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거짓말 같아 15

부음 訃音

by 강물처럼


두 분의 부음을 접했습니다.

3월, 꽃이 피고 있습니다.


차분하고 비교적 따뜻했던 겨울을 보냈던 터라 낙동강변이나 섬진강에는 매화가 일찍부터 피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매화는 다시 피어 사람들을 부르고 사람들에게 봄을 알리고 사람들은 환해집니다.


사람이 떠나는 날에 피어난 꽃도 있겠구나.


잠시 두 사람의 명복을 빕니다.


그 인자하고 사람 좋아 보이던 미소를 만나면 고마웠습니다.

젊어서 멀리 중동에 나가 활약하셨다는 무용담은 사모님이 쓰신 에세이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겸손하셨던 것입니다.

고창에 가면 항상 뵐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습니다.

같은 병실에서 자기 때문에 불편했겠다며 미안해하시던 모습이 그러고 보니 마지막이었습니다.

사모님은 꼭 회복하실 거라며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선생님을 지키셨는데 얼마나 황망해하실지요.


'평생의 친구로 살았지요, 나의 자랑이 되어준 사람이에요. 이렇게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거든요.

여보, 금방 털고 일어날 거지요? 그렇지요?'


침대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가 보고 들었던 모습입니다.

그때가 벌써 지난가을이었습니다.

단풍이 들던 날이었습니다.


선생님, 고운 모습 그대로 평안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책에서 봤었던 선생님 멋있는 모습을 그곳에서도 한껏 뽐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서른다섯?

선명하게 사진처럼 찍히던 기억장치에 분명 문제가 생겼습니다.

기억도 영양과 상관관계가 있는가 봅니다.

아니면 몸 상태를 영 무시한 채로 기억이란 시스템을 가동하면 하자가 발생하기 마련인 듯합니다.

아프고 난 다음부터는 무언가를 기억하는 일에 자신이 없습니다.

예전에 경험했던 일은 그대로 잊지 않고 있지만 아프고 난 다음에 생긴 일들은 순서도 없고 명확하지도 않습니다.

그랬던 거 같은 느낌만으로 기억을 보완하고 있다고 말하면 꽤나 동정을 살만 할 것입니다.


내가 지금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 중에 하나가 위층에 사는 아주머니 얼굴을 전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아프고 나서 여기로 이사 왔으니까 그 사이에 몇 번인가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했었는데 도무지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한 번은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을 모르는 사람 취급하고 말았습니다. 기분 나빴을 것입니다.


"위를 다 없앴어요."


1년 반 만에 나와 같은 환자를 만났다는 반가움마저 있었습니다.

위를 절반이나 3분의 2, 심지어 90%까지 없앴다는 환자들은 종종 봤었는데 그분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증상'이 나와는 달랐습니다.


"밤에 자다가 속에서 쓴 물이 역류하지 않으세요?"


나도 그녀와 같은 수술을 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녀가 내게 물었던 첫 질문이었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 말과 함께 쓸개즙이 목으로 넘어올 때 가슴이 불에 타는 것 같은 쓰라림이 떠올랐습니다.

목으로 넘어오는 쓴 물을 쏟아가며 다시 눕지 못하고 기대앉아서 아침을 기다리던 밤들이 떠올랐습니다.


"맞아요, 그랬었네요."


어젯밤에도 힘들었다는 그녀는 많이 마른 몸이었습니다.

원래 잘 먹지 않는 체질이라며 웃는 얼굴에도 윤기는 없고 광대뼈가 드러나 보였습니다.


"처음 얼마간 그래요, 지금 나도 깜박 잊고 있었을 만큼 어느 순간 그 증상이 없어지던데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들은 잘 모르시던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경험한 것이니까 하나씩 다 알려드릴게요.

무엇보다도 일단 먹을 수 있는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말에 그녀가 어떻게 안심이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인터넷 카페에 '위 胃'에 대해서 써 놓은 글은 그녀에게 알려주기로 했던 내용들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마음에 걸려 병원에 오면 집 생각하느라 마음이 바빴다고 들었습니다.

그 뒤로 한 번 더 같은 시기에 입원을 하고 서로 인사를 나눴으며 어떻게 지내느냐고 안부를 물었습니다.


한 번 더 붙잡고 물어봤을 것을...

얼마나 무서웠을까.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꽃은 하염없이 피었다가 질 것입니다.

봄이 오면 그대들 모두에게 꽃소식도 전하겠습니다.

평안을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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