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거짓말 같아 16

부디 그럴 수 있기를

by 강물처럼



'복수가 찬다'는 말은 무섭게 들립니다.

배에 물이 찬다.

나는 그 말이 어떤 말인지 압니다.


주말을 이용해서 고창에 다녀볼 생각입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마트 사장님을 보러 가고 싶습니다.


봄을 맞이한다는 영춘봉에 오르기도 하고, 전불 길을 걷기도 하면서

'죽기 살기로' 몸을 움직이면서 지낼 거라던 음성이 아직 따뜻합니다.


같이 걷는 일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나란히 걷는 일이 그에게는 쓸쓸할 수도 있지만 이별을 향해서 걷는 것이 아니니까.

하루를 층층이 쌓아놓는 일이라고 말해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진 감정이지만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병실에 누워 천장을 보면서 지내던 날,


'사람은 누구나 다 아프구나.

더 아픈 사람은 누워있고 덜 아픈 사람은 움직이는 거지.

안 아픈 사람은 세상에 없는 사람이겠다.

아픈 줄 모르는 사람은 좋기도 하겠지만 슬프기도 하겠다.'


때로는 셋이서, 그러고 보니 우린 셋이란 구조를 좋아했습니다.

현영 씨가 있을 때도 셋이었고, 경환이가 있을 때에도 셋이 다녔습니다.

마치 동갑내기 말 두 마리가 앞에서 달리고 손님처럼 그들을 태우고 달렸던 거 같습니다.

우리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들이 애잔했던 마음에 실컷 태우고 달렸던 거 같습니다.

먼저 떠난 그 친구들이 오늘은 어디에서 다리 걸치고 앉아 있을까요.

석양이 깊이 물드는 날에는 슬그머니 얼굴들을 꺼내봅니다.

잘 있느냐는 말은 어색해서 묻지 않고 잘 생겼다든지 예쁘다든지 그 말만 읊조립니다.


2월 13일.


3월이 멀지 않았다고 말해도 좋을 때에 나는 기다리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봄이 오길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서 잠깐 아주 잠시만 앉았다 일어날까 합니다.

셋이 달리던 그런 날은 이제 없습니다.

대신 주말이면 고창에 가서 하늘을 실컷 봐야겠습니다.

바다에도 나가보고 다시 한번 방장산 꼭대기에 올라 그의 웃음도 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몸이 아픈 그날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느냐는 물음을 떨치고 어떤 시간을 쥐고 있는지에 답해야 하는 시험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험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워야 합니다.

재미로 시험을 본다는 사람들은 부럽지도 대단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풀어야 할 시험지에 아무런 선입견 없이 어떤 미련도 남지 않도록 자기가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다 적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늘 아쉽고 쓸쓸했지만 바이올린은 세 줄로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끊어진 줄에 연연하지 않고 보헤미안 렙소디를 연주하고 나면 운명마저도 기특하게 보일 것입니다.

다 갖춰졌을 때 찾아오는 허전함은 문고리도 건들지 않고 내 안에 발을 들입니다.

그 허전함이 나에게 요구할 것입니다.


'무엇으로든 저를 위로해 보라고.'


무엇으로도 소용없을 때 그때 내가 꺼낼 악기가 바로 줄 끊어진 '나'입니다.

내가 내 운명을 쓰담 쓰담하는 일.


평화롭게 하나 그리고 둘.

살살 간지럽히는 복된 시간을 우리가 누릴 수 있기를.

부디 그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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