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 보낸 편지
월요일 아침 기도 끄트머리에 제가 ‘기적’이라고 적었습니다.
<참, 10월 마지막 날, 토요일 밤에 우리는 기적과 함께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또 들려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그 기적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불멍이란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요?
아무 생각 없는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가끔씩 있습니다.
명상 冥想이란 말은 그 뜻이 깊습니다.
어둠 가운데 떠올리는 맑고 명철한 생각이 명상입니다.
마치 새벽이 아침을 잉태하는 찰나에 생성되는 지고지순한 에너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력 같은 것이기도 하고 활력이나 부드러움일 수도 있으며 하나의 공간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는 시간을 멈추게 하거나 느리게 또는 빠르게 지휘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건네기도 합니다.
명상을 땅에 가깝게 내려 앉히면 ´멍 때리기´가 됩니다.
말하자면 격식과 자세, 정신이나 마음까지 다 내려놓고 명상이란 말도 깜박 잊은 채 불을 쬐고 있으면 그게 ´불멍´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 ´물 멍´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등불´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성경에서도 등불은 많은 비유로 등장합니다.
중요한 것을 지키거나 찾으려는 사람들은 등불을 먼저 준비하고 그것을 들고 있습니다.
토요일 저녁 모닥불을 피워놓고 둥글게 둘러앉아서 우리는 그렇게 등불을 켜놓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 이만한 마음으로 준비할 줄 안다면 세상은 얼마나 꿈속 같을까 싶습니다.
´기적´을 말한다면서 뜸을 들이는 것이 못마땅할 것도 같은데 사실은 내 ´자격´에 대해 묻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왜 이것을 말하려고 하는가, 묻고 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 머물던 삼십 대 젊은 아빠에게 ´기도하라.´는 부탁을 하면서 이 메시지는 시작되었습니다.
타인의 불안이 나에게까지 스며들어 그의 통증만큼 나도 울렁거린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두려움이나 공포만 사람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불가에서 말하듯 일체의 존재가 서로 연계되어 존재하고 소멸하는 자타불이 自他不二의 세계를 속으로 체험하기 시작했던 순간입니다.
그는 나를 잘 알지 못했고 나도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나를 잘 알지 못했기에 나 같은 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했던 거 같습니다.
나는 그의 부탁으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제는 부탁하는 일도 부탁받는 일도 없이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그것이 기도라는 것을 오늘 아침보다 내일, 1년 뒤, 그 뒤에는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친구에게 긴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친구는 우리와 함께 ´불멍´을 때리러 딸을 보호자 삼아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2년 6개월을 지나고 있습니다.
저는 기적이 찾아온 것 같아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새어 나올 뻔했습니다.
어제 꽃다운 편지를 받았습니다.
기적이 보낸 편지라서 보물입니다.
두고두고 오래 볼 것입니다.
그리고 잠을 자면서 생각했습니다.
내일 아침은 이 편지를 기도로 날려야겠다.
우리보다 더 아픈 사람에게 날아갔으면 좋겠다.
쉰 살이 된 여학생이 쉰 살 남학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합니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 나보다 크게 웃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친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이겨내라는 말이나 응원한다는 말보다 ´예쁘다´는 말이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
걱정했겠다.
다녀와서 이틀은 잠자고 일어나서 또 자고 비몽사몽 잠에 취해 보냈어.
짧았던 이번 여행 혹은 만남에 대해 소감도 남기고 네 글에 답장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이러구러 시간이 가버렸네.
이번 모임에 참석하려고 결심했던 가장 이유는 ‘답’을 구하고자였어
내게 주어진 삶에 방향성에 대한 질문이랄까,
기억 속에 묻혀있던 갑자기 튀어나온 초등학교 친구들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되어버린 까닭이 무엇일까 만나보면 좀 알아질까 뭐 그런.
반갑고 재밌었고 따뜻했다.
그리고 뜻밖에 나는 ‘나’를 만났어.
너희들의 의미는 ‘나’의 확장판 같은 거랄까.
조금은 마음이 아프더라.
잊었던 아픈 감정들이 슬며시 올라와서 한참을 다독였다
어린 시절 밝은 웃음 속에 슬며시 숨어있던 외롭고 방황하던 빼빼 마른 내가 떠올라서.
다독여주고 위로해줄 수 있어서 좋았어.
그런 나를 만나게 해 준 친구들에게도 진심 고맙다.
보경인 눈빛부터 태도, 행동 모두가 그야말로 “다정”하더라.
현아는 멋있어 보였고 당차고 현명해 보였어.
철원인 성실하고 부지런해 보였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어.
영기는 술 취해서 더 과장된 측면이 있겠지만 애교가 많아서 놀랐다.
어린 시절 말 수가 없어서 거의 대화를 안 해봤을 거야,
창기는 분명 30년을 훨씬 넘어서 봤는데 얼마 전 본 것처럼 왜 그렇게 살이 빠졌나 걱정됐다는 게 좀 신기하고 우습다. 마지막에 악수했던 손이 너무 따뜻해서 창기의 마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노래,
사실 내가 성인 된 이후에 다른 사람 앞에서 부른 노래 중에 최악의 노래였어.
신종플루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스테로이드 주사 맞고 솔로곡을 소화했을 때도 그렇게 엉망이지는 않았는데.
사실 나에겐 여러 번의 실수로 무대 트라우마가 있어
그런데 이번 노래는 나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는 되지 않을 듯해.
변명으로 댈 것은 너무 많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어.
네가 내 노래를 듣고 울컥 공명을 해주었기 때문이야.
내 진심이 소리를 통해 공기를 뚫고 네 마음 한 곳에 울림을 주었다면 그러면 된 거지.
고맙다 진심.
두서없고 정리 안 된 이 글처럼 내 마음이 아직은 그런 것 같다.
몇 번을 꺼내어서 생각해보고 웃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지금보다 더 정리가 되겠지?
너를 더 사랑하고 위로해주는 저녁 시간이 되렴.
또 연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