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
청국장 좋아하세요?
미묘한 맛의 차이는 솜씨를 만들어 냅니다.
'그 집 김치'가 특별히 맛있는 이유입니다.
'엄마가 담은 김치'를 대신할 김치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때 먹은 라면'은 영원히 최고의 라면입니다.
맛은 순도가 높은 감각이라서 애초부터 타협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맛은 몸을 위험에서 보호합니다.
맛을 분별하는 것은 삶의 한 방식이 되며 그 맛에 따라 사람은 삶을 선택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맛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영역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프고 나서 먹어야 할 것들이 생겼고,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이 분명해졌습니다.
청국장은 먹어야 할 음식 중에서도 맨 앞에 놓여있습니다.
콩, 두부, 달걀, 낫또, 청국장, 토마토, 연근, 마, 미역, 호박, 고구마, 생선 등등
이것들이 내가 먹는 주된 재료들입니다.
써놓고 보니 생각보다 많아서 오히려 무안합니다.
먹을 게 마땅찮아서 스트레스 쌓인다고 그러던 중이었거든요.
사람이 이렇게 자기 처지를 곧잘 잊습니다.
처음에는 물이나 제대로 마실 수 있을까? 걱정했던 자신인데 어느새 이렇게 변했습니다.
다시금 고마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먹을 수 있는 일은 고마운 일이며 감사한 일입니다.
함라산을 오전 11시 20분에 천천히 걸어 내려와서 다른 사람들 점심보다 조금 빠르게 도착하는 '청국장집'은 내게 고마운 집입니다.
솜씨가 있어서 특별하고.
내가 먹을 수 있는 청국장을 팔아서 고맙고,
늘 반갑게 저를 맞이해주는 곳입니다.
1년 넘게 다녀서 단골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른 시간에 혼자 찾아오는 손님이 반가울 것 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장사하시는 분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그런데 사람 사는 일이 참 오묘하고 재미있습니다.
나는 그 집에서 맛보는 청국장 맛도 좋았지만 한 번도 뱃속이 불편하거나 아프지 않아서 정말 좋았습니다.
집에서 그렇게 신경을 써가며 식사를 챙기는데도 화장실에 가서 토하는 일이 다반사여서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그 몸에 좋고 맛 좋은 것을 꼭 먹여주고 싶은 '환자'가 있었습니다.
사장님께 여기 같이 와서 식사를 꼭 하고 싶은 분이 있다며 이야기를 꺼냈더니 대려 몇 가지를 묻습니다.
"아, 그분 저 잘 알아요!"
"우리 교회 다니시는 분이에요."
반가웠습니다.
열 마디 말로 설명해야 할 것을 한 마디로 충분히 전달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청국장 먹을 약속을 몇 번이나 고치고 고쳤을까요?
그동안에도 그분은 자주 아팠습니다.
나는 왜 청국장을 먹으려고 했을까요.
앞으로도 계속 청국장을 먹으면서 나는 나이 들고 싶습니다.
그 식당에도 가끔 들를 테지요.
나는 그 분하고 같이 청국장을 먹던 자리에 앉을 겁니다.
그때마다 고마워하며 한 술 뜨던 모습을 떠올릴 겁니다.
그날 사장님은 식사값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다음에 한 번 더 오세요."
"그때는 더 맛있는 걸로 대접할게요."
마음이 마음으로 또 그 마음에서 마음으로 자꾸 마음으로, 마음으로 사람이 흐릅니다.
많이 아프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꼭 다시 '청국장' 먹으러 가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