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거짓말 같아 7

코로나 19

by 강물처럼


마트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아무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다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일이 쉽지 않아졌습니다.

'잘 지내느냐' 그 평범한 말 한마디가 지금은 좀처럼 입밖에 나오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한숨처럼 내뿜습니다.

그것은 바람인지 기도인지 아니면 안타까움 같은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소식을 전하기 어렵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감각이 등줄기에 흐릅니다.

모니터를 응시하던 시선을 어두운 바깥으로 돌립니다.

잠이라도 잘 이루고 있을까.

시선이 그를 쫓습니다.


3일쯤 됐나.

새벽에 자다가 크게 놀랐습니다.

핏덩어리를 토해낸 줄만 알았습니다.

그 시큼한 쇳내가 목구멍 깊은 곳에서 훅 올라왔습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쓴 물이 입안 가득 솟구쳤을 때 내 몸은 내 정신보다 빨리 반응했습니다.

잠이 깨는 것보다 빠르게 몸을 일으켰고 그 순간 핏덩어리 같은 것을 삼켰고 동시에 이부자리를 살폈습니다.

분명히 쏟았을 것 같았습니다.

묵직한 것들이 쏟아졌고 내가 덮고 잔 이불들은 흥건할 것이며 그것은 핏빛으로 선연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역류가 된 것입니다.

음식물이 아니라 나는 이것을 쓸개즙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에 그렇게 쓴 것은 더 없을 거라는 강력한 신념에서 그렇게 부릅니다.

오랜만에 그러나 전혀 반갑지 않은 조우 遭遇.

첫해 수술을 마치고 근 반년 동안 그러지 않았었나 생각됩니다.

기록해 놓은 것들이 있으니까 찾아보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그때의 경험과 비교해서 말하자면 이번 것은 쓰나미 같았습니다.

처음 역류를 경험했던 날 많은 생각에 빠졌었습니다.

답이 없는 시험지를 앞에 두고 시간이 자꾸 흐르는 기분이었습니다.

천천히 식도를 태우면서 슬금슬금 차오르는 그것은 사람을 두렵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쓰라림도 고스란히 다 느끼고 무엇보다도 '이럴 거라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난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언급하지 않았던 증상이 나타나면 환자는 심각해집니다.

'나만 이러는 것인가'

그 생각은 '이러다 죽겠다.'는 결론을 맞잡습니다.

아침이 되면 기력이 없어서 잠에 떨어졌습니다.

속이 아팠지만 고맙게도 잠밖에 나를 받쳐줄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기력이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통증을 느끼는 중에도 잠에 빠집니다.


방법이 없다는 것을 눈치로 알게 됩니다.

환자들은 자기의 특수한 상황을 궁금해했다가 스스로 답을 내리고 스스로 결정하는 습관이 생겨납니다.

일일이 다 챙겨다니기에는 많이 피곤합니다.

그냥 잘 지나가기로.

그때그때 참아낼 수 있기를 막연히 바랍니다.

그렇게 익숙해지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신비롭다는 사실을 깨우칩니다.

그러면서 감사하는 일이 생겨나고 감사가 충분해질 즈음에 몸에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완치'라는 말은 저만치 일부러 떨어뜨려 놓습니다.

그것처럼 번지르르한 말은 세상에 또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듣기 좋은 말이란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세상살이가 경주나 게임이라고 한다면 바로 여기가 상대를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전술이 펼쳐지는 구간이 될 것입니다.

알고도 넘어가 줄 정도가 된다면 병마 病魔와 함께 지란지교를 꿈꾸는 경지에 이른 것인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오래 편안하게 지냈을까요.

그동안에도 허리가 아팠고 허리가 아프지 않으면 다른 어딘가가 불편해져서 사람을 참 많이도 성가시게 했습니다.

누군가 아프면 누군가는 희생합니다.

아내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거룩한 사람, 성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수행으로 닦아지기 마련인데 나만한 교재 敎材가 또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한 사람의 정성으로 한 사람이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감동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 안부의 8할은 아내가 책임집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아내'라는 말이 무슨 머릿돌 같은 분위기가 납니다.

그 위에 큰 집을 얹고 있는 그런 것 말입니다.

다행히 그것은 핏덩어리도 아니었습니다.

물을 몇 컵이나 마셔도 쓴 맛이 가시지 않고 순간적으로 온몸에서 식은땀을 뺐던 사건이 지나갔습니다.

'이러다 죽을 뻔한' 일이 또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인 것을 늦었지만 그래도 알 것 같습니다.


사방이 코로나 바이러스입니다.

대구나 경북은 거의 아수라장이 다 된 분위기입니다.

노약자나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은 사람들 모이는 곳에 가지 말라고 뉴스에 나옵니다.

중국의 어떤 영화감독은 가족이 아예 모두 다 숨졌습니다.

모두에게 갑작스러운 일이며 나에게도 갑작스러운 일입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사람들이 무엇도 하지 못한 채 넋을 놓고 있습니다.

학교가 개학을 연기하고 성당이 236년 만에 처음으로 미사를 포기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을 입국 거부하는 나라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고,

마스크가 없어서 아우성이며 상가에는 손님이 없어서 난리입니다.

그저 고요한 것은 새벽뿐입니다.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건반 하나하나 건들어 봅니다.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도 하나씩 곁들입니다.

우리도 지금을 옛날처럼 기억할 것을 이불을 다 걷어차고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 약속합니다.

자코메티의 가느다란 '걸어가는 사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걸어가는 사람.

우리는 실패하였는가?

그렇다면, 더욱 성공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걸 포기하는 대신에 계속 걸어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멀리 나아갈 가능성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만약 이것이 하나의 환상 같은 감정일지라도 무언가 새로운 것이 또다시 시작이 될 것이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는 계속 걸어 나가야 한다."


사진 밑에 있는 글에 오래 머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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