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무기,
버릇처럼 밥 먹기 전에 성호를 긋는다.
그것은 내가 아이였을 적부터 해왔던 식사 전 기도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는 이마와 가슴에 하는 기도.
사실 성호를 긋는 것은 하나의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의 준비나 기도를 위한 기도 같은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끝은 아니다.
바쁜 것도 없었는데 겨우 성호만 긋고 식사를 하며 살아왔다.
그것도 사람들 있는 곳에서는 빼먹기 일쑤였다.
번거롭다는 생각을 그때 했을까?
어쩐지 창피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밖에서는 하지 않아도 집에서는 자동적으로 손이 움직이는 그런 생활을 나는 50년 가까이해오고 있는 셈이다.
일본 사람들은 '잘 먹겠습니다.' 그러면서 손을 모은다.
나는 그것도 잘 따라서 했다.
일본에서 지낸 5년 동안 누가 있으나 없으나 혼자서도 잘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며 손을 머리에 가져가는 그 짧고 맑은 동작은 좀처럼 겉으로 나오지 않는다.
우리도 어디 가나 '잘 먹겠습니다.' 정도는 흔하게 하는 인사말이다.
고맙다는 뜻이고 밥을 함께 먹는 사람마저 훈훈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보듬는 말이다.
다만 그런 것은 있다.
'경계'가 지어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마저 솔직한 답변은 되지 않지만 서로 어색해지는 일이 없기를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둔다.
그것은 조바심인지 배려인지, 정체 모를 감정이다.
서로 편한 게 좋지 않냐고 어디쯤에선가 합의를 본 감정이다.
하지만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니까 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뭐라고 그 작은 것 하나 못하고 사나 싶으면 한없이 자격미달인 사람 같다.
산이와 강이에게는 그 느낌을 전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필요 이상으로 활기차게 성호를 긋는다.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우리에게'라는 기도를 그때 해보는 것이다.
아이들도 어느 박자에 춤을 춰야 좋을지 헷갈릴 것이다.
미안하구나.
아빠가 성실하지 못했다.
식사 전 기도를 하면서 끝에 한 말씀을 덧붙이자고 제안했다.
뜬금없이 이러는 내가 우습게 보일 것 같았지만 그 말이 꼭 하고 싶었다.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아시시의 성자,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는 차라리 한 편의 시다.
나는 반복하면 새겨진다고 믿는 사람이다.
언제든 닮고 싶거나 담아 두고자 할 때에는 그것이 사람이든 풍경이든 어떤 정신이라도 자주 눈으로 본다.
적어놓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써본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익숙하지 않던 산이가 ´나를 평화의 무기로 써 주소서.´그런다.
강이는 그게 무슨 말인지 파악 중이다.
산이의 표현이 재미있어서 놓치지 않고 대꾸를 했다.
웃으면 오래 기억된다.
'미사일?'
그래, 도구가 될 것인지 무기가 될 것인지 그것도 중요하구나.
무기로 평화를 지키겠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산이와 강이, 아이들을 데리고 식사를 할 때라도 천천히 기도를 해야겠다.
우리의 평화는 작은 기도로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책 제목이지만 중요한 말인 듯하다.