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아요
아메리카노 따뜻하게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장성 호수가 보이는 곳에 왔습니다.
작년 9월 이후로 나에게 하나의 순례지가 된 곳입니다.
고창에 오면 한가한 틈을 봐 혼자 잠시 들렀다 가는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다들 내게 편안함을 건네는 장소들입니다.
미소사 가는 길에서는 에릭사티나 시크릿가든의 음악을 듣습니다.
한 걸음이라도 선한 마음이 되어보려고 해지는 서쪽하늘은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고 걷는 길.
새벽 공기로 세례를 받으면 홀연한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어둠 속에서 콕콕 찔러오는 두려운 소리들에게 두 손 들고 항복하는 대신 합장하는 지혜를 내게 쏟아내던 가늘디 가는 밝음, 미명微明이 밟히는 길을 오릅니다.
땅을 기어가는 생물이야말로 거룩한 마음으로 땅 위에서 살아갑니다.
나도 기어갈까 싶은 길.
고창 성당은 나를 위해서 그리고 인내하면서 생명을 얻어야 한다면 그 길이 맞다며 찾아가야 하는 곳입니다.
오늘 나는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어떤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내가 특별해지는 공간, 어디에서 그 바람은 새어 나오는지 서서도 앉아서도 찾지 못하지만 기분 좋은 소슬바람이 부는 곳.
나 같은 사람한테 내미는 손길에 나는 슬쩍 보고 말았습니다.
아, 그 손을 왜 잡지 못했을까.
어처구니없게 나는 또 외면하듯 비스듬히 사선처럼 긋고 말았습니다.
돌아보고 잘 돌아보고 다독이고 잘 다독이고 싶어서 사람이 사람다워지기로 하는 곳에 나는 들러야 합니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 자리는 장성 호수가 곁에 있는 카페입니다.
그럴지 모르고 걸었던 호수는 이제 그를 추억하는 뷰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 길을 다 걷고 여기 와서 마셨던 달콤하고 쌉싸름하면서 시원했던 맛을 계속 나누고 싶어서...
가을에도 걷고 겨울이 오더라도 ‘같이 걷자’는 말 한 마디면 흔쾌히 다 돌아다녔을 곳을, 나는 그때와 그 장소를 그립니다.
아프지 않고 장난기 가득하고 여자를 꼬셔도 하나도 미워보이지 않는 그가 멀리 바라보던 곳에 앉아있습니다.
나는 고창에 3년을 다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옥이구나.'
그가 말했습니다.
한 달을 내내 기다렸다는 표정으로 그가 말했습니다.
친구가 다 되어버린 그를 살핍니다.
그동안 나는 어머니가 응급실에 입원을 하고 지금은 생각나지 않은 바쁜 일들로 바빴고, 그는 또 한 차례 몸이 뒤틀렸던 것입니다. 크게 요동치고 몸부림치고 괴로웠던 겁니다.
어머니가 작년 여름에 이어 두 번째로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하면서 세 번 좋을 수는 없지 않겠냐며 쓸데없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밤에 잠에 들면서 그때서야 '쓸데없이'라고 나는 나를 나무랐습니다.
그의 지난해 여름도 위급했습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본 우리는 '잘 지내셨냐'는 인사 대신에 다른 말을 찾았어야 했는데 무심하게도 '잘 지내셨냐'라고 인사하고 말았습니다. 참 형식적인 사람과 사람들입니다.
장폐색이 있었고 장이 마비되어 그야말로 위태로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죽을 먹기 시작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는다는 얼굴에 수염만 그득하게 피어있었습니다.
어제 점심, 저녁, 오늘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 먹기 전입니다.
그 식사를 둘이서 했습니다.
그는 죽을 반쯤 먹다가 말고 나는 천천히 다 먹었습니다.
깍두기를 소리 내지 않게 씹는다고 씹다 보니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다른 환자들이 그러던 대요."
"왜 그런 거 안 먹느냐고?"
"먹고 싶으면 짜장면도 먹고 칼국수도 먹고 그래도 된다고."
물끄러미 그의 말을 쳐다봤습니다.
그의 말에는 흥미와 유쾌와 물기가 마르고 있었습니다.
많이 아프면 우선 먹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은 먹지 못하게 되면 후회스러운 감정에 휩싸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와 함께 먹었던 음식들을 그는 잊고 나 혼자 기억에 남겨놓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는 사진이 새로 찍힙니다.
다시 그가 잘 먹게 되었을 때, 그래서 많이 평범해졌을 때에나 꺼내놓고 볼 사진이 어딘가로 깊숙이 숨어들고 있었습니다.
맛집이라며 나를 데리고 다녔던 국수가게, 고깃집, 국물이 맑았던 복어집이며 바지락 죽, 백합탕, 콩나물국밥 같은 공간들도 가만 접어 넣었습니다.
지금은 그가 흰 죽만 먹고 있으니까.
그의 한숨에 척척하게 땀이 배어 있으니까.
박 朴사장님 떠난 지도 백 일이 지났다는 말이 허공 중에 흩어졌습니다.
말끝을 흐리면서 말하는 그가, 우리들이 어디쯤에선 지나게 되어있는 병상 病狀인가 싶어서 다시 묻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가 하고 싶던 말을 대충 짐작하기로 하고 무슨 말인가를 한 마디 더 듣지 못하고 혼자서 떠올렸습니다.
올 가을 봄꽃보다 더 바짝 나를 흔들어 놓았던 낙화 落花.
서쪽 바다로 해가 지는 장면이 붉을 대로 짙은 날에는 거기 섬, 위도에서 49재를 다 마친 우리가 '소녀'라고 불렀던 그 이름을 노을 대신에 바라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한 그 소리였던 거 같습니다.
"죽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거라면 죽고 싶지 않네."
그걸 말이라고 할까요, 사람아.
나는 이제 그에게 혀로 말하지 못하고 눈빛으로 아니면 눈빛처럼,
말이 없으면 좀처럼 잘 알아듣기 어려운 모호한 것들을 이용해서 말하기로 합니다.
"서울에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는데요, 물이 그렇게 마시고 싶은 거야. 그런데 마실 수가 없잖아요.
세상에 천지가 다 물인데 이런 게 '지옥이구나' 싶어서 내가 혼동이 오더라고요.
물을 마실 수만 있다면 처자식이라도 내다가 팔겠더라니까요. 정말."
그의 등줄기가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성벽 닮았습니다.
튼튼했고 당당했을 뼈가 웅숭그리고 있었습니다.
밤을 휘적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복도에 나가서 몇 번을 걸었을까요.
벽에 기대어 침대에 앉아있는 그의 등을 주물렀습니다.
허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 뱃속이 전부 다 아파서 허리도 아픈 것을 '허리가 아파서'라면서 그는 짚어주고 나는 주물렀습니다.
맨살이 흐물거린다.
익숙한 촉감입니다.
싸우기를 잊어버린 병사들이 세워놓은 칼과 창에 드는 늦가을 햇살이 따스하기만 한 것이 아닌 듯하여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고향 노래가 온 산을 구비구비 돌아 나갔다는 옛날 옛날이야기가 우리 이야기 같았습니다.
백기 白旗가 바람에 부대꼈습니다.
다시 일어나 투쟁하기를 바라기보다 내 손에 일어나는 온기를 나누는 것이 더 좋겠다, 고 전했습니다.
그의 등을 만졌는데 그의 배를 다 만지고 난 기분입니다.
소장과 대장, 그리고 장루 주머니를 다 만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장루 이것을 빼낼 생각만 했었는데, 문득 이게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장에 장루를 다는 일은 소화액이 함께 흘러서 엄청 괴롭다고 그래요. 그 말을 듣고 내 절망감이 얼마나 컸겠어요."
서리 맞은 꽃 같았습니다.
상엽홍어이월화 霜葉紅於二月花.
그래, 그 말이 그에게 어울렸으면 좋겠습니다.
거울 앞에 서본 적 별로 없었을 그에게 봄꽃보다 더 붉을 줄 알고 서리 맞아도 붉을 줄 아는 꽃이 어울리면 좋겠습니다.
눈이 내릴지도 모르는 아침을 두고 한밤에 찬비가 내립니다.
새벽차를 타고 서울 병원에 가야 하는 그는 잘 자고 있을까.
다시 또 서성거리지 말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방 아픈 데를 맡겨서라도 잘 잠은 자고 일어나기를.
"강 선생님, 나를 위해서 기도해줘요.
가스가 나오지 않은 채로 5일을 누워있을 때는 기적을 바라게 되더라고요.
내가 누워서 그랬네, 나한테 지금 기적은 가스가 나오는 것인데."
그의 맑았던 얼굴은 내가 알고 있는 얼굴입니다.
눈물이 그 눈가에 번졌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더라도 선한 사람이니까 불안할 때 꼭 이렇게 말하라고 일러줬습니다.
'저를 위하여 빌으소서,
저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