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거짓말 같아 8

서툰 고백

by 강물처럼




방금 상상 하나를 했습니다.

어디가 좋을까요.

311호 병실도 나쁘지 않을 거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없고 사장님이랑 저, 둘이 밤을 지내고 있다고 상상합니다.

어떤 것을 고를래요?

다저스 경기 아니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손흥민이 나오는 토트넘 경기.

저는 때 지난 드라마나 아직 못 본 일본 영화 같은 것이 좋긴한데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몇 시가 좋을까요?

냄새가 나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그래서 분명히 걸릴 일도 없다고 정해놓겠습니다.

어차피 상상은 하는 사람 마음대로 그려지는 법이니까요.

파 넣어 드세요?

계란은요?

익은 김치도 좀 넣을까요?

여태 왜 우리가 이런 멋진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어디 맛있는 집에 가서 사 먹을 줄만 알았지, 이거 참 재미있는데요.

라면은 무슨 라면으로 할까요?

사장님 가게에 산처럼 쌓인 것이 라면이래도 지금 당장 필요한 라면 두 개가 제일입니다.

사장님은 신라면이시군요.

저는 먹고 입고 타는 거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니까요.

라면은 역시 이런 냄비에 끓여야 운치가 있어요.

그렇지, 라면은 옛날 맛으로 먹어야 맛있지!

'곤로' 알죠?

옛날에 집집마다 곤로 하나씩은 다 있었잖아.

거기 올려놓고 탁 끓여 먹는 라면이 그렇게 맛있는 거야.

어머니가 바쁘시니까 할머니가 한 번씩 끓여주면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

옛날에는 집에서 두부도 직접 만들어 먹었거든.

그 맛이 어딜 가도 없어, 없어.

또 큰손자라고,

우리 할머니는 나한테 정말 지극정성이었는데....

나는 그 순간 그의 말과 그의 눈이 웃는 것을 봅니다.

시절을 회상하는 눈처럼 순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예쁘게 보는 순간을 좋아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예쁘게 보이는 순간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곰소에 가끔 염전 구경하러 오곤 했습니다.

소금꽃 피어나는 풍경이 보고 싶을 때가 살다 보면 생기거든요.

뜨거운 태양이 서쪽으로 넘어가는 것이야 여기 곰소, 줄포가 끝내주잖아요.

다 타버릴 것 같이 빨갛게 오른 내 얼굴은 벌써 새까맣게 변한 아저씨들 보면서 주저앉아버립니다.

할 말도 주저앉고 계획이나 생각 같은 것들도 순식간에 우스워지잖아요.

'내 고향, 줄포'라는 말이 듣기 좋았습니다.

사장님이 언젠가 한 번 아버지하고 거기 '웅연조대 雄淵釣臺'에서 어렸을 때 보았던 낙조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할 때, 그때에도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울컥했고요.

고백하자면 나 혼자서 거기 가봤습니다.

어땠을까.

얼마나 고요한 순간이었을까.

혼자 거기 앉아서 실컷 상상해봤습니다.

그러면서 또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고 싶은 거 다 참아가면서 몸에 좋다는 것들 챙겨 먹고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다 하고 그래도 이게 힘들더라는,.

90점 맞아서는 안 되고 백 점 맞아야 되는 것이 암 치료인 거 같다는 그의 말이 귓가에서 울었습니다.


오늘은 라면을 맛있게 먹지요.

분명히 이거 먹고 진하게 통증이 올 건데, 어리석어도 오늘은 그러기로 했습니다.

지금 이대로 좋으니까요.


많이 힘드시죠?

어떻게 사람이 안 불안할 수 있겠냐는 사장님 말씀이 너무 맞아서 대꾸를 못했습니다.

아참, 하나 미안하다고 꼭 말해야겠습니다.

깜빡했어요.

그때 아이들 데리고 일본에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물어보던 것을 내가 그러지 못했습니다.

사장님한테 계속 미안했습니다.

다시 봄이 오니까 그 생각이 더 나네요.

사장님은 보고 싶어 지는 타입이시군요.

지금도 이렇게 생각나는 거 보면 정말 그게 매력인가 봐요.

저 혼자 걱정합니다.

이 긴 편지를 다 읽을 수 있을까, 없을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아, 또 할 말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라면 다 식겠어요.

그릇 이리 대보세요.

라면은 국물 맛이잖아요!

다음에는 여기에다 오징어랑 새우도 넣어서 끓이면 끝내주겠는데요.

우와, 라면은 역시 진리네요, 진리!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3 : 53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던 듯하다.


-사실 지금 제가 제일 먹고 싶은 게 계란이에요. 계란말이 말고 약간 완숙인 프라이로요. 라면도 먹고 싶어요.

백 점 언제나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점수려나.-


새벽 4시에 그의 전화를 받고 나는 또 울적해졌습니다.

다 사그라든 목소리를 알아듣는 척 대답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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