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평화
"아빠, 장염이 무서워 암이 더 무서워?"
9살 딸이 나에게 묻습니다.
아무래도 아빠가 병원에 자주 다니다 보니까 그리고 주변에서 사람들 하는 얘기가 귀에 들렸나 봅니다.
저번에는 아이들이 즐겨보는 만화 프로에서 주인공 '최자두'의 엄마가 암에 걸려 일상이 힘겨워지는 '상상'을 보여줬습니다.
암이 무서운 것은 보이지 않게 서서히 자리를 잡기 때문입니다.
통증이 느껴졌을 때는 이미 병기病期가 깊어 시름에 잠기게 합니다.
무엇보다 '암'만큼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말도 없을 것입니다.
드라마는 물론이고 아이들 애니메이션에도 위기를 고조시키는 맞춤형 스토리에 '암'이 등장합니다.
누가 왜 그것을 허락하는가요?
함부로 사람의 마음에 집을 짓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더욱이 그 집이 흉물스럽고 안전하지 못한 집이라면 고민을 거듭해야 합니다.
'암'은 일상적이어서도 안 되고 '겁주는 장치'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암이 뭔지도 모르고 자랄 텐데 우리 집 애들은 암이라면 신경이 곤두서겠구나'
아들은 3살 더 먹었다고, 한 번도 꼬치꼬치 묻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관심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압니다.
아들은 내가 앉아 있는 책상에 와서 어깨를 주물러 주다가 제 방으로 들아가곤 합니다.
말없이 작은 손으로 만져주면 몽실몽실한 것이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들하고의 교감은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저도 손끝으로나마 전해지는 것이 있는지 한 마디 던집니다.
"아빠 살은 말랑말랑해서 엄마하고는 달라"
근육이 많이 빠져나가면 살이 탄력을 잃습니다.
아들은 어떤 모습으로 아빠의 암을 해석하고 있을지 먼 훗날 물어봐야겠습니다.
딸아이의 진지한 물음에는 답을 해야 합니다.
잠시 망설였습니다.
"장염이 무서워, 장염은 조금만 실수해도 금방 찾아오거든"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 "
딸아이가 되묻습니다.
그렇게 묻는 아이의 눈에는 안데르센 동화에서나 볼 듯한 호기심과 두려움, 반가움의 빛깔이 가득합니다.
장염은 작은 실수도 용서하지 않고 배를 아프게 한다는 내 말에, 심하면 병원에 입원도 해야 하냐고 꼭꼭 확인을 받습니다.
끄덕이며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는데 아이가 꼬리를 잡습니다.
"근데 아빠는 암이 언제 다 낫는 거야?
다른 아빠들은 다 건강한데 우리 아빠만 암에 걸린 거야?"
미처 아름다운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이 순간을 예쁘게 기억하도록 만들어 줄 만한 미사여구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내 딸이지만 참 보기 좋게 커가고 있어서 많이 고맙습니다.
그 순간 아이는 내 눈 속에서 어떤 것들을 보았을까요?
"다연이처럼 나도 방과 후 하고 싶은데 아빠가 집에 있으니까 나는 못하지?"
그래, 9살 딸아이는 겨우 아이스크림을 간식으로 주는 학교 방과 후 교실에 참석하고 싶은 것입니다.
못내 웃음이 지어집니다.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평화로워서 좋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평화는 모든 것들을 낫게 하는 무한한 능력이니까요.
아무래도 딸아이하고 자주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아이의 평화를 나도 좀 얻어가며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