젊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담스럽지도 않은 나이의 건강한 영혼의 소유자들이 갖고 있는 미소를 보이는 여인. 뜻밖에도 손을 가로저어가며 영어는 모른다는 프랑스 사람이었다. 조심하는 듯했다. 그녀가 곤을동을 여기저기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한동안 지켜보고 가려던 길을 갔다. 좋은 여행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건네고, Bye Bye.
그쪽에 마땅한 밥집이 없었다. 삼각김밥도 두 개 다 먹고 출출하던 참이었다. 수석 구경을 한 곤을 커피에 들르고 싶었지만 커피보다는 배가 고팠다. 마침 그 옆에 라면이라고 써 붙인 가게가 있었다. 꼭 길을 가다가 돈을 주운 기분이었다. 가스불에 파 송송, 계란 넣고 끓여주는 라면인 줄 알았는데 물만 부으면 저절로 되는 요즘 스타일의 라면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재미와 바다를 보면서 라면이라는 재미가 화음을 이뤘다. 3천 원짜리 라면을 먹는데 가게 안에 '눈의 꽃'이 흘렀다. 라면을 먹으려다 말고 카톡을 보냈다. 노란 단무지와 빨간 깍두기가 라면 옆에서 보기 좋다. 창가,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사진 아래에 적었다. '세상에 ··· 음악이 눈의 꽃이다.' 그 말이 광고 카피 같아서 마음에 든다. 18코스뿐만 아니라 올레를 전부 다 걸어도 저 느낌으로 통할 것만 같다. 올레를 걷다가 내가 만나고 싶은 것은 저와 같은 언밸런스다. 은근히 평화로워서 30분쯤 졸 수도 있다고 먼저 말하는 털털함을 나는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방금 전에는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지금은 눈의 꽃, 그 사이를 장식하는 잠연한 피곤. 라면 한 그릇을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내 감상과 내 몸은 이렇게 언밸런스다. 친절한 주인 내외가 알아차릴까 봐 얼른 화장실에 다녀왔다. 토하고 나면 금방 괜찮아진다. 가장 넘기기 어려운 것이 면발이라고 그러면 우습지 않나. 여전히 나는 국수며 라면 같은 면발을 우습게 본다. 그런 나를 그들도 우습게 보는 것 같다.
가자, 홋홋하니 좋다. 길이 바다를 곁에 두고 한 길로 나 있다. 옛날에는 영암, 강진, 해남으로 가는 배를 탔다고 하는 화북포구다. 별도 포구라고 하는 거기까지 직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