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거짓말 같아 5

손이라도 잡고 와서

by 강물처럼


이런저런 일들을 속에 담았다가 그것을 글로 쓰기도 하고 혼자서 상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언제 그랬던 적이 있었나요? 라며 되묻습니다.

앞으로 내었던 손이 무안해지는 순간입니다.

주인에게 잊혀진 것을 주웠다가 끝내는 그 기억을 세수시키고 닦고 머리를 빗겨줍니다. 나를 주인으로 알아보는 그들의 기억에 옷을 입히고 나들이를 나섭니다.

주인이 기억하지 못한 채 내 기억이 되어 버린 그들의 모습들이 밝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왜 그냥 지나가지 않았던가요.

그 말이 생각나서 그러지 못합니다.

'손이라도 잡고 와서 마음이 편해요.'


K 씨는 나보다 두세 살 많은데 헷갈립니다.

한때 호스피스 병동을 준비하라는 말까지 들었다던 그녀를 안 지 2년 반 정도 됐습니다.

그녀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병원에서 마주치고 헤어질 때는 매번 손을 잡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래 본 적 없어서, 또는 쑥스러워서 바른 자세로 말하지는 않지만 그때마다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환자들도 많은데 어째서 K 씨에게 내 손이 먼저 다가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남지 않은 그녀를 보면서 예뻐졌다고 인사하는 나를, 나는 어색해 합니다.

그러면서도 또 스치게 되면 그 말이 나보다 먼저 그녀에게 달려갑니다.

내가 잡지 못하는 내 말, '건강하세요'를 나는 어쩌지 못합니다.

어제 이른 시간에 퇴원 준비를 하던 참에 근 두 달만에 마주쳤던 거 같았습니다.

2.5초 스켄.

암 진단을 받고부터 내가 갖게 된 버릇입니다.

상대방을 한눈에 훑어보는 '선수'아닌 선수가 되었습니다.

좋다, 그렇지 않다는 결과지가 순식간에 내부에서 작성되어 인사를 하고 난 다음 말이 어떻게 나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많은 것들이 결정됩니다.


알고 지낸 시간이 무화과 잎처럼 무성한 '관계'는 눈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특히 여럿이 모였을 때 서로들 주파수가 달라서 음량이나 음향에 미세한 차이가 존재할 때 시선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저 같은 경우는 거기에 많이 의존하는 송수신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여자애가 했던 말이 아직 내 안에 남아있습니다.


"우리도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낙엽을 태우면서' 이 가을을 보내도록 하자."


보내도록 하자고 했었는지, 보냈으면 좋겠다고 그랬었는지 거긴 모르겠습니다.

30년이 더 지난 그때 그 말이 그녀를 기억하는 가장 예쁜 모습으로 남았습니다.

물론 이것도 나만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고 그때 우리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빛처럼 반짝였던 것은 다들 잊었을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빛이나 색이 바래가지만 숨어있던 것들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쓸쓸하게 보였던 골목이 사실은 쓸쓸했던 내가 지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는 것을 시간은 늦게라도 고쳐줍니다.

모양은 쓸쓸해도 그 안에서 편안함이 자라나고 있다면 그 세월마저 어떻게 흐르든 상관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이상 '낙엽을 태우자'는 사람도 바람도 없는 11월 하늘을 무심히 바라봅니다.


커피가 식으면서 가장 진한 맛을 낼 때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불러보는 '택배 사장님'은 이제 그곳에서 어색해하지 않고 계시는지?

현경 씨가 나지막이 속삭이던 말에 날개를 달아 주셨는지?


'손이라도 잡고 인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그 말을 고이 접어 나비처럼 날리고 다니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노랑나비와 자주 마주치게 됐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러고 보니 나비를 닮았습니다.

예쁜 날갯짓은 여전합니다.

두 사람은 거기 어디쯤에서 아는 척이라도 하고 지내고 있을까요?

좀 부럽기도 하다면 택배 사장님께서 웃으면서 나무랄 것도 같습니다.

'다 때가 있는 법이여.'


퇴원하는 길에 입원한 K 씨에게 들렀습니다.

삶은 오징어를 참 많이도 싸오셨습니다.

한 입 먹고 가라며 크게 하나 집어주는 손, 그 손이 부어있었습니다.

먹히지 않는 오징어를 씹다가 혀를 깨물고 나는 한동안 아픔을 삼켰야 했습니다.

다시 또 하나 집어주는 그것이 고맙고 서러워서 입안에 피를 머금고 꼭꼭 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잠깐 그 사이에 눈이 마주쳤던가 아니었던가.

손이나 잡아보고 가야겠다는 말은 인사였던가 마음이었던가.

삶은 오징어를 썰어 비린내가 난다며 주저하는 손, 그 손목 언저리를 꼭 쥐었습니다.

'건강하시고요.'

무슨 다른 할 말이 있을까요.


11월은 낙엽을 태우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마침 이번 토요일은 30일.

금강 곰개나루에 나가 바람이 불더라도 낙엽 한 장 잘 태워 띄워볼까 합니다.

책에서처럼 갓 볶은 커피 냄새가 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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