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내에게
그의 집을 나오며
거실에 불 하나 켜 두었다
환한 집으로 그는
퇴근해서 돌아오리라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
불을 켜는 일은
외로운 일
나는 외로움 하나를
덜어주고 나왔다
불 하나 - 하상만
생각한다는 말과 헤아린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한 편의 시입니다.
혼자 사는 친구가 결혼한 친구의 사정을 알아채는 것은 ´생각하는 일´ 같습니다.
반대로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친구가 혼자 사는 친구를 챙기는 것은 아무래도 ´헤아린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그것인 것을!
하지만 이런 느낌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떠올리는 것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점점 사람의 감각이 두루뭉술해지고 어떤 부분은 벌써 각질화되어 가는 것도 같습니다.
감정과 감각은 이와 잇몸 정도로 긴밀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가 아프고 흔들리게 되는 그런 사이 말입니다.
´헤아린다´는 말을 하루 종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보시면 어떨까요.
생각하는 일은 그동안에도 아주 많이 해왔던 일이니까, 오늘 하루는 ´헤아리다´
서로 다른 먹을 것을 가져와서 파티를 여는 것처럼 서로 다른 해석과 스토리를 만져가며 시간을 보내면 즐거울 것 같습니다.
사람이 가지 않은 길에는 풀이 무성해지고 그 풀은 길을 감추고, 어느 날에 누군가 그럽니다.
"여기 길이 있었는데?"
바다를 보러 가는 것과 바다에 들어가 보는 것.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짓는 일과 그 밥을 함께 먹는 일.
따로따로면서 어쩌면 하나인 듯한,
젓가락과 숟가락이 하는 일이 나를 살리는 일인 것 같은 귀여운 착각.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에게 묻는 인사,
아픈 사람이 건강한 사람 챙기는 일 같은 거.
라일락 향기가 데이지 꽃 있는 데까지 날아가서 놉니다.
서로가 서로를 헤아리고 있습니다.
아침에 쓴 기도를 그의 아내에게도 보냈다.
49재를 지내고 돌아오는 사람 마음은 허허로이 마당을 지키는 감나무 같을 것이다.
수십 년 된 감나무 줄기에 금이 가고 비가 샌다.
그가 세상에 있었을 때 종종 뵈었던 인연으로 안부를 물었다.
그것도 차마 다 묻지 못하고 예전에 찍어뒀던 그의 사진을 말없이 전송했다.
나는 왜 같이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
그가 모르는 뒤에서 그렇게 한 장, 한 장 찍어둔 사진들을 들여다본다.
지금은 슬픔이 앞에서 모든 것을 끌고 가는 시간이겠지.
다만 두 아들이 의지가 되어 지팡이 노릇을 해주겠지.
젊어서 짚는 지팡이, 나는 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을 볼 때면 그 지팡이가 얼마나 물러졌는지 살핀다. 보이지도 않고 보여주지도 않는 발뒤꿈치 군살 같은 살을 감각해 낸다.
깨끗하게 발라먹은 고등어 구이가 자발맞아 보인다.
사람마다 품고 사는 마당에 내어놓고 말리는 것이 상실감뿐이라면 어떻게 볕을 견뎌낼 수 있나.
맨땅을 긁어서 거기서 난 소리로 속을 채웠던 날들은 나를 살렸던가, 죽어가게 내버려 뒀던가.
누구나 한 번은 짚고 일어서야 하는 일, 그때가 언제인지 너무나 모르는 일.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자꾸 햇수만 세어볼 것이다. 늦은 밤에도 새벽에도 꿈속에서도 둘이 지나온 세월만 세어볼 것이다.
불이라도 켜놓고 지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