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바람 속으로 / 나희덕

시의,

by 강물처럼

밤, 바람 속으로 / 나희덕


아버지 저를 업었지요.

별들이 멀리서만 반짝이던 밤

저는 눈을 뜬 듯 감은 듯 꿈도 깨지 않고

등에 업혀 이 세상 건너갔지요.

차마 눈에 넣을 수 없어서

꼭꼭 씹어 삼킬 수도 없어서

아버지 저를 업었지요.

논둑길 뱀딸기 밑에 자라던

어린 바람도 우릴 따라왔지요.

어떤 행위로도 다할 수 없는 마음의 표현

업어준다는 것

내 생의 무게를 누군가 견디고 있다는 것

그것이 긴 들판 건너게 했지요.

그만 두 손 내리고 싶은

세상마저 내리고 싶은 밤에도

저를 남아 있게 했지요.

저는 자라 또 누구에게 업혔던가요.

바람이 저를 업었지요.

업다가 자주 넘어져 일어나지 못했지요.



나는 병원에 다녀온 길이었고

너는 학교를 막 마치고 걸어오던 참이었다.

우리는 그때 알았다.

딱 한 번 눈하고 눈이 반짝였을 뿐이었는데

영원이 있다면 그 문을 열고 들어가겠더라.

너는 어떻게 그렇게 은근히 웃냐

나는 어쩌면 웃음이 새었다.

하나씩 잊혀지듯 오늘도 다 잊어버릴 날에

나는, 내 손은, 그리고 내 등허리는 말 없어도 끄덕일거야.

어성초 하얀 꽃을 머리에 꽂아 주고픈 칠월

바람이 어디 서쪽에서 부는 때가 오거든

너는 여섯 살에 대추가 많이 열리던 그늘 아래에서

또 한번 다시 나에게 업히거라.

맨날 맨날 다시 또, 또

딸아,

예쁜 애기야.

(이미지 네이버 출처)


이야,

너 참 이쁘다

온통 그렇게 꽃이라니

어쩌면 좋아

이야, 어쩌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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